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울적할 때 하는 게임, 게임하는 남자.
1.
저는 정말 울적하고 무기력할 때면 '레이싱 게임'을 합니다.
그것도 다른 차량들과 불꽃 튀는 경주/서킷 게임보다는,
혼자서 시간단축을 목표로 코스를 뛰는 '랠리'류의 게임을 더 선호해요. (더트 시리즈라던가..)
비록 게임이라지만, 혼자서 다른 것 신경 안쓰고 '제일 좋은 라인으로, 제일 빠르게'라는 것만 생각하고,
가상의 운전을 하다보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실제로 해외 야지의 자연경관을 즐기며 러프하고 스피디한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일단 차도 없는걸요 T.T...
그래서 가끔 게임 안에서 분노(?)의 질주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2.
문득 게임 생각하다보니,
예전 소개팅 생각이 났어요.
3년인가 4년 전즈음에, 여후배의 소개로 저보다 한 살 어린 아리따운 분을 소개받은 적이 있어요.
그리고 제가 푹 빠져버렸답니다. 정말 매력적인 분이었어요.
무엇보다도 그림을 잘 그렸고, 게임 쪽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분이어서,
'관심사가 잘 맞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났구나!' 싶은 기대도 있었어요.
하지만 차였습니다.
사실 소개팅이 잘 안되도 그다지 신경쓴 적이 없었는데,
그 때는 정말 마음이 있었는지 멘붕이 무엇인지 실감하던 참이었어요.
겨우겨우 멘탈을 회복하고,
2년여가 흘러,
그 기억이 흐릿해져갈 즈음,
소개팅을 주선해주었던 여후배와 술을 한잔 하게 되었어요.
어쩌다가 그 때 소개팅 이야기가 나왔는데,
여후배가 제가 차인 이유를 말해주기를,
"그 떄 제 친구(여자)가, 오빠 인상도 좋고, 호감도 갔는데,
게임 좋아한다는 이야기 듣고 마음이 사라졌데요 T.T..."
-_-!!!
그 이야기를 듣고 적지 않게 충격을 먹었어요.
그 여자분은 게임 업계에 종사하는데다가,
게임도 좋아한다고 직접 이야기하셨던 분이라서,
저도 마음 놓고 게임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꺼냈었는데,
그게 마이너스일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거든요.
그리고 그 당혹감을 토로하니,
여후배 왈,
"사실 자신의 취미가 어떻던 간에, 이성이 가졌으면, 혹은 가지지 않았으면 하는 취미가 따로 있을 수도 있거든요.
물론 선배가 게임이라는 것을 정말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은 아는데,
대게의 경우 그 게임이라는 것이 여자들에게는 호감가는 취미일 경우는 드물고,
설령 여자 자신이 게임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이성이 같은 취미를 좋아하기를 원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 수 있어요"
... T.T...
그리고 함께 게임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되도록 여자분과 '어느정도' 알게 되기 전까지는, 초장부터 자랑스럽게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조언도 듣고 나왔지요.
그래서 요즘에는 이성을 만나는 대부분의 경우 제 취미를 쉽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말따마다 저를 설명하고 제시할 시간이나 기회가 부족한 상황에서,
'게임'이 취미다! 라는 것을 말하면 대부분 독이 된다는 것을 슬픈 사례를 통해 배운 것 같아요.
같은 맥락으로 그림이나 만화, SF 쪽에 관심있다는 말들도 접어놓는 편입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런 이야기를 해보았자 다양한 취미를 가진 사람보다는 'GEEK'에 가까운 이미지가 형성되겠다는 불안감이 있어요.
그래서 다 빼고나면 취미라 말할 것이 '자전거나 독서' 정도만 남더라구요.
.
먼 훗날에는 '게임하는 남자'도,
그럭저럭 수용가능 한 이미지가 될 수 있을까요?
취미를 취미라 말하지 못하는 게이머는 슬픕니다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