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게sf클럽] 불사판매주식회사
이런 내용이 오고갔습니다:)
2013.06.07 7p.m. @애틱
로버트 셰클리, <불사판매주식회사>
11명.
-중반부 전까지는 sf보다는 하드보일드 느낌. 역자가 ‘단순히 장르문학이 아니라 문학적 성취가 있다’고 하는데 초반에는 설득력 있었다. 중후반부에서 한창 욕할 (소재가 나오지만).
-이언 뱅크스의 ‘다리’를 최근에 읽었다. 비슷했다. 차사고가 일어나고, 남자는 다리라는 세계에 빠지고. 온갖 일을 겪다가 깨어난다. 그런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한 가지씩은 다 있나보다. 여자 역할도 좀 그랬고. 도와주기도 하고 그런 부분들이 재밌었어.
-지루했다. 내 스타일이 아니긴 한데. 이런 식의 플롯이 다른 소설에서도 많기 때문에. 처음에는 ‘불사’는 아니고 재생한 게 아니냐. 그래서 색다른 게 나올 줄 알았는데 쫓기고. 좀비가 도와준다는 설정이 신선하긴 했지만. 단편용인데 너무 장편으로 간 듯.
-<바닐라스카이>. 50년대 기준으로 생각하면 재밌다. 좀비라는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좀비는 아냐. 그런 종류의 좀비가 나오기 전이니까.
-이전의 생애에서 내가 가진 몸이 아닌 다른 체형의 몸을 부여받고, 이런 몸을 가지면 이런 걸 할거야, 생각을 하잖나. 내세가 있으면 모두가 평등할 줄 알았는데 결국 사람들이 계층을 나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토탈리콜>.
-개연성 측면에서 보면 왜 굳이 브레인을 데리고 왔는지, 반드시 설명돼야 하는 문제 같은데 넘어가더라.
-영혼의 존재를 믿는 분?
-우리가 볼 수 있는 색이 아주 넓은 것 중 요만큼밖에 안 되는데 영혼이 없다고는 못 할 것.
-비물질적인 영혼의 존재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
-우리가 사는 세계가 차원이 있는데 우리가 다른 차원의 존재는 전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순 없어.
-이 책에서는 육체가 풍선이라고 봤을 때 숨이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것. 영혼이 바람처럼 빠져나가면 육체는 좀비처럼 썩어가는 것.
-저자가 당시 과학을 얼마나 따라잡고 썼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사람은 물질이 사라져도 남아있는 에너지의 그물이라고 말을 하니까. 물질과 에너지를 아예 분리시켜서 생각하는 것.
-이 소설에서는 영혼의 존재, 내세에 관한 문제를 애매하게 피해간다. 근본적인 풀리지 않는 딜레마가 있는데. 모든 사람이 윤회한다고 치면 인구가 늘어나는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성불하면 없어지잖나) 그것도 애매하다. 벌레가 돼서 태어난다고 해도 생물의 개체수는 정해져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굉장히 애매하고.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분리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개념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일부는 내세로 가고 일부는 없어지고. 백 만명 중에 1명 정도 내세로 가고. 그럼 내세에 가서 뭘 하는데? 내세에 관한 묘사도 없다. 아주 동양적인 내세관도 아니고, 불교, 기독교적도 아냐.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있는 사람 천당 간다듯, 부자들은 시술 받아서 내세 가고. 흥미 위주로는 진행이 되는데 견고한 세계관을 갖춰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소설은 아닌 듯.
-이런 작품들의 딜레마가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그런 이름표를 받기 위해 자신의 세계관의 완결성을 잃곤 한다. 가장 큰 설정상의 문제는 사람들이 영혼이 남는다는 걸 알았고 죽음의 문제가 해결됐다고 하는데 내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는 계속 남아있을 것.
