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지나 울프의 돌멩이
어릴 적에는 글쓰기가 쉬웠어요. 인터넷에 글 한번 올리고 사람들 반응 도 좋았죠. 가끔 블로그에서 제가 어린 시절에 올린 글을 모두 모아놓은 사람도 있었고,
부끄럽게도 저를 칭송하는 장문의 글도 여러 번 본 적이 있어요. 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 입니다. (10년도 넘은 이야기)
그때는 그냥 적었거든요. 일말의 사고나 고려, 퇴고 없이도 글을 쓰기가 쉬웠어요. 생각이 많았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대로 표현하면 그게 글이었어요.
그런데 확실히 나이가 들수록 어렵네요. 스스로의 글에 대해서도 염증을 이미 너무 느낀터라 저의 문장습관. 자주 쓰는 단어. 그리고 너무나 빈약한 맞춤법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요. 하는 생각도 내가 스스로 잘 알아서 지겹고, 표현하는 방법도 그래요. 마음에 들지 않아요.
게다가 소설가들처럼 세세한 묘사와 섬세한 단어 사용. 할 줄 몰라요. 아이큐 81의 한계를 항상 체감하면서 글을 적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글쓰기가 어려워진 이유는 책임감 때문인지도 몰라요. 내가 쓴 글에 대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그 완벽주의적인 강박증.
뭐, 단순히 이 강박증이 글쓰기 뿐만이 아닌 내가 뱉은 모든 말에 대해 느끼는 바이니, 그래서 점점 말수는 줄어들죠.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가 항상 생각이 나요. 그녀의 남편 레너드에게 편지 한장 남기고, 강가에 가서 그녀는 주머니에 돌을 넣잖아요.
어쩌면 그 돌들의 무게가 자신이 쓰고 말하고 뱉은 모든 말의 무게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자각을 하고 난 뒤부터 더 더 글쓰기는 어렵습니다.
함민복 시인의 유명한 시중에, 자신의 시가 설렁탕 한그릇보다 비싸다는게 부끄럽다고 적은 시가 있는데...
과연 웹 상에 넘치는 글 중에, 설렁탕에 말아먹는 깍두기 하나 정도의 역할이라도 제 글이 한다면 좋겠네요.
소금간 맞지 않는 생을 살았어요. 그냥 먹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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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트롤 논쟁 혹은 여러 사람들의 말싸움을 읽다가 현기증이 났어요. 저는 바깥 세계에서도 어려운 책과 씨름하느라 머리가 빙빙 도는데,
인터넷 게시판에서까지 글을 읽으면서 머리가 뱅뱅 돌고 싶지 않거든요. 물론 가장 큰 차이는 어려운 책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돌리다보면
하수구가 뚫리는 것처럼 무뤂을 치는 상황이 언젠가 오지만,
인터넷에 쓰는 이가 감정에 뒤섞여 내놓은 글을 읽으면 그냥 구토감만 느껴요. (구역질 난다 이게 아니라, 어지러워서)
쓰는 이가 들이는 정성, 딱 그만큼만 들여 읽으면 그만.이고 싶습니다.
젊은 시인들 근래에 시집 많이 냈잖아요? 잔뜩 힘이 들어가고 기존의 시를 배반하려고 애쓰고 그런데 정작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죄다 산문시 에요.
젊은 이들이 뭐 그렇죠. 항상 하고 싶은 말이 많죠. 그런데 저는 지나고보니 번역가 안정효의 고백처럼 90%가 잡념이었고, 10%만 진심이었네요.
저는 그 젊은 친구들이 이성복 시집을 읽었으면 해요. 근래에 나온 시집이요. 그 힘을 뺀 고유한 정결함은, 아. 아름다워요. 아마 절대 어떤 시인도
흉내내지 못할 지점에 닿으셨어요.
언제즈음이면 그런 정결한 언어로 간결하게 말을 뱉고
아무일 없던 것처럼 앉아 주말의 대낮을 평화롭게 보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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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 이성복
아이들이 한바탕 먹고 떠난
식탁 위에는 찢긴 햄버거 봉지와
우그러진 콜라 패트병과
입 닦고 던져놓은 종이 냅킨들이 있다
그것들은 서로를 모르고
가까이 혹은 조금 멀리 있다
아이들아, 별자리 성성하고
꿈자리 숭숭한 이 세상에서
우리도 그렇게 있다
하지만 우리를 받아들인 세상에서
언젠가 소리 없이 치워질 줄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