대여점 판타지소설 읽다보면 '이까짓것 나도 쓰겠다'싶지만...
대여점자체가 망해가는 분위기인데.. 쨌든 거기 깔리는 국산 판타지소설의 99%는 종이가 아까운 쓰레기죠. 편견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예의가 없는' 물건들이에요. 어차피 대여점에서 책빌려다 읽으면서 얼음과 불의 노래나 반지의 제왕 기대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기본은 해줘야겠죠. 비문이 없고, 정확한 어휘를 쓰고, 문장이 정연하고, 이야기의 앞뒤가 맞도록... 중학생 일기장에서도 이 정도 규칙은 지켜질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99%의 쓰레기들은 이 정도 '예의'조차 지키지 않아요. 한 편의 소설을 쓰겠다 작정했으면 적어도 그 소설을 쓰는 언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할텐데, 스토리나 구성 따지기 이전에 말 자체가 안됩니다. 중고교생 작가들이야 그렇다쳐도 나이 꽤 먹고 책 몇질 냈다는 사람들조차 고등학교 교육 이수가 의심되는 수준의 문장을 구사해요.
한창 이런 것 빌려다 읽었던 시절은 온갖 억압속에서 현실도피할 꺼리를 찾던 중고딩 시절이었죠. 지금도 비슷할걸요? 국산 판타지 소설은 우습게도 뚜렷하고 장르가 정형화되어 있는데 항상 인기있는 종류는 '평범한 소년이 어느날 갑자기-'죠. 그 이후로 배리에이션은 다양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판타지 세계로, 어느날 갑자기 게임속 세계로... 소설을 통해 대리만족을 즐기는거야 나쁜건 아닌데, 문제는 너무 유치하고 노골적이라는 것.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소년'이 매우 일차원적인 욕망을 마음껏 풀 수 있는 상황으로 던져져서 제 하고픈대로 휘젓고 다닌다는게 99% 국산 판타지의 핵심이에요. 그것 빼면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근자에는 해품달의 영향인지 동양적 냄새를 가미한 왕실로맨스가 흥하더군요. 이건 대리만족의 주체가 젊은 여자로 바뀔 뿐이지 얼개는 똑같음(근데 대개 여성 필자들이 쓰는 이쪽 물건들은 재밌게도 적어도 문장은 제대로 씁니다. 여자 작가들이 언어능력이 뛰어나다기보단 남자 중고등학생보다 양심적(?)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는)
수준이 이 지경이니 독자층이 뻔합니다. 나이먹으면 손에 안잡힐수 밖에 없는 물건이에요. 대리만족 현실도피를 위한 값싼 종이뭉치로 국어구사조차 안되는 판타지를 읽기보단 무협을 찾게되죠 그때부턴. 그래도 무협 쪽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에요. 기본적으로 수십년간 일정한 시스템(?)하에서 쌓아온 기반이 있고 작가의 연령대도 높은 편이고, 아무렇게나 장난치듯 써서 일단 책을 만들고 보자는 식이 아니라 진지하게 쓰는 분들이 많거든요(여기서 퓨전 무협같은건 제외. 검기 검강 9대문파만 나온다뿐이지 중고딩 대리만족 판타지인건 마찬가지니까). 독자층이 뻔하니까 대여점하고 업계(?)하고 묘한 공생관계가 형성되죠. 읽어주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주머니 빈약한 저연령 학생들이니 만약 어느날 갑자기 대여점들이 뿅 하고 다 사라진다면 99%를 쓰레기로 수놓는 국산 판타지 업계는 하루아침에 소멸할걸요. 구매력이 있는 연령대로 오면 그런 물건들 권당 만원 가까이 주고 살 이유따윈 전혀 없구요.
서론이 길었는데... 한때 '저런것 나도 쓰겠네'해서 끄적끄적 해본 적이 있었죠. 그때 느낀게 '야 이게 쉽지 않구나' 기본적으로 긴 이야기를 써내려간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고된 일이더라구요. 무슨 그럴듯한 줄거리를 구상하고 인물을 설정하는것 이전에, 매끄럽게 말이 되는 '문장'을 쓰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사실 당연한건데... 만화가가 되려면 만화 그리는 법을 배우고 끊임없이 훈련을 해야겠죠. 머리속에 스토리만 있다고 만화가 그려지는게 아니듯, 글 쓰는 것도 훈련해야 하는 기술인건데 말이죠.
그래서 그 쉽지 않은 일을 책 몇권 분량으로 해내는 99%의 작가들을 새삼 달리 봤냐...하면 그건 아니구요. 오히려 그 뻔뻔함에 놀랐습니다.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퇴고라는걸 전혀 하지 않는다는걸 깨달았거든요. 내가 쓴 글 한페이지 써놓고 딱 한시간 후에 읽으면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어릴때 쓴 일기장 읽을때 누가 보는것도 아닌데 창피하고 막 그러잖아요. 그거의 한 백배쯤 되는 민망함과 오그라듦이 밀려들거든요. 종이낭비 쓰레기를 양산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쓴 낙서를 한번이라도 다시 읽었다면 뻔뻔스럽게 그런 글을 가지고 출판할 생각은 엄두도 못내지 않을까...아니면 이 사람들은 나의 상식을 뛰어넘는 철판이라 오히려 제 글을 읽고 나서 '이정도면 훌륭한데 후훗'하고 만족했던 것인가... 싶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