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 변호사가 보는 일베 논란
<일베 논란을 보고 - 쟁점 흐리지 않기에 대해서>
*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대단히 민감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논의의 전개과정을 보고 있으려니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아서 생각을 정리해두기 위해 쓴 글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처음에 일베 게시물의 내용에 대한 비판이 있다가 표현의 자유로 쟁점이 옮겨졌습니다. 표현의 자유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분들이 다양한 의견을 말씀하셨으니 생략하고, 제가 생각해본 것은 쟁점의 이동이라는 전략적 실수에 관한 것입니다. 이 글이 ‘우리 편’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의미로 읽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만 쟁점이 흐려져서 정작 중요한 문제가 가려지는 것이 안타깝다는 취지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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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백분토론 제작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일베 관련 토론을 하는데 참여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마침 다른 일정이 있어서 어렵다고 말씀드렸는데, 며칠 후 관련 보도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걱정했던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토론의 가장 큰 쟁점이 ‘일베 폐쇄’였던 것이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문제에 대응해서 ‘일베 폐쇄’를 주장하면서 가처분 등을 언급한 것은 큰 실수라고 생각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일베충’들의 장사(!)를 돕고, ‘이베’, ‘삼베’ 같은 패러디 사이트의 양산을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광주의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일베 게시물에 격분한 분들을 편의상 ‘우리 편’이라고 지칭한다면, 표현의 내용과 관련해서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우리 편이 평소 싸우던 방식이 아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표현물에 대해서 고소, 고발 혹은 손해배상 소송을 들고 나오는 것은 변희재의 방식이다.
변희재(를 비롯한 분들)와 싸우면서 변희재식의 싸움을 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5월 18일을 즈음해서 일베에 광주 희생자들을 모욕한 게시물이 올라오고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 누구나 그 비인간성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북한에서 인민군을 보냈다는 등의 주장은 팩트 자체가 완전히 말이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심지어 조갑제씨마저 반박을 할 정도였다.
흔히 ‘일베충’으로 지칭되는 일부 네티즌들이 얼마나 사실을 왜곡하고 천박한 주장을 하는지 한순간에 드러났다.
일베를 옹호하던 사람들도 (상식이 있다면) 쉴드를 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비 단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게시물뿐만 아니라 과거에 올라갔던 게시물, 특히 특정지역을 폄하하거나 여성을 비하한 게시물들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빠른 속도로 일베는 익명의 장막에 숨어서 인터넷 문화를 더럽히는 찌질이들의 집단으로 규정되고 있었다.
그런데 일부 논객들과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강력한 법적 조치를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가처분 등의 방법으로 일베를 폐쇄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강력한 조치’가 오히려 일베를 살려주게 되었다.
‘표현의 자유’라는 새로운 쟁점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일베 폐쇄를 주장한 논객들은 대부분 평소 표현의 자유를 확대해야 한다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여기에 반발하게 된다.
왜 어떤 표현은 보호가 되지만, 어떤 표현은 보호받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법적인 제재를 받아야 하는지 등등 나름 정교한 논리를 폈는데,
스스로 느끼셨을지 모르지만, 바로 그 순간이 일방적이었던 전세가 쌍방의 공방이 가능한 전세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상대방 측에게는 공격을 할 수 있는 지점을 제공했고, 오히려 우리 편 일부를 주춤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논의의(혹은 일방적인 비판의) 소재는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에 대한 게시물 등 일베 게시판의 천박한 게시물이었는데, 그때부터 ‘우리 편’이 올렸던 게시물도 공방의 소재가 되기 시작했다.
일베를 폐쇄한다면, 왜 박근혜 대통령을 임산부로 그린 그림을 올린 사이트를 폐쇄해서는 안 되는가.
MB나 그 가족에 대해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써놓은 게시물에 대해서는 왜 비판을 하지 않다가 이번 게시물에만 그러는 것인가.
한걸음 더 나아가면 결국 표현물의 내용에 따라서 허용의 폭을 결정하자는 것 아닌가, 당신들의 주장이 그거였나, 좋다, 앞으로 한번 해보자, 는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지금쯤 일베충들은 '우리 편'이 과거에 올린 게시물 중 우리가 보더라도 얼굴을 들기 힘든 표현물들을 발굴하고 있을지 모른다.
‘우 리 편’들 중 일부는 여기에 대해서 권력을 가진 사람을 풍자한 것과 이번 게시물을 어떻게 같은 평면에 놓고 볼 수 있느냐는 등의 반박을 했지만 그런 논리가 항상 맞는지도 의문일 뿐만 아니라, 이미 제3자의 눈에는 이번 일이 ‘있을 수 없는 잘못에 대한 일방적인 비판’에서 ‘양측의 공방’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백분토론이다.
물론 문제가 된 일베 게시물들은 보호받을 수 없는 표현물이고, 일반적인 표현물과 보호받을 수 없는 표현물을 가르는 나름 정교한(정말로 정교하게 가를 수 있는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이지만) 원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증오발언(hate speech)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종차별, 민족차별 등의 내용이 담긴 표현은 보호받을 수 없다.
그러나 공론의 장은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곳이 아니다.
일베 폐쇄를 들고 나오는 순간, 정작 중요한 쟁점이 흐려지면서 마치 모든 것이 표현의 자유의 한계에 관한 것인 듯 변해버린 것이다.
또한 ‘우리 편’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 일베 폐쇄에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보면 자중지란이다.
일베에 쉴드를 치고 싶었던 사람들이 못 해낸 일을 오히려 일베 폐쇄를 주장한 사람들이 해준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로 일베를 폐쇄하는 데 성공한다고 해서 그게 ‘우리 편’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만약 진짜로 가처분이 받아들여져서 일베가 폐쇄되었다고 치자.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가.
수많은 일베충들은 ‘이베’, ‘삼베’의 패러디 사이트를 만들어서 활개 칠 것이다.
오히려 그런 일이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을 부추겨서 그들의 장사를 도와줄 지도 모른다.
반면 일단 일베가 폐쇄되면, 그 이후 표현의 내용을 문제 삼아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게시자에게 법적 제재를 가하려는 권력자의 움직임을 막아내는 싸움은 정말로 어려운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정말 우리 사회에서 그런 싸움을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hate speech와 일반 표현의 차이를 논하는, 법학자도 쉽게 하기 힘든 일을 하도록 만들고 싶은가.
꼭 손자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싸움은 싸우기 전에 승패가 결정된다.
누가 봐도 잘못한 일에 대해서 단호하게 비판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괜히 쟁점을 흐려서 공방으로 만들어 놓은 것, 이번에 일베 폐쇄를 주장한 것은 그런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백분토론에서 ‘일베 폐쇄’를 두고 큰 의미 없는 논박이 벌어지는 와중에 변희재가 “5.18은 민주화운동이 아닐 수도 있고... 광주사태라고 본다.”는 소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쟁점을 명확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변희재가 저런 소리를 했다고 백분토론을 폐지하자고 할 것인가.
만약 일베 폐쇄 주장을 하지 않고 일베 게시물들에 대해서 ‘최대한의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면서’ 비판을 했다면, 이번 일이 공방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백분토론의 쟁점도 ‘광주의 진실’ 등 실체를 둘러싸고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감히 ‘광주사태’라는 말이 나올 여지도 없었을 것이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현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