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펑펑 울어버렸죠

    예전의 저는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많아서, 주변의 쿨하고 드라이한 족속들에게 '그 눈물 참 흔하기도 하지' 라는 비아냥도 숱하게 들어봤고, 적시에 귀하게 터져 나와 효과적이어야 할 눈물이 아무 값 없이 아무 때나 막 흘러나와 그냥 내 감정이 헤픈 증거가 아닌가 하는 자괴감으로 고민했던 적도 많았어요. 그런데 근 몇 년 사이 저는 철저하게 제 감정을 단속하고 마음을 숨기며 저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서는 '찔러야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 같다' 는 말 들으면 내심 기쁘고, 저를 좀 안다는 사람들에게선 '너 좀 강하고 건조해진 것 같다' 라는 말을 들으면서 어떤 상황과 상태에서도 이젠 정작 울 지 몰라 쭈뼛거리는 스스로를 느끼며, 이게 그렇게 내가 원하던 냉철한 감정절제를 획득한 것처럼 뿌듯하기까지 했는데...

 

   어젯밤엔 그냥 갑자기 펑펑 울어버렸죠. 특별히 그럴 일도 없었는데, 내 인생 남 인생 상관없이  인간으로 사는 삶이 너무 덧없이 쓸쓸하고 외롭기도 하고 짠하고 가엾어서요.  좁게는 자기연민에서 타인을 향한 주제넘은 동정심으로의 감정확대 라고 해도 반론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저 같이 매사에 감정적 에너지가 넘쳐 모든 신경이 야생마처럼 살아 펄떡거리던 인간이 이젠 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세상에 놀라울 일, 어느 것 하나 궁금한 일도 없이 잘도 살아간다... 그런 자신이 덤덤하게 익숙해지며 그냥 품위있고 점잖게 나이 먹어간다는 데 대한 안도감, 타인들이 나를 함부로 할 수 없고 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근엄함을 훈련하며 별 일 없이 산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나름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아니면 이 늦은 봄이 너무 찬란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인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고 어깨를 떨며 그냥 펑펑 울어버렸죠, 정말 몇 년만에.

 

   어제 그렇게 울다 잠들어 아침에 깨어나니 몇 년의 시간이 금세 관통한 것처럼 몸과 마음이 아득하고, 그래서 오늘은 달리지도 않고 몸을 쓰지 않으며... 그냥 새로 지은 밥에 따뜻한 국에 갓 부친 전에 정갈한 식사를 하고, 조용히 집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여 버린 뒤, 목욕을 갔다가 한동안 쉬고 있던 손발톱을 단장하고 돌아와 주말극을 보며 무상하게 앉아 있습니다. 언제 울었나 싶게 이젠 또 아무렇지도 않아요.

 

   운다는 건, 눈물이라는 건 이렇게 놀라운 자정 효과가 있는 거라는 것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네요. 모두 편안한 일요일 저녁 되시길.

 

    • 가끔씩은 그렇게 펑펑 울어 몸 속에, 마음 속에 나도 모르게 쌓인 것들을 비워내는 게 필요한가 봐요.
      • 리듬님 오랜만이에요.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해요. 여전히 야쿠자의 정부처럼 매력있게 지내고 계신 거죠?
        • 야쿠자의 정부ㅋㅋ;;; 그 때 수행원 놀이하던 애인이랑 결혼해서 지금은 유부녀가 되었어요. 매력은 뭐, 없어요. 예나 지금이나 철 없고, 게으르고, 제멋대로고 뭐 그래요.
          그리고 감사는요 뭘. 쿠델카 님 글 읽으면 공감하는 지점이 많고, 생각나는 친구도 있어서 할 말이 많은 듯하다가 결국 시덥잖은 댓글 간간이 달곤 하는 거죠.
          • 우왓, 이건 뭐 정말 넘 파격적인 뉴스 잖아요!!! 결혼 축하드리고, 수행원이시던 남친 분이랑 결혼하셨다니 더더욱!!!! 그 생각 난다는 친구분이 저보다야 훨 훌륭하시겠지만... 저의 경우는 제가 아주 가끔 떠는 패악으로 그나마의 이파리 다 떨구는 통에 조금은 외롭기도 하지만, 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독불장군입니다. 진짜 현(실에서 만나 커)피 한 번 하고 싶은 리듬님;;;
            • 저는 고집 세고 오만해서 사람 귀한 줄 모르고 방자하게 굴던 전력 때문에 끊긴 인연들이 적지 않다는;;. 그래도 최근에는 오래 된 친구에게 사람이 뭔가 따뜻해졌다는 칭찬?도 듣고 그래요.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준 녀석=남편 덕분인지. 그리고 언젠가 저도 쿠델카 님과 가볍게 현피 한 번 하게 될 수도 있겠죠. 그럼, 평안한 일요일 밤 되세요.
    • 일..일플의 영광;; 일플이라는 말이 갑자기 이상한데 일빠였나요.

