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없는 관계'에 존재하는 자기기만


조건없는 관계 그런거는 세상에 없습니다 ㅋ

언어가 우리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이듯 서로가 관계를 맺는 것에도 도구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것이 바로 조건입니다.


조건은 꼭 물질적이거나 사회적인 지표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환산됩니다.

이를테면 그 사람이 가진 굳은 심지나 성실성이라든지 신뢰감이라던지 하는.

개개인이 ‘이만하면 이 사람과는 관계를 맺고싶어’라고 생각이 들만한 것이 사실상 조건이라는 것이죠.

이것은 모든 관계에 적용됩니다.

흔히 조건없는 관계라 불리는 부모자식관계도 사실 '나의 아들/딸'이라는 조건을 가진 관계죠.


결론적으로 경제력이나 외모나 인성이나 모두 조건 중 하나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서로의 조건을 얼마나 수용했나이고,

이때 어떤 조건을 우선순위로 둘 것인가는 개인의 취향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나는 인성이 바른 배우자를 찾고싶어'라는 말은 공공연히 통용되면서,

'나는 외모가/경제력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싶어'하는 사람은 왜 속물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거죠.

이것은 마치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닭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넌 돼지고기를 좋아하니 나쁜사람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나는 외모가/경제력이 좋은 사람 외엔 배우자로서는 전부 쓰레기라고 생각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이것은 취향을 어필하는 것 이상으로 일반화하기 때문이죠.

닭고기를 열심히 뜯고있는 사람 앞에서 혐오스런 눈빛을 보내며 '돼지고기 외의 고기는 전부 쓰레기야. 니가 먹고있는건 정말 역겨워.'라고 말하면

먹고 있는 사람이 한마디 하는 것이 당연하듯이요. (성격에 따라서는 닭다리를 던져버릴 수도 있겠죠-_-;)


반대로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돼지고기를 좋아하지 말고 닭고기를 좋아해줘.'라고 강요할수도 없는겁니다.

그러므로 경제력을 따지는 사람을 욕하며 '왜 넌 경제력만 따지는거니. 날 좀 좋아해줘.'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경제력을 보지 않아. 그런데 넌 왜 조건만 따지니'라는 말은 자기기만이니까요.

'경제력을 따지지 않는 배우자'라는 바람도 다양한 조건 중 하나기때문이죠.


경제력을 중요시 하지 않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만났을 때 자신의 조건을 강요하는 쪽이 결국 폭력을 저지르는 셈입니다.

이럴때는 각자의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아 떠나거나 대화로 조정해나가면 그만입니다.


주로 물질적인 조건을 따지는 사람에게 야유를 보내며 반대쪽에 맞추기를 종용하는 것은 조건들에 대한 가치판단때문인데,

인성이든 외모든 경제력이든 하나라도 제대로 갖추기가 어려운 것은 똑같다는 것을 너무 간과하는 것같습니다.

오히려 외모나 경제력을 따지는 것이 인성을 보는 것보다 더 너그러운 것일 수도 있죠.

우리가 흔히 '좋은 인성'이라고 말하곤 하는 것을 수양하기란 정말 까다로운 일이니까요.


결국 어떤 조건을 갖춘 사람을 원하든 본인의 가치관에 맞는 관계를 맺고 싶으면 그만큼의 조건을 갖추면 되는겁니다.

우리는 스스로에대해 대단히 후한 평가를 주는 경향이 있기때문에

자신이 가진 조건에 비해 더 많은 조건을 가진 사람과 관계를 맺기를 바라죠.


'경제력을 따지지 않는 배우자', '나와 앞으로 쭉 고생을 함께해줄 배우자'를 바라는 것은

경제력을 제외하곤 내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조건들을 가진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판단때문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아니고 그냥 상대의 일방적 희생을 바라기만 한다면 단순히 이기적인 것이겠지요.



