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무숲] 무신론자인 저를 개신교도로 만들고 싶어하는 삼촌이 있습니다(약간 스압)

저는 무신론자이고, 아빠쪽 집안은 모두 개신교도 입니다. 그냥 평범한 수준의 신자라기 보단 장로도 여럿이고 목사도 있고 막 그래요.

저는 열두살 무렵까진 강제로 교회를 다녔는데 일단 엄마가 비신자고, 원래도 친척들에 비해 신실하지 못했던 아빠까지 서서히 교회에서 멀어져서 종교의 자유를 획득했고,

중학생 때 성당 잠시 기웃거리다가 좀 더 나이가 들고나서는 철저한 무신론자가 된 경우입니다.

생각해보면 꼭 개신교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든 '신' 내지는 '창조주'라는 존재를 진지하게 믿은 적이 없는 것 같고요.

 

전 이런저런 이유로 아빠쪽 친척들 그닥 좋아하지 않고, 그쪽에서도 그걸 아는지 어설픈 전도 따위 예전에 포기했는데 삼촌은 예외네요.

꽤나 재밌고 말이 통하는 분이셔서 삼촌은 좋아하고, 숙모랑 사촌동생들까지 그 가족 전부를 좋아하는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삼촌은 저를 개신교도로 만드려는 시도를 참으로 꾸준히 하십니다.

 

2010년도에는 새신자 데려오기 주간이라고 한번 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길래 삼촌이 부탁하니까 가주는 거라고, 다시는 안 간다고 못 박고 가서는

예배 후에 점심 먹으면서 한바탕 무신론을 펼치고 왔는데(안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어요),

그러고 일년쯤 뒤였나 저희집에 놀러오셔서는 웃기지도 않는 일화를 얘기하며 또 전도를 시전하셨습니다.

무슨 목사 설교랬나 그랬는데, 그 사람이 어린 시절에 요구르트를 먹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사주지 않자 '난 요구르트 700개도 먹을 수 있는데!'라며 앙심(?)을 품었답니다.

그러고 요구르트 아줌마가 없는 나라에 살다가 다시 귀국을 해서 오래간만에 요구르트 아줌마를 보고는 어린 시절이 생각 나서 수레 안의 모든 요구르트를 다 샀고,

그 다음, 그다다음 아줌마까지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집에 와서 요구르트를 세어보니 딱 700개였다는 얘기를 풀어놓더군요.

그래서 전 기독교라는 종교는 현세구복적 신앙이 아니지 않느냐,

삼촌네 신은 죽고나서 천국 가면 요구르트 실컷 먹게 해주는 신이지 현실에서 요구르트 700개 먹게 해주는 신이 아닌 걸로 알고 있다,

내가 듣기에 이 이야기는 그냥 유아기에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멀쩡해 보이는 성인의 판단력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라고 했고요.

사실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자기 이름으로 벌어지는 세상의 그 모든 폭력을 내버려두면서 고작 어떤 인간 하나가 요구르트 700개 먹고 싶었던 걸 마음에 담아두고 

살뜰히도 챙겨주는 수준의 신이라면 그런 신 따위는 요구르트에 빠져죽어야 마땅하다-였지만 차마 그렇게 말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요구르트 일화 이후로 2년 가까이 조용하길래 포기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삼촌이 또 놀러오셨는데 '예수와 함께 한 저녁 식사'라는 책을 가지고 와서 "니 책 좋아하제? 그냥 소설책이니까 한번 읽어봐라" 이러면서 또 전도를 시전하셨습니다.

사실 올해의 목표 중 하나가 책 50권 읽기라서 이번 주말 동안 500쪽에 육박하는 그리스인 죠르바를 다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그 책의 1/4 정도밖에 안되는 예수 책을 읽으면 더 헐렁한 주말을 보낼 수 있겠구나 싶었고, 무엇보다 계속 되도 않은 짓을 하는 삼촌이 불쌍하기도 해서 

까짓 읽어나보자 라는 마음으로 일단 그 얍실하고 쬐깐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긴 읽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참으로 얄팍하고 독자를 바보로 아는 책이더군요.

