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남자들이 좋다. : 푸코, 그람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0.
푸코와 그람시는 그렇다 쳐도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는 왜 나온 걸까? 싶으신가요?
1.
저는 푸코가 좋습니다. 저는 자비로라도 푸코에 대한 책을 쓸 건데요, 제목을 이렇게 박을 겁니다. "내가 가장 사랑한 남자, 미셸 푸코." 푸코가 언제부터 좋았냐면, 그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단지 우연히 대중욕탕 같은 데서 본 집단 섹스씬이 (굳이 부가 설명을 하자면 동성끼리 하는) 인상 깊었다고 술회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부터였죠. 그냥 느낌이란 게 있잖아요? 아 이 남자는 내가 진짜 좋아할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이 게이든 뭐든 그런 것보다 그냥 그런 말 했다는 게 끌린 거에요. 직접적으로 제게 멋있는 사람이 된 거죠. 그리고 저 같은 무식쟁이가 글 읽다 보면 어디서라도 푸코 이야기가 간간히 나오더라고요. 우연히 판옵티시즘이라고 시선의 권력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 미셸 푸코가 더 생각이 나기도 했고. 이 아저씨는 책 제목도 진짜 그럴 듯 하게 뽑잖아요. 성의 역사, 감시와 처벌. 좀 멋있지 않나요? 아무리 철학서적 혹은 전공서적이라도 언제나 저는 생각하는 것이지만 제목을 자극적으로, 아름답게 뽑아야 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나요? 읽고 싶어지지 않나요? 그래서 저는 운명적으로 오생근 씨가 옮긴 감시와 처벌을 보게 된 것이죠. 다른 분들은 이 역이 마음에 안 든다 그러는데, 저는 좋더라고요. 제가 문제 있는 건가요? 그런데 다 읽지도 못했어요, 제가 워낙 무식쟁이라. 지금 학기 중이라 바쁘다는 변명을 좀 하긴 할게요. 바빠봤자 얼마나 바쁘다고 말이죠. 그냥 1부 정도만 읽었어요.
그런데 하지만 느낌은 옳았더라고요. 맨 처음부터 유죄판결 받은 대역죄인이 공개 사죄 이후에 쇠집게 고문 당하고 유황불로 태워진 다음에 그 지져진 상처에 뜨거운 기름을 붓고 사지를 거열시킨 다음에 다 불태워 없애서 재를 바람에 날려 버린다니. 그렇게 끔찍한 장면을, 모르겠어요, 제가 읽다보니 저는 푸코가 느끼는 동정심이 느껴지긴 하던데, 인용하듯 (물론 실제로 기사 인용이긴 하지만) 이야기하는 게 변태스럽다고나 할까. 저는 옛날부터 엔하위키 같은 곳을 볼 때도 잔인한 이야기들을 직접 쓰는 사람들 역시 그 잔인함에 의한 오르가즘을 느낀다고 생각을 하긴 했었죠. 만약 정말 "건전"한 사람들이라면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지도 않아하지 않을까요? 그런 글을 쓴 사람들을 인신공격하는 건 아니에요. 이런 생각하는 제가 문제 있는 것일 거에요. 어쨌든 재미있는 구절이 너무나 많아요. 옛날에는 사형수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유발하던 그러한 형벌들에 지금은 전문가 집단들이 등장해서 사형받는 인간 옆에 간수, 의사, 사제,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교육자들이 나타난다는 문장을 예로 들겠습니다.
이런 글 읽으며 저는 소름이 돋았어요. 왜냐하면 제가 느끼는 갑갑함을 푸코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지요. 가끔 내가 왜 이곳에 태어나서 이 사람들 사이에 엮이며 내가 원하지도 않는 질서에 포함되어서 살아가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니까 말이지요. 정말 저는 단 한 번도 "나는 이 집단의 법에 동의하겠습니다," 라는 선서를 한 적도 없는데 제가 어떤 죄를 저지르면 잡혀가는 거잖아요? "나는 여자로 태어나서 남자를 좋아하며 여성성을 보이면서 그들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여성성이 여성인 내게 우월한 가치로 강요된다는 생각도 했어요. 다만 말씀드리고 싶다면, 저는 급진적인 상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게 옳은 건지 아닌 건지를 떠나 그저 답답함을 느꼈던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파렴치한으로 보이나요?) 하지만 가장 답답한 때는 말이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빼고 아무도 없어 보이는 거에요. 적어도 제 곁에 말이지요. 그렇지만 푸코가 나 대신 생각해서 훨씬 더 세련되고 아름답고 정교하게 말해준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고마움, 이라고나 할까요. 그것 때문에 저는 푸코가 좋아요.
