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 기록을 찾아봤는데 좀 가혹한 것 같아요
사례 1. ㅇㅇㅇ (1996년 연세대 성정치위원회)
- 97년 즈음 같은 활동 공간에서 알게된 B에게 가해자는 99년 말부터 거의 매일 두세 차례씩 전화를 하고, 수 차례 메일을 보냈다. B역시 "전화하지 말라"는 말을 여러 차례하고, 의도적으로 침묵하거나,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식으로 돌리기도 하였지만, 가해자의 전화는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2000년 4월초에 가해자는 B에게 구애를 시작하였으며, 이에 B는 교제 의사가 전혀 없음을 명확히 여러 차례 밝혔지만 가해자는 5월초에 또 구애를 하였다. 또한 가해자가 통화중 "어디냐?", "누구와 같이 있냐?"는 등 감시하는 듯한 말을 해 B는 심리적 위축감을 느꼈다.
- 또한 97년 4월 중순에는 오후 11시경 가해자가 전화로 B의 위치를 확인 한 후 B가 지나는 길목에 갑자기 나타나 B는 신체적, 물리적 위협으로까지 느끼게 되었다.
- 99년 말부터 계속되었던 전화는 B가 가해자를 스토킹으로 제소함에 따라서 6개월 여 만에(99년 12월∼2000년 5월)멈추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A는 여러 차례 거부의사를 밝혔음에도, 10여개월간 수백 여 통의 전화와 두 차례의 구애를 받고, 한차례의 성폭력을 겪었다. B 역시 거부에도 불구하고 6개월여 동안 수백 여 통의 전화, 수 차례의 메일, 두 번 이상의 구애를 받고, 위협적인 상황을 경험하였으며 이로 인해 A, B 모두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피해를 입었다.
사례 9. ㅇㅇㅇ (1998년 서울대 총학생회)
B; 가해자는 실제로 힘들고 아쉬운 순간에 인간적인 행동으로 동지로서의 믿음을 갖게 해 주었다. 활동을 하면서 일손이 모자라 힘들던 시절에 행사 준비를 도와주고 직접 참여하기도 하는 등 동지로서 신뢰를 쌓게 되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고 같은 공동체를 공유할 수 있도록 가해자를 도와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동지애가 있다고 믿고 있는 상황에서 하루는 회의 후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새벽 3시가 넘었는데, 가해자가 잘 곳이 없다고 하여 방에 데려와서 침대 아래에 자게 하였다. 그러자 '도와달라', '요즘 외롭고 기분이 꿀꿀하다'고 하면서 애절하게 동정심을 유발하였다. 그래서 뭘 도와달라는 거냐고 물었더니, '옆에만 있어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옆에 누웠더니 '가슴을 만져달라', '가슴을 만지게 해 달라'는 둥 계속해서 성적인 행동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잠깐 생각하였으나, 사실 별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요구대로 들어주었다. 그리고 패팅을 하다보니 섹스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고, 섹스를 통해 본인의 순결 컴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섹스를 하였다. 그 후 뭔가 찜찜하여 A와 D에게 그 일을 이야기했다가 그 일이 있은 바로 다음날에 A 역시 같은 수법으로 당했다는 것을 알고 놀라고 분노하였다. B는 이 사건 이후에 가서야 '당했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고 말하였고, 자신의 행동 역시 가해자로부터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강하게 거부하거나 혹은 '맞짱'을 뜨는 것, 양자 뿐이었는데 자신의 성격상 후자를 택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사례 13. ㅇㅇㅇ (1998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① 피해자 A
1997년 4월 30일 청년학생한마당이 끝나고 난 뒤 동아리 술자리가 있었는데 당시 동아리연합회 회장이었던 가해자가 술자리에 합석하게 되었다. 술자리 와중에 가해자가 내게 "오늘 너희 집에서 자도 되냐?"고 물었고 평소에 누구보다도 친하고 허물없는 관계였으므로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는 내 방에 와서 잤고 도중에 그의 손이 내 배로 올라왔다. 그 때마침 동아리 후배들이 집으로 술을 사들고 찾아와서 창 밖에서 시끄럽게 굴었으므로 그 이후로 별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다음날 그래도 좀 찜찜해서 가해자를 만나면 왜 그랬는지 물어볼까 망설이는 와중에 바로 가해자가 내게 와서는, "너 어제 나한테 왜 그랬냐? 니가 내쪽으로 오더라."고 말했다. 나는 당황스러워서 "먼저 다가온건 너 아니냐?"고 대답하고 말았다. 가해자의 기억에는 오히려 내가 가해자(?)로 남아있겠구나, 정말 억울하고 창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으로 그날 일은 잊어버리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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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실명을 알리고 공개비판했지만 일단 제가 이름은 지웠어요. 백인위가 성폭력 실명공개비판의 기원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이 정도면 개인적으로 사과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공개적으로 실명비판 받을 수준이라고까지는 생각하기 어렵네요.
9번같은 경우는 그냥 개드립에 넘어간 사례 아닌가요. "사실 별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요구대로 들어주었다. "에서 "다음날에 A 역시 같은 수법으로 당했다는 것을 알고 놀라고 분노하였다. "로 넘어가는 부분이 찜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