한 20%쯤 전개된 지점부터 힌두교니 불교니 이슬람이니 잘 모르는 종교들의 사상을 늘어놓으며 혼란을 유도하더니 예수를 부정하면 고대사 전체가 뒤집힌다질 않나,

성경무오설로 보이는 헛소리를 하질 않나 여튼 이걸 다 읽어야 하나 삼촌이고 뭐고 당장 폐지함에 집어넣어야 하나를 고민하게 만들더군요.

어째저째 읽긴 다 읽었습니다만 참... 책이 너무도 수준 미달이어서 불쾌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갑갑할 지경이었습니다.

중간중간 깨알 같이 이슬람을 까는 주제에 자기들 종교의 모순은 다 넘어가고, 그냥 무조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받아들이면 장땡이라니

전도를 목적으로 이런 책을 쓴 작가나 무신론자를 상대로 전도를 하겠다면서 이런 책을 선물할 생각을 한 삼촌이나 절대 마케팅 관련 업종에는 기웃거리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사실 뭐 딱히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이런 것도 아니고 그냥 삼촌이 불쌍해서 이 부질 없는 짓을 포기하셨으면 싶은데 방법은 당연히 없겠죠?

혹시나 좋은 방법 있으시다면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마 삼촌도 그만두는 길이 보이면 고마워 하실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네요.

