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강간 인정 판결 관련 - 반대 의견을 봤습니다

시간이 좀 지났는데.. 대법원에서 드디어 부부강간에 대한 판례를 변경했습니다. 기존에 대법원은 부부간에는 강간죄가 성립이 안된다고 보았고(즉 때리거나 협박해서 성관계를 했더라도 강간죄가 안됨), 대신 실질적으로 부부관계가 깨져있는 경우에는 적용해도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실질적으로 유지가 되던 부부관계일지라도 폭력이나 협박을 써서 성관계를 하면 강간죄로 넣을 수 있다고 판례를 바꾼 것입니다.

 

이러한 판례 변경을 위해 대법원은 공개변론까지 했고, 당시 논란이 많았는데... 이러한 판례 변경에 두 명은 끝내 반대의견을 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두 명의 대법관은 부부간의 일에는 법이 끼어들어서는 안되니 남편이 아내를 패건 말건 내비두자고 주장하는 꼴통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만.. 의견을 자세히 보니 당연히 그렇진 않았습니다. 뭐 요약하기 어려운데 이들도 폭력을 이용한 성관계는 부부간에도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만, 다만 그 죄목이 강간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형사처벌 조항으로 집어넣을 수 있는데(강간 과정에서 사용된 폭행이나 협박으로 처벌) 강간을 굳이 판례변경 해가며 넣는 건 무리수라는 주장이죠.

 

그런데 기나긴 논리 가운데에, 정말 어찌보면 유치해보이기까지 하는 말싸움이 있습니다. 이걸 보니 와 정말 법률가의 언어 사용은 정말.. 좋게 말해 엄밀하고 나쁘게 말해 쪼잔하구나 싶더군요.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하면 처벌합니다. 이번에 논란의 핵심이 된 것은 그 "부녀"에 부인도 들어가느냐였습니다. 그런에 이 두 명의 대법관은 "강간"이라는 단어에도 주목했습니다. 사전적으로 "강간"은 "강제로 간음"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간음"의 사전적 정의는 "부부가 아닌 남녀가 성적 관계를 맺음" 이라는군요. 이걸 풀어서 읽으면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인이 아닌 부녀에 대하여 성계를 맺는 죄" 입니다. 헐. 사전적 정의 상 부인에겐 적용할 수가 없다는 결론.

 

다수의견이 이에 대해 별 반론을 안하는 걸 보니 "입법자가 강간이라는 단어를 쓸 때 간음이라는 단어의 뜻까지 생각해서 부인을 배제하려고 한 건 아니다"라고 믿고 기존 판례를 깬 모양입니다. 사실 저도 강간이라는 단어가 강제간음의 줄임말이라는 건 알았지만 간음이 꼭 부부가 아닌 남녀 사이에 쓰이는 말인지는 이번에 알았네요. 소수의견으로 찌그러지는 마당에 결론만으로 일단 욕먹고 시작할 거 뻔히 알면서도 저런 이야기까지 하며 반대의견을 낸 걸 보면 좋게 말하면 소신있고 나쁘게 말하면 똥고집도 세구나 싶기도 하고요.

 

아, 참고로 강간죄의 피해자는 그동안 "부녀"로 되어있어서 남자는 원칙적으로 강간죄 피해자가 될 수 없었는데, 이번에 형법 개정되서 "사람"으로 바뀐다는군요.

    • 예전에 언론기사에서 볼 때 부부강간 반대하는 이유가 앞으로 이걸 이혼소송에 남편쪽 옭아매는 도구로 악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건 어떻게 된 건가요?
    • 대한민국 형법은 제297조에서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婦女)를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강간죄를 규정.

      강간죄의 정의를 "강간"이란 단어를 이용해서 하고 있는 게 대한민국 형법이죠. 약간 아이러니컬.

      어쨌든, 형법에서 강간이라는 범죄행위를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이라는 방식으로 정의한 게 1953년이고 이 정의는 이번 개정법에서야 바뀌게 됩니다.
      1953년에 만들어졌으면 강간죄가 어떤 법에서 연유했을지는 대략 짐작이 되죠.
      그때 당시는 대부분 그랬으니까요.

      그렇게 남의 나라 법을 "참고"해서 법을 만들던 사람들은 "강간"을 정의할 때 부인을 제외할 것을 명시해야 할지 별로 고민 안했을 겁니다.
      그때는 당연히 부인에 대한 강간은 없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니까 저런 식으로 정의하는 게 순환논리의 오류라는 것 말고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번 판결에서 소수 의견에서 단어의 정의를 파고 드는 것은 논리가 궁색한 쪽에서 형식 논리로 자기 입장을 변호하는 전형적인 기법이죠.

      소수 의견에 대한 반론은 당연히 있죠. 사전이 법을 규정할 수 있느냐의 질문입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사전상 강간의 정의를 바꾸어버리면 소수의견은 붕 뜨게되는 건가요?
      그렇지가 않아야 되겠죠. 법이 국립국어원의 사전 편찬에 따라서 바뀌면 안 되니까요.

      미국의 판결문에서도 Merriam-Webster의 단어 정의를 인용해서 이런저런 논리를 펴는 경우들이 있기도 한데, 그런 경우는 항상 논리가 궁색합니다.

      지금의 시대에 맞게 단어를 법률적으로 정의하는 게 대법원이 할 일이죠. 국립국어원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고쳐놓지 않은 단어 정의를 얼씨구나 하고 가져다 쓰면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데 쓰는 게 대법관이 할 일은 아니죠.

      지금 시대에서 강간은 "강제로 간음"이라는 사전적 정의로 국한할 것이 아니고, '강제로 성교"라고 정의해야 하지 않을지요?
      대법원에서 판결문으로 "강간"의 정의를 바꾸면 국립국어원의 사전적 정의도 바뀔 수 있습니다. 그게 더 나은 것일 수도 있죠.
      이미 한국판 위키피디아의 "강간"의 정의는 국립국어원의 정의와 다르죠.

      부부간에 강간을 인정하느냐의 문제는 형벌이 한 꼭지 더 추가가 되어서 추가적인 벌을 받느냐의 문제보다는,
      성적인 문제에 관한 결정권을 부부간에도 항상 가질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소수 의견들은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겠죠.

      불법적인 폭행/협박에 이은 합법적인 "강간"이라는 구도로 볼 것이냐,
      불법적인 폭행/협박에 이은 불법적인 "강간"이라는 구도로 볼 것이냐는 사회적인 함의의 차이가 크니까요.
    • 마누라의 이혼소송 악용드립은, 법원 판단이라는게 어느정도는 정책적인 고려도 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런 말을 할수는 있겠다 싶긴 한데 졸렬하죠.
      그 정도의 '악용'에 휘둘릴게 두려울 정도로 한국 법원이라는게 허접하다는 자기고백밖에 더되는지... 더불어 검찰도 바보 취급하는 셈이고.
    • 사실 간단한 문제인데 법률가다운(?) 말의 향연속에서 논의가 흐려지는 케이스라고 봐요. '사람'이 '사람'을 '폭행협박으로' '겁박해서' '성관계를 맺는'건 강간이고 범죄죠. 부부관계를 어떤 마치 형사법질서에서도 별도로 취급될 특별한 경우로 상정해서 논리에 끼워넣는 짓거리가 이런 비생산적이고 이익없는 논쟁을 굳이 만드는거에요.
    • 저도 몰랐네요. 강간이라는 단어가 부부사이의 강간은 아예 배제했을 줄이야...
      남보다 못한 부부가 워낙 많으니 이런 날이 오네요.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4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38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48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5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0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1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6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8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4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29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3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6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6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2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5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