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비유는 토론을 어떻게 왜곡하는가, '부탁'의 교육
1.
잘못된 비유는 늘 토론을 왜곡시키는 주범 중 하나죠. 저는 비유는 그래서 반드시 아주 제한적으로 꼭 필요한 때만 사용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이전 글 중에 그런 전형적인 경우가 있어서 그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글쓴 분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나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먼저 우리는 교사가 특정 학생에게 자신의 마실 물을 떠오라는 '부탁'을 꽤 오랜 기간 동안 여러번 반복적으로 한 것이 권력 차이가 존재하는 인간 관계(교사와 학생)에서 그 권력의 남용 즉 꼰대질이 아닌 부탁이란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든 예는 "직장에서 회식을 하러 고깃집에 갔는데 일렬로 길게 쭈욱 앉았습니다. 그런데 반대편 멀리 계시는 과장님이 젓가락이 하나 없네요. 그래서 수저통 앞에있는 저보고 하나 건네 달라고 하"시는 상황입니다.
저는 최대한 똑같은 상황을 교사와 학생 간에 만들 수 있습니다. 급식 시간에 교사와 학생들이 교실에서 식사를 하는데 교사의 물통이 자신과는 멀리 하지만 한 학생에게 가까운 쪽에 있습니다. 교사는 학생에게 "00아 거기 선생님 물통 좀 이리 건네 줄래?" 이것을 보고 교사가 꼰대짓을 하고 있다고 말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마 보다 적절한 직장 비유는 다음에 더 가까울 겁니다. 직장에서 과장님이 종종 여러 번에 걸쳐 저에게 마실 물을 떠달라고 합니다. 저는 그 과장을 싫어하는데, 그래서 그런 부탁을 받을 때마다 변기물을 떠다 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은 아마 여러 분들에게 꼰대질로 느껴질 겁니다.
다음 예를 볼까요? "명절때 모든 친지들이 모여있"는데 "할머니께서 '00야 물 좀 떠온나.' 라고 하"는 상황입니다. 더 간단하군요. 할머니와 나와의 관계는 통상의 권력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아예 비유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끝으로 "고등학교때 담임선생님이 체육선생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뭐 선생이라기보단 한량에 가깝고(...) 좀 마초적이고 단순무식한데가 있었지만 근본이 좋은 사람이라 애들도 잘 따르고 두루두루 친했습니다. 이따금씩 교무실에 갈 때면 '00야 커피한잔 타와라. 나 둘둘둘인거 알지? 커피 두스푼 설탕 두스푼 프림 두스푼이다.' 이라면 웃으면서 별 생각 없이 타드렸죠. 그걸 마시면서 '역시 커피는 이래야 제맛이지' 라며 맛있다고 한마디 하시는" 상황입니다. 이 상황을 권력 관계가 남용되지 않는 부탁의 상황의 예시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학생 당사자는 그렇게 느끼지 않고 아름다운 추억의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많은 분들에게 이런 상황은 훨씬 강압적이거나 통상적인 교사의 꼰대질로 기억에 남을 가능성이 높죠. 즉 그 학생의 특수한 경험을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할 비유로 사용한 겁니다.
좀 치사할 정도로 이렇게 특정 글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마 범람하는 잘못된 비유의 남용에 대해 제가 유난 민감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뭐, 그만큼 잘못된 비유가 결과적으로 논점을 왜곡하거나 물타기에 기여하게 되는 걸 많이 봤기 때문이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2.
'부탁'의 교육적 목적 혹은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저도 역시 '부탁'이 학교에서 배워야 할 대단히 중요한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 부탁을 한 교사의 행위가 꼰대질이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모두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삭막한 계약적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결코 아니죠. 저 역시 그 교사의 행위는 꼰대질이었다고 봅니다만.
부탁에 대해서 학교이서 가르쳐야 할 두 가지는, 첫째, 권력을 바탕으로 한 부당한 부탁에 대해서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둘째, 동등한 지위에 있는 동료, 친구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정중하고 조리있게 부탁을 하고 도움을 받는 훈련 (물론 여기에는 반대로 남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도 포함이 되겠죠) 정도라고 생각해요.
저는 교사가 물 심부름을 시킨 '부탁'이 그런 의미에서 긍정적 교육의 효과보다는 부정적 효과가 훨씬 더 컸다고 봅니다. 한국 교육이 언제부터 그런 물 부탁도 사제 간 정의 표현으로 정당화되어야 할 만큼 지나치게 학생들에게 호의적이었던가요. 아직은 사제 간 민주적 관계의 과잉이 아니라 부족이 한국 학교의 문제가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