    • 음, 이 주제에 발단이 된 분이 논의를 보고 본인에게 대입시키지 않았음 합니다. 이미 그분의 개인적 사례와 관련 없는 '개념'이나 '현상'에 대한 논의로 발전한 것 같으니까요. 실제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하나의 요소만으로 심플하게 진행되는게 아니라 다양한 요소가 복잡하게 결합되어 있죠. 그래서 결과가 어디로 튈지 뭐가 얼마나 어떤 작용을 할지도 예측하기 힘든거고요.
      여튼 그 외 본문 내용엔 대체적으로 동의합니다.
      • 말씀하신 것처럼 본문은 특정 사례가 아닌 개념이나 현상에 대한 글입니다. 시발점이 된 해당글에 대해서는 제가 맥락을 정확히 알수 없으니 왈가왈부하는 것은 주제넘는 일이 될 수 있겠죠. 미처 누락한 부분을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글쎄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해요. 경제력을 중요시 하느냐 중요시 하지 않느냐의 문제 보다는 그것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조건화 시키는가.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그리고 역시나 '계약'이란 관점에서 볼때 '미래의 예측성'을 얼마나 보장하는가 등으로 다양하게 볼 수 있게죠. 각 관점에 따라 충분히 부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물질적 조건을 '주로' 따지는 사람들 보면 보통은 부정적 요인이나 양상을 많이 보여요. 결혼이 아무리 현실이라지만 그걸 '로또당첨'이나 잘키운 자식'팔아치우기' '잘키운 아들딸전' 같은 대외 전시적 행위 것도 아님 바라고 바라던 풍족한 삶을 위한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에겐 아무래도 고운 시선을 보내기 힘들잖아요. 조금 다른 관점이지만 결혼은 커녕 연애도 힘든 삼포세대들에겐 결혼을 둘러싼 경제력 논란은 상대적 박탈감을 주기 때문에 역시 곱게 보이지 않을 거고요.
      • 개인과 개인이 만나는데 내가 박탈감이 들기때문에 그것은 속물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무의미한 것이겠죠.
        전세계의 인구 모두가 경제력만 중시하는 것도 아니고 흔히 말하는 '경제력을 강요하는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수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거나 못해도 비슷할텐데
        왜 굳이 경제력을 중요시하는 사람에게 가서 그러지 말라고 그러죠. 취향인데. 경제력을 따지지 않는다는 사람에게 경제력을 강요하지는 않으면서요.
        그냥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되잖아요.

        개인적인 짧은 경험에 의해서는 그런 현상은 내 마음에 들만큼 괜찮은 사람이 나를 위해 무언가 하나를 포기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내 마음에 드는 '멋진 여자/남자'가 '경제력/외모란 조건도 보지 않길'바라는 마음인거죠. 스스로도 '내 마음에 드는'이라는 조건을 바라고 있으면서도요.
        극단적인 예는 성녀/성자판타지가 있겠구요.
        이런건 그냥 판타지고 이기심이죠. 그런 마음을 갖는거야 어쩔 수 없지만 자기 판타지에 맞춰주지 않는다고 타인의 취향을 단순히 속물근성으로 비난하는건 이상한 일입니다.
        경제력을 보지 않는 조건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다른 조건은 다소 내 마음에 안들더라도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되는겁니다.
        이 지구에 사람은 많고 가치관은 다양하니까요.
        세상사 등가교환, 하나를 잃는게 있으면 얻는것도 있고 뭐 그런건데 모든걸 쥐고 다 가지려니 상대에게 이래라 저래라 넌 나쁘다 아니다 하는거 아니겠습니까.
    • 왜냐하면 경제력같은건 표면적인 것이기 때문이죠. 결국 인간이 만든 겁니다.

      인간이 만든것에 인간이 도리어 지배당하는 것. 이걸 철학에서 소외라고 부릅니다.
      • 착한 심성이나 예쁜 외모도 인간이 만드는 것 아닌가요...?

        표면적인 것이기도 하고요.
        • '착한 심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치관은 현대윤리학에서 좋네 나쁘네 판단하지 않아요. 남한테 피해만 안주면 ok입니다.