-여기서 천당이랑 지옥이 구분이 돼 있지 않는데 그게 더 견고하다고 생각했다. 이 세계관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 게 영혼이라는 걸 물질처럼 표현하는데 영혼이라는 개념이 원래 네트워크적인 성질이 강하다보니 그것만 이식할 수 있다면 이해가능. 100만명 중 1명만 갈 수 있다고 하는 것도 죽음의 충격 때문이라고 표현하는데 참신. 영혼을 에너지로 만들어서 갖고 있다가 육체가 있으면 집어넣는다는 설정. 굉장히 견고한 세계관.
-작가가 내세라는 존재를 던져놓긴 했는데, 결말 보면서 생각한 게 작가가 내세를 상상력을 뻗치기 위해 쓴 게 아니라 내세를 던져놓고 그것을 매개로 현세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는 듯.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 크지 않나. 고대부터 불로불사, 죽음 극복 방법을 계속 찾아왔었고. 개인의 힘으로 극복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부터 종교라는 시스템을 만들었었고. 저자는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서 내세로 가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 서구인이 갖고 있었던 기독교적 세계관을 부시면서 죽음 정복의 가능성은 열었지만 그 미래사회마저 불평등이 많고 모든 사람이 그 기술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풍자.
-<프리잭>
-<인형의 기사>라는 네이버 웹툰.
-페이스오프가 가능해졌다는 뉴스 봤다. 화상환자에게 죽은 사람 얼굴을 이식하는데, 과연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을까? 자신이 아닌데 자신으로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만약 내가 그 상황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성형만 해도 에고 달라지는 사람들 있지 않나. 비슷한 맥락일 듯.
-주인공이 자신의 옛 몸을 더 좋다고 하는 부분이 흥미로워.
-무섭기도 했다. 기독교는 가난한 자들의 종교라고 하지 않나. 지금은 힘들어도 죽고 나면 천국 간다고. 앙갚음의 종교랄까. 무섭기도 하지만 누군가 판결을 내려준다 그런 개념이 있는데. 그게 이 시점에서 보면 과학의 힘이든 기업 자본의 힘이든 그 지점이 사라져버리는 것. 죽으면 다 똑같은 거 아니냐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런 세계가 오면 돈 많은 사람들은 계속 잘 살고.
-결과적으로는 다 체가 걸러지니까 내세-내세-내세로 가면 부자만 남아서 평등해지는 게 아닐까.
-여기서도 말한다. 기술이 발전하면 평등해질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부자들만 남아도 층위는 계속 유지될 것.
-매트릭스와 비슷. 어차피 몸은 쓸모없으니까 영혼만 모아서 연결시키든지.
-요즘 sf만화, 공각기동대 보면 굳이 다른 사람 몸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몸이 없어도 된다. 안드로이드 안으로 들어가도 되고.
-이 책을 디스토피아 소설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굉장히 낙관적인 이야기로 봤다. 287페이지 보면 미래의 세계로 와서 1년을 살고 죽음을 선택하는데 죽기 직전에 그런 말을 한다. ‘나는 내세 이상의 것을 얻었다. 그는 전체 삶을 쥐어짜...’ 이 부분 번역 이상해.
-구원받은 개인의 느낌. 작가가 세계관 제시 이후 설명하길 어려워한다는 느낌 받았다.
-디스토피아라고 하긴 좀 약한 듯. 죽음의 공포를 극복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진 않아. 죽음의 공포가 사라지는 세상이 오면 세상이 유지가 될까.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는 사람이 세금을 낼까, 군대를 갈까.
-신시티 분위기 아닌가.
-기독교적인 소설. 충분히 디스토피아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게, 150년 뒤에 태어났는데 또 요트설계사 하고 있다는 게. 미래에 태어나도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없다는 한계를 보여주지 않나. 영혼과 육체를 칼같이 잘라낼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에반게리온이나 진격의 거인 같은 스타일. 영혼이라는 게 자아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 내세도 결국은 몸이 아니라 영혼이 들어가는 것이지 않나. 내용 자체는 기독교적이지 않은데 전체적인 틀은 기독교적.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도 예외를 두게 만든다. 영혼을 인간이 어쩔 수 없다는 전제를 두고 있는 것.