      주옥같은 글에 뻘플을 일빠로 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데 지금 그것을 해내고 있는 중이라 맘이 벅찹니다.
      • 주옥 같다기 보다는 그냥 일기 같아서 좀 민망한데, 그냥 쓰고 싶었어요. 고맙습니다.
    • 그렇거 같아요 속이 시원한게 눈에도 좋고 울고 싶은데 맘대로 안되서 안울고 있어요.
      • 울고 싶을 때가 가끔 있었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아 당황스럽기도 했죠. 조만간 가영님도 저처럼 막 울게 되시겠어요 ㅎ ㅎ.
    • 전 오늘 아빠 어디가에서 후가 엄마랑 통화하다가 보고싶다고 우는데 저도 같이 울었어요.. 왜 울었던걸까요?;;
      • 사실 저도 금요일 저녁에 운동 갔다가 우연찮게 댄싱위드더스타 씨즌3 보는데 페이의 춤과 이야기 보다가 그때부터 마음이 수상하더니 급기야 토요일밤에;;;
    • 울고 싶은데 안 나와요. 너무 안 울어버릇해서.. 나 봐야겠어요. 그나마 이 영화를 보면 울 수 있어요.
      • 허공에의 질주,나 봐야겠어요. 라고 썼는데 안 나오네요.
        • 울고 싶을 땐 안나오다가, 갑작스럽게 나와야 말 그대로 안구정화도 되고 평상심도 빨리 회복되는듯 해요.
    • 전 남의 일을 보곤 잘 우는데, 제가 힘들 땐 이상하게 눈물이 안 나요. 가끔 속 시원하게 울고 가뿐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잘 안 되네요.
      • 전 남의 일에는 더더욱 눈물도 없는 인간이었는데(대구 지하철참사 때도 밍숭밍숭 별 감정이 안 들 정도로 비정한;;), 어느 생뚱맞은 상황에서 자극을 받으면 울게 되더라구요. 어쨌든 저도 몇 년만에 처음으로 엉엉 울었네요. 그런데 정말 가뿐해요.
    • 저도 일부러 울어야 할 때가 있는데―그래야만 뭔가 다음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요―그때마다 마땅한 컨텐츠를 찾느라 늘 고생입니다. 울고 다음날 하신 행동들도 교본에 가까운 것 같아서 부럽고 또 멋집니다.
      • 마땅한 컨텐츠를 찾아야 할 것 같은 그 눈물은, 늘 가뭄에 갈라진 논밭같은 강퍅함만을 드러내니 고생스러울 때 저도 많았죠. 교본에 가까운 익일의 행동들은... 그냥 많이 울었더니 배고 더 고프고, 남은 밥도 있었는데 새밥에 제대로 된 끼니 먹고 싶어서 한 것이라는 말씀드리면 실없으려나요. 감사해요.
    • 쿠델카님 글 오랜만이네요. 이따금씩 생각하며 기다렸답니다:-)

      저는 얼마전에 전구를 갈다가 무슨 수를 써도 불이 들어오지 않아 아이 XX, 육두문자를 내뱉고는 갑자기 엉엉 울었답니다. 울음을 그치고 나니 스탠드가 고장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글을 읽고 나니 목욕이 하고 싶어졌어요. 시원하게 때목욕하고 손발톱 정리하러 가야겠네요.