          예쁜외모는 선천적인 것으로, 이거갖다 차별하면 인종차별이나 마찬가지죠.
          선천적인것으로 차별하지 않는건 상식의 레벨입니다. 유럽가서 황인종이라고 차별당하고 싶으세요?
          • 현대윤리학과는 별개로 사람들은 '착한 심성'이라 부르는 것들이 있죠.
            '남에게 피해 안주는 것'은 물론이고 흔히들 '배려심' '이타성' '순수한 느낌' '순응적인 성향' '긍정적인 마음가짐' 등등을 '착한 심성'이라고 하니까요.
          • 현대윤리학에서 메주를 팥으로 만든다 그러면 맞는 말인가요? 주장에 근거는 없고 권위만 있네요. 님의 의견을 자세히 듣고싶습니다.
      • 그럼 표면적이지 않은 것은 무엇이 있나요?
        우리가 인격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이라는 도구를 통해 한번 환산된것이죠.

        문명에서 태어나 문명에서 죽는 인간이 무언가를 판단할 때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아니다 구분할 수 있을거라는 자만심이 더 허상같습니다.

        이쁜 사람을 좋아하는 취향이 있고, 그래서 그런 사람과 만나고 싶은게 뭐가 잘못된거죠.
        이게 인종차별과 같다면 제가 게맛살을 싫어하는 취향을 가진것도 게맛살차별이겠네요.
        물론 본문에서 밝혔듯이 그렇다고해서 이쁘지 않은 사람들을 쓰레기 취급하는건 다른 이야기구요.
    • 전반적으로 공감합니다. 저는 경제력은 상대적으로 별 신경 안 쓰지만(데이트 비용 반만 부담할 수 있으면 되지-라는 주의) 동물 싫어하는 사람이랑은 사귈 생각이 없는데 이게 더 고차원적인(?) 기준은 아니라고 보거든요. 뭐가 됐든 조건은 조건이죠. 오히려 이건 후천적인 게 아닌 선천적인 걸 가지고 문제 삼는 거니 더 고약하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 '나는 조건 때문에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니야'라는 식의 말은 이상해요.
      '조건'들을 다 빼버리고 나면 그 사람과 다른 사람이 다를 게 뭔가요.
      굳이 그 사람을 좋아할 이유가 없어지는 거고, 누구로 대체되어도 상관없는 거잖아요.
    • 결과론적으로 등가교환의 상황이 이상적이긴 하겠죠... 그런데 이런 식의 논지가 끝나는 곳은 결정사의 현장일 것 같은데 잘못 해석한 걸까요... 오늘 떡밥 많이 무네요;;
    • '얼빠짓 작작하고 좌빨정당이나 찍어 이 ㅂㅅ들아'라고 외치는 1인으로써 피할 수 없는 떡밥이네염.

      짧게 요약하여..
      '조건 없는 관계'는 허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조건이 동등하다는 주장은 무리.
      가치관과 취향을 혼동하며 판단중지를 요구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되는 듯 한데, 우려할 만한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특정의 가치관이 여타의 가치관에 비해 바람직하다고 평가되는 일은 불가피합니다. 그게 사회/문화적 산물일 뿐 아니라, 정치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라서.

      객관화되고 계량되어 비교될 수 있는 가치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본문의 예를 따르자면 '부 > 외모 > 인성'의 순.
      어떤 가치관에 입각한 평가는 평가자의 주관이나 소양에 크게 의존하는 반면, 다른 것들은 그렇지 않죠.
      물질적 부를 비교할 때는 수의 대소 개념만 있어도 될 것 같군요. 외모는 특정 문화권 내에서 통용되는 보편적 감각만 있어도 됩니다.
      하지만 특정인의 인성에 대한 평가는 평가자 스스로의 가치관을 반영할 수 밖에 없어요. 적어도 앞의 둘 보다는 반성적이고 평등하죠.
      (물론 '인간성 보고 결혼했어'가 대개 '사실은 얼빠'라든가, '사실은 돈'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좋은댓글입니다. 감사해요

        그럼에도 우리가 혼란스러워하는것은, 어떤 가치관이 더 바람직한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게 영 어려운 일이기때문이겠지요.

        언젠가는 이 게시판에서 이 주제에 대해 섬세하면서 급진적인 논의가 진행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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