    • 솔직하세요. 특히 멍청한 책은 그냥 멍청하다고 해주는 게 좋습니다.
      • 다음에 책 읽었냐고 물으면 제 평생 읽은 책 중 두번째로 멍청하다고 해야하는 건가요. 참고로 첫번째는 말미에 난데없이 여성은 혼전 성관계를 안하는 편이 좋다고 주장하던 동물행동학 책이었어요.
    • 딱히 방법은 안떠오르는데 이 얘기 재밌는데 계속 연재해주셨으면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 저도 남의 얘기면 재밌게 읽었을지도요.
    • 대체로 그렇게 전도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사람들에게는 '난 무신론자다', '당신이 신을 믿는건 좋은데 나한테 강요하지는 마라' 류의 이야기를 하면 무슨 파란 신호등이라도 본듯 더 달려듭니다. 저같은 경우, 사탄의 자식이나 할 법한, 기독교 예수 하나님 모독적인 잔인한 발언을 하면 다들 조용해지고 저를 위해 기도를 하는지 저주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안건드리더군요.
      • 노하우 공유 차원에서 잔인한 발언의 예시 부탁드립니다:-) 제가 무신론자임을 수없이 밝혔음에도 말끝마다 하느님 찾고 모든 화제를 성경으로 돌리는 골수 천주교도가 하나 주변에 있어서요.
        • 웃; 그것은 차마.. 그냥 제 말은 '중도' 입장을 보이면 그것은 전도하기에 안성맞춤이라서 포기하지 않으니, '혐오' 입장을 표명하면 포기하는 경우가 많더라는 이야기입니다.
          (+ 추가된 댓글 보고) 네... 골수 천주교도도 거의 무적이죠; 흠.. 저는 제 사회적 공동체 안에서 혐신인 (유신론을 혐오하는 사람)으로 너무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어서 아무도 감히 전도는 시도도 안하는데... 이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사회적 비판 및 때로는 고립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정말로 유신종교주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하는 것을 알리면 괜찮은 것 같아요.
          • 절 전도하려는 건 아니니 다행이지만 경멸과 혐오 입장을 보여도 '모든 화제를' 종교로 돌립니다.ㅠ.ㅠ 제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사람을 자주 봐야 한단 말입니까..흑흑.
            • 우와... 강적이네요. 하긴 근데 종교가 조커카드와도 같아서 마음만 먹으면 코털에 붙은 코딱지 부스러기 갖고도 종교 얘기를 할 수 있겠죠. 글쎄요 저로서는 생각만해도 그런 사람을 자주 봐야한다면 머리가 띵한데; 당해본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ㅠ.ㅠ
              • 알고 보면 천주교도가 더 무섭다는 평소 생각이 굳어진 계기가 되었죠. ㅠ.ㅠ
                • 뭐든 하나에 미치면 무서운 것 같아요 ㅠ.ㅠ;; 아 가볍게 살아야지;
          • 혐오 표명도 해봤어요. 모든 종교가 바보같아 보이지만 특히 일신교의 오만과 독선은 진짜 꼴보기 싫다는 얘길 했었는데 더 강하게 나가야 하는 건가요.
            • 음- ;;; 전 쌍욕을 했는데 (예수에 대한), 이건 그 사람과 관계가 단절되는 것을 각오해야 하고요. 모르겠네요 제가 중학교, 대학 모두 골수 기독교 학교들만 다녀서 어릴때부터 노우하우를 체득한 것인지... 근데 삼촌이니깐... 저같으면 딱 정색하고, 이제 정말로 지겹고, 무슨 일을 해도 교회 안다닐거니까 그만하셨으면 좋겠다고 무서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해볼 것 같은데... 그것도 안통하면 전 그냥 내 팔자려니 하고 살 것 같기도 하지만 이건 너무 무책임한 조언이죠; 잘 모르겠어요 ㅠ.ㅠ
    • 그래도 참 착하시네요.
      • 삼촌에 대한 애정이 있으니 완전 매몰차게 잘라내기도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여지를 준 적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 포기를 모르시는 걸까요.
        • 조카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옥불에서 타는 것을 견딜 수가 없으신거겠죠; 다함께 천당으로 가야하는데...
          • 아 다음부턴 예수쟁이들 득실거리는 천국 따위 관심 없고 그냥 지옥에서 리처드 도킨스 강의나 듣겠어요-라고 해야겠습니다.
            • 그런 얘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설교와 전도를 유발하는 전형적인 유혹이죠. 안 그래도 입 근질근질하신 분께 너무 미끼던지시는 거 아녜요?
    • 예정설이 출동하면 어떨까?! 예!정!설!
      100%라고 장담은 못하겠지만요, 저 끌고 교회가려던 사람 몇 명 있었는데 예정설 얘기 꺼내면 다신 붙잡고 늘어지지 않더라고요.
      • 칼뱅의 예정설 말입니까. 얘기 꺼내려면 공부 좀 해야겠군요.
    • 푸핫 '요구르트에 빠져죽어야 마땅하다' 에서 빵 터졌어요!
      •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냥 저 말을 그때 내뱉었어야 하나 싶어요.
    • 합리적인 설득이 가능하면 그건 종교가아니죠
      • 역시 그렇겠죠. 이성적 판단이 빠진 자리에 들어오는 게 신앙인 것 같아요.
    • 삼촌에 대한 애정으로 말씀 다 받아주고 계셔서 계속되는 면도 있어요. 한 마디라도 더 전도했다간 관계가 끝나거나 지금 당장 아주 불편한 상황이 연출될 거라는 걸 그 분이 아셔야 끝날 거에요. 제 시어머니께서도 한 전도 하시는데 제게는 안 하세요. 제가 그 노하우를 빼내 상품화할 수만 있다면 일단 듀게에선 좀 팔릴 텐데.. 근데 노하우고 뭐고 상대에 대한 애정과 자기 기질에 달린 거죠. 일가친척 다 모인 식사자리라도 수틀리면 숟가락 바로 내동댕이치고 일어서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스스로와 주변인들한테 있을 때 전도는 끝납니다. 지금은 삼촌이 침엽수님 눈치를 너무 안 보심.
    • 자비하신 신께서 벌써 나를 구원해주었다고 하세요. 나는 구원받았음을 확신한다 그런데 교회는 왜 나가냐, 나는 남이 보는 곳이 아닌 골방에서 혼자 조용히 기도하면서 당신보다 신실한 신앙심을 유지하고 있다. 교회같은데 다니면서 오히려 때묻을까 걱정이다,,,
      뭐 이런식으로 하면 나가떨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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