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웅을 좋아하시나요?
제가 ‘박기웅’ 이라는 배우에게 처음 ‘정신을 팔 게 ’ 된 것은
KBS 드라마 <남자 이야기> 였어요.
그 드라마에 흠뻑 빠져 보고 있는 엄마 곁을 지나가다 번개처럼 제 눈에 들어온
안.경.태(박기웅 분).
자신의 얼굴 크기만 한 헤드폰, 검은색 뿔테 안경을 코끝에 걸친
말을 더듬는 한 자폐청년의 모습이었죠.
(알고 보니 그는 천재 증권가 애널리스트로서 박용하 팀의 두뇌 역할!)
너무나 선해 보이는 눈, 일체의 미움도 없을 것 같은 해맑은 얼굴.
앵그르의 고전주의 그림에 나오는 얼굴처럼 아주 또렷한 이목구비가 인상 깊었더랬죠.
게다가 연기도 안정적이여서 전 이 배우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어요.
이후 잘 보이지 않아 궁금하던 차에 <추노>에서 그를 다시 보게 되어 무척 반가웠고!
<활> 에 이어 작년 <각시탈>에서 만만찮은 그의 연기 내공을 확인할 수 있어서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자꾸만 귀에 걸렸다죠. ㅎㅎ
웹툰도 보지 않았고 김수현 팬도 아닌 제가 별 망설임 없이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예매를 한 이유는 딱 한 가지,
박기웅의 연기가 궁금해서...였습니다.
서 말의 구슬을 어찌 저렇게 꿸 수 있단 말인가...하는 깊은 한탄과 실망이
깜깜 어둠 영화관에서 부유하는 먼지들처럼 끊임없이 웅웅거렸지만
뭐 개인적으론 박기웅의 ‘리해랑’ 은 좋았어요.
남한의 평온한 일상 속에 성심성의껏(?) 매몰된 채
현재는 즐기면서 대충 사는 것이야..라며 시종일관 느슨한 태도를 보이다가
어느 순간 남파된 특수공작원으로서의 파괴적인 본능이
그 오렌지빛 머리칼 아래서 번쩍! 섬광을 뿜을 땐, 제법, 서늘했죠.
네, 리해랑의 눈빛도 북한 사투리도 괜찮았습니다.
여러 미디어에 비친 박기웅의 모습을 종합해 들여다보면
진득하게 녹아 있는 어떤 공통점이 보여요.
그는 주,조연 할 것 없이 배우와 배우간의 유기적 ‘조합’ 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거든요.
1등과 2, 3등 사이에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안 된다는 나름의 연기철학이 있더군요.
급작스런 황금빛 광휘에 꿰찔린 어떤 배우들이
‘자기성’에 갇힌 나머지 안타까운 공회전만을 반복하는 그들과 달리
이 서른이 안 된 이 배우는 배우들 간의 소통과 배려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 놓인 맥락을 잘 이해하는 듯 보여
전 순식간에 명랑한 기분이 되고 말았지요.^^
(배우로서 계속 성장하고 생존하려면, 이런 근본적인 가치를 잘 인식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박기웅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모두 챙겨본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격정과 파토스로 기이한 열기가 끓어오르는 경험을 아직 해 본적은 없습니다.
(<살인의 추억> , <올드 보이>가 제겐 그런 작품이에요.)
하지만 서사적 역동성도, 그 어떤 결기도 탈각된 <은밀하게 위대하게> 에서
‘리해랑’ 으로서 박기웅의 감응능력은 제게 충분히 전해졌습니다.
종으로, 횡으로 배우로서의 오기를 더욱 창창히 다져
공감과 매혹을 불러일으킬 ‘배우 박기웅’ 을 기대합니다.
해서 몇 년 전 처음 그를 만났을 때처럼,
그에게 오롯~~하게 정신을 팔게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배우의 발견은 늘 즐겁습니다.
하염없이 우리를 감미롭게 물들게 하고 대책 없이 깊어질 배우 박기웅,
그 감성적 변주가 기다려지는 것은 저만은 아닐 테죠?
*
마침 <씨네21>에 기사가 실렸군요.
아주 해사한 사진과 함께~~^^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35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