-sf라는 구조를 빌려서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었던 듯.
-옛날에는 죽을 병이 많았잖나. 암도, 결핵도. 우리가 그걸 하나하나 극복해 왔다. 그렇지만 극복해도 그게 끝이 아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갖고 현실을 바라보는 것.
-클라이막스로 가지는 않는 듯.
-좀비가 아무 이유 없이 핍박받는 존재라고 하는데 이 부분 무리수 아니었나. 좀비는 썩어가는 존재고. 흑인 문제 빗댔다고는 하는데.
-정부 차원에서 좀비들만 따로 모아서 영혼을 재처리한다든가, 국가에서 신선한 육체를 구해서 다시 이식을 해준다거나. 잘 풀어나가려는 방법도 있는데 굳이 왜 안하려는지.
-미래세계는 민주주의 국가일까, 독재일까, 이게 사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일부 사람만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는 시스템이 유지될까.
-일루미나티가 지배하면 되지 않을까.
-민주주의 국가는 기본적으로 질투에 기반하고 있지 않나. 일부만 죽음이 해결되면 나머지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을 걸.
-작가가 한국전 참전했던데. 50년대 한국의 잔상 남아있는 상태에서 저술하지 않았을까.
-<나는 전설이다>를 읽으면 꿈도 희망도 없다는 게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어.
-주인공이 끝에 다다른 커뮤니티는 원시사회에 가까운 섬이지 않나. 자신이 원래 살고 있던 옛날의 미국사회와 비슷한. 저자가 결국 말하고 싶어하는 건, 인간이 인간다움을 계속 추구해서 희망이 있다-.
-본인의 자아를 유지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발전이 없는 것. 엔딩에서 주인공이 ‘나답지 않는 선택’이라고 말하는데, 주인공이 자아를 유지했다고 보기에는 그 사이사이에 프랭크적 성격과의 갈등이 있었던 듯.
-신경정신과학대로라면 인간의 행동과 생각은 뇌세포의 전기적 작용. ‘죽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결론.
-리차드 도킨스의 미미.
-그게 왜 비관으로 이어져야 할까. 통합체가 자기보존하고자 하는 욕구가 자아일텐데 이것을 통합체로 인식한다고 해서 ‘나는 자기보존하고 싶지 않다’는 결론으로 갈 필요가 있을까.
-자살이나 이타성은 이기적유전자의 논리로 설명 불가하지 않나.
-자살도 이기적인 행동으로. 유전자는 생존의 본능을 갖고 있지만 밈은 개념 자체의 생존. 육체는 죽어도 개념이 산다면 생존한 것으로 본다.
-<유년기의 끝>. 자아가 없어지는 게 진보하는 건가?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개인의 불완전을 극복하는 것으로도 볼 수도 있고.
-버서커(berserker)들은 왜 그러는 것? 사이코패스?
-죽음 자체가 가치중립적인 게 됐으니까.
-내세가 생겨서 이 세계 사람들의 도덕관념도 희미해지지 않았겠나.
-‘과거에서는 교통사고가 있었고 미래에는 버서커가 있다’.
-내세가 있다고 하더라도 왜 고통스럽게 죽는 방법을 택하는 것?
-고통을 탐하는 것. 고문클럽 묘사도 나오지 않나.
-<크래쉬>. 극도의 매저키스트들이 나오는데, 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쾌감을 체험하냐면 카섹스를 하면서 차를 들이받는다.
-쾌락도 느끼고, 고통도 다 수집하고 가자는 것.
-마샬아트나 격투기도 자기파괴 욕구와 관련 있는 것?
-강함에 대한 동경 아닐까.
-다음 작품은?
-엔더의 게임, 나는 전설이다, 바벨17, 칠드런오브맨, 스타쉽트루퍼스
-<칠드런오브맨>. 7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