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아무르를 보다, 2

강의실 밖을 보다 악기 들고 다니는 학생들을 보고 <피아니스트> 생각이 나 이어 씁니다.


<피아니스트>에서 하네케는 이자벨 위페르(에리카 역)와 브누와 마지멜(클레메 역) 사이의 관계를 탐구합니다.


하네케의 첫 번째 로맨스물이기도 한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의 결합은 사도마조히즘(SM)으로 이루어 지는데,


이 과정에서 클레메는 에리카의 SM 요구를 처음에는 거부하지만 결국에는 응합니다.


클레메는 에리카가 가르치는 대학원 과정에 응시하는 학생으로, 그는 연상의 교수에 성적 호기심을 품고 접근한 철부지 학부생 정도로 보입니다.


하지만 클레메는 에리카의 ‘병적인’ 고백을 듣고, 에리카의 진실을 알고 나서도 그녀를 버리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후반부에 에리카의 집으로 쳐들어가 그녀가 요구한(글로 적어서) SM 플레이를 펼치며 '주인' 노릇을 하는 폭발적인 시퀀스에 이르면,


관객들은 더 이상 클레메를 과소평가할 수 없게 됩니다. 


<아무르>의 안느와 조르주의 관계로 돌아가 봅시다.


에리카가 클레메에게 자신을 때려달라고 애원했다면,


안느는 조르주에게 자신을 요양원에 보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여기서 조르주가 안느에게 베개를 사용하는 신과 클레메가 에리카에게 주인 노릇을 하는 신을 비교해 보면,

두 영화에서 하네케가 말하는 ‘아무르(사랑)’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클레메가 에리카의 피학적 욕구를 채워줄 때, 클레메는 에리카를 사랑하고 있는 건가요 아니면 그녀를 경멸하고 있는 건가요? 


조르주가 안느에게 베개를 사용할 때, 조르주는 안느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 건가요 아니면  더 이상 죽어가는 안느의 꼴을 보기 싫어하는 건가요?

    • 피아니스트를 끄집어 내시다니 대단합니다. 그 두 사랑의 양태가 비슷하다는 것 역시 동의하구요. 렛미인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클레메와 에리카, 조르주와 안느가 보여주는 경멸과 욕망, 약속과 증오의 관계는 사랑과 증오가 불가능할 것 같은 타협을 이루는 절묘한 지점이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 피아니스트를 안봤지만, 최고한 설명하신 내용으로 유추해 보자면, 글쎄요. 저는 전혀 동의할 수 없네요.
      제가 남자라서 그런지, 나아질 희망이라곤 없이, 파괴되어만 가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행동이었다고 봅니다. 이미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동반자살을 수도 없이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하다가 어느날 문득 실행을 한거죠. 조르주가 안나에게 가지는 감정은 철저하게 사랑이었다고 봅니다. 다만 가끔 몹시 피로했던 거지요.
    • 전 피아니스트를 봤는데 저도 다르게 생각해요. 조르주와 안느는 아주 오랫동안 살고도 서로 묻혀있던 기억의 이야기를 하면 흥미롭게 들어주는, 아직도 서로가 지겹지 않은 사랑이자 또 한 몸처럼 모욕을 받아들이던 사이로 보였어요. 예컨대 조르주가 자식에게도 안느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방의 문을 닫아놓고 개방하지 않은 건 안느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고 안느가 느낄 감정을 거의 본인도 같이 느끼는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해요..
    • 클레메가 에리카의 집으로 쳐들어가서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보며 저는 클레메에게 실망했어요. 결국 에스엠 관계에 대한 혐오를 그렇게 드러낸 것 같고, 관계의 우위에 서지 못하는 (여자의 취향이 워낙 독특하므로) 남자의 좌절이 폭발한 것으로 보였어요. 그래서 이해가 되면서도 결국 너도 별놈은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결론은, 사랑은 아니라는겁니다. 호기심이 생겼고 무시당하는 동안 더 갈망하게 되었으나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는 가질 수 없음에 에라하고 폭력을 행사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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