      종종 글 써주세요. 일교차 심한 계절에 감기 조심하시길:-)
      • 벚꽃님, 제주도 가서 멋진 스킨스쿠버에 여전히 실한 밥상. 우리 정말 함 봐야죠. 듀게의 친목질은 저도 금기 사항이지만, 제가 조만간 연락 드릴까 합니다, 벚꽃님의 호의에 제가 너무 늦지 않은 것이기를. 대신 더 늙고 우아해진 한 마리의 살쾡이를 보실 수 있을 거라고 감히 확신합니다;;;
    • 몇 년 전 얘기지만 그때까지 살면서 운 것보다 더 많이 한두달 기간동안 집중적으로 운 적이 있어요. 근데 저는 울고 난 후가 너무 힘들어서 (두통에다 심한 안구건조증) 펑펑 울고 나서 정화되는 느낌은 별로 못 받아요. 요즘엔 좋은 음악, 영화 감상 후 찔끔 우는 경우가 대부분이군요.
      • 와이셔츠 단춧구멍 만 해진 부은 눈과 깨질 듯한 두통을 동반한 집중적인 울음, 저도 익히 겪어 봤지요. 많이 힘들고 스스로가 너무 못생기고 못나 보이는 눈물은 정화와 상관없이 참담함만 증폭시킬 뿐이지만... 간만에 뜬금없는 눈물은 또 눈동자가 맑아지면서 조금 더 뻔뻔해지는 힘도 생기더라는;;
    • 엇, 진지리플 달아야겠다// 남자가 눈물을 흘리면 호르몬이 어떻네 나이먹었네 여러 말이 있습니다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감성이 나는 뭐 좋은 걸요. 눈 건강에도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눈물이 많은 편이고요
      • (무기로 이용하지 않고, 제 감정에 겨워 어쩔 줄 몰라 엉엉) 우는 남자 짠하고 매력있어요.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모성에의 본능이 용솟음 치면서. 제 경험으론 (사랑하는) 우는 남자의 머리통을 끌어 안고 쓰다듬으며 다른 한 손으론 등을 토닥거리던 기억도 있습니다. 어멋!!
    • 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눈물이 너무 해퍼서 걱정이에요. 생긴거나 말하는 거나 바늘하나 안들어 갈거 같이 생겼다는 말도 종종 들은적 있어요. 전형적인 외강내유형이죠;;;;

      나이 먹으면 눈물이 좀 줄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지난달 초쯤에 기분이 울적해서 춤을 추러갔었는데 그날 뜬금없이 눈물이 터져 같이 계시던 남자분이 당혹스러워 하시면서 계속 어깨를 토닥거려 주시더군요.



      가끔 생각지도 않은 지점에서 눈물이 터지면 저도 참 난감해져요. 뭐 이런건 좀 무뎌져도 좋은데;;
      • 에휴, 춤추러 갔다가 울어버린 기분 저도 알 것 같아요. 그래도 외강내유형이시라니 시크한 차도녀(남)의 포스는 잃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요즘 같은 세상엔 또 그게 중요한 거 잖아요...ㅜ
      • 이건 참, 이 눈물의 역습은 생리불순인 여자가 차려입은 흰 원피스 차림에 갑자기 터진 생리 같은 경우가 있죠...(비유가 좀 그렇고 적확하진 않지만 나름 리얼하다 생각해서요;;;). 우울하고 안 풀리는 때보다, 되려 아무 일 없고 평안하게 무상할 때 눈물이 흐를 때가 더 많은 것도 같아요. 그래도 소소한 즐거움 누리셨다니 좋은 봄 보내고 계신가 봐요.
    • 저는 어릴때부터 잘 우는 아이도 아니었고 그다지 정도 없는것 같고 감정도 뿌옇고 무미건조한 사람인데
      살면서 생채기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남의 아픔이든 내 아픔이든 아프고 쓰린걸 보면
      잘 울 수 있는 아저씨가 된것 같아요.
      • 그럼요, 스스로를 그렇듯 사랑하시는 분인데요. 제가 늘 좌우명으로 삼고 싶은 닉이십니다. 자기애는 넘쳐나도 자존감은 부족한 저로서는.
        • 슬로건은 컴플렉스를 반영... -_-;; 저도 자존감이 많이 낮아서요~
          저는 원했던 것을 처절히 실패하고 나서
          누나가 어깨를 두드리자 갑자기 펑펑 울었었는데 그때 치유와 위로가 많이 되었어요.
          가족애 같은것도 느꼈구요. 성인이 되고나서 펑펑운건 그때와 할아버지 돌아가셨을때 두번이네요.
          그럼 쿠델카님 좋은봄날 되시길
    • 울음이 가슴에 가득차있다가 느닷없는 상황에서 터질때가 있어요 햇살이 너무 화창해서 테레비 광고가 찡해서 쓰던 볼펜이 안나와서 등등;;

      마치, 기다려만 봐라 내가 펑펑 나와줄테다, 하고 벼른것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아 너무 당황스럽죠 하지만 어깨 들썩이며 엉엉 울다보면 마음 한구석 구름이 걷히는거 마냥 가벼워지더라구요 잘하셨어요

      쿠델카님 오랜만이에요 기억하실런지ㅎㅎ글 종종 보며 맘속으로 응원하고 있답니다
      • 맞아요. 가득 차 있다가 아주 작은 자극에도 툭 터져버리는 것 같아요. take님 정말 오랜만이시네요. 이젠 한 남자분의 어엿한 부인이 되신 것 같아서 더 어려워 하고 있었는데 잊지 않고 기억해주시니 더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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