2.
그람시가 좋은 이유는 푸코보다 훨씬 단순해요. 잘 생겼거든요. 사실 책도 한 번도 안 읽어봤어요. 제가 이렇게 얄팍한 사람입니다. 그냥 그람시는 제가 좋아하는 생김새를 갖췄어요. 얼굴 아시나요, 다들? 눈썹 엄청 진하고 갈매기 눈썹이에요. 제가 프리다 칼로 눈썹 닮았다는 소리 좀 듣는데 이 아저씨도 비슷하게 생겼어요. 저는 저랑 얼굴 닮은 사람을 좋아한답니다. 진하게 생긴 사람들 말이지요. 그람시는 몸이 불편한 사람이었던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하지만 저는 그의 인생이나 제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그의 사상에서 어떠한 강력한 내면의 힘을 느껴요. 그가 단지 위대한 혁명가로서 포장되었기 때문에 제가 그런 것을 느끼는 것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고통 속에서도 의연하게 살아나가는 사람들 말이지요. 그런 사람들은 실존합니다. 저는 그의 사상에서부터 그러한 것을 느꼈습니다. 좌절하기 좋은 상황 속에서도 행동해야 한다고 결연하게 말하는 남자잖아요. 감옥에서도 그의 손을 꺾을 순 없었습니다. 저는 그런 것을 좋아합니다. 제 취향일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숭고해 보여요. 취향 차이일려나요? 그의 사상은 어렵고, 저는 머리도 안 좋아서 단 하나도 이해하지 못해요. 노력해야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게 그람시는 멋진 남성입니다.
3.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특별전을 한다고 합니다. 너무 두근거려요. 저 그 사람 영화 하나 밖에 안 봤어요. 그런데 있잖아요, 좋다고 느끼는 것에는 그렇게 큰 엄격함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정말 별 거 아닌 거에 호감과 증오를 느끼잖아요? 우리 모두 안 그런 척 하려고 노력하겠지만요. 어쨌든, 저는 "사랑은 죽음보다 차갑다"를 보고도 그 사람이 좋았어요. 솔직히 그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해요. 그렇지만 그 영화는 그냥 아름다워요. 젖가슴을 다 드러낸 매춘종사자의 아름다운 얼굴, 근사한 코트를 입은 얄팍한 볼의 브루노, 살이 올랐지만 꽉 달라붙는 가죽옷을 입은 프란츠, 무심하고 아름다운 눈을 가진 요한나, 가끔 울려퍼지는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악들, 이상하게 시선이 가는 장면들, 특히 장면들이 멋있어요. 미쟝센이라 표현하나요? 저는 전문용어에 무식하답니다. 요한나가 브루노를 유혹하기 위해 바닥에 누워 있는 장면을 좋아해요. 그리고 가슴팍을 풀어 헤치는 브루노를 비웃으며 킬킬대는 요한나의 뺨을 때리는 프란츠. 도통 제 정신으로는 그 서사를 이해할 수 없어요, 걔네 왜 그러는 거야? 하지만 후반부에 등장하는 오락실 장면이나 이 장면 둘 다 만날 돌려보곤 합니다. 단순히 미학적으로 아름다워서요. 여기 나오는 인물들의 손짓, 눈짓, 대사, 독일어, 모두 근사합니다. 다른 작품들 알려진 거 많이 하더군요, 이번에. 저는 이번에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꼭 보려고 합니다. 이걸 먼저 본 제 애인이 제게 강력하게 추천하더군요. 아마 제 영혼이 불안으로 인해 잠식되는 병에 시달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