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징집 운운하는 얘기에 일단 인상부터 찌푸리는 이유

그럴 가망도 없는 얘긴데 괜히 외국 소식에 인터넷에서나 왈가왈부하는 건데 무슨 그럴듯한 논리(?그런게 있지도 않지만)를 펴고...다 하나마나한 소리 같구요. 참고로 그 나라는 인구 500만에 상비/예비 합쳐 병력이 10만이 안됩니다.

 

그냥 한 사람의 군필남자로서 좀 나이브한 차원에서 확 드는 생각은 이겁니다. '내 여친, 내 여동생, 내 여자(인) 친구, 그밖의 친척 등등등이 '거길' 가는게 끔찍하다'

 

안그런가요? 인터넷에서 맨날 된장녀(김치녀?)니 '보슬'이니 하며 가상의 괴물같은 여성상을 만들고 남vs여 이간질에 여념이 없는데 이럴때만 남녀평등 운운하는것도 웃기지만, 그보다 좀 유치한 얘기로 말이죠. 진심으로 거기에 여자를 보내고 싶나요??

 

전 솔직히 밑에 올라온 똥물 운운하는 얘기에 한 80%쯤은 공감합니다. 兵으로 복무하는건 똥물 뒤집어 쓰는거에요. 숭고한 국가보위의 임무니 애국이니 다 개소리죠. 일방적인 희생도 맞고요. 상상할 수도 없는 열악한 처우를 받으면서 언제 어떤 어처구니없는 '비전투손실'의 희생양이 될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2년여의 시간을 썩혀 없애는 겁니다. 근데 그걸 아예 안할 수는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어쩔 수 없이 하는거죠. 입으로는 C8 C8하면서 그냥 참고 사는거죠. '국가'라는 맹목적 충성의 대상이 될 가상의 단위가 소중해서가 아니라, 그보다 본질적인 '공동체의 존속'이라는 나의 이해와 직결되는 가치를 위해서 말이죠.

 

그렇다면, 兵 복무가 그렇게 하기 싫음에도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라면 적어도 그 고통은 내 선에서 때우고 끝내고 싶다, 혹은 그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범위는 가능한한 좁은 것이 좋다, 라는게 제 유치하고 나이브한 생각입니다. 근데 그걸 여성으로 확대한다? 전 너무 끔찍한데요. 제가 유별나게 페미니스트라 그런게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서 싫어요.

 

제 생각은 이래요. 육해공 국군병영에서 국군의 법과 규정에 따라 현역병으로 복무한 한국 남자들은 단 한명 예외없이 상처를 안고 전역하며, 그걸 평생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상처에 대한 감수성이나 예민함의 정도에 개인차가 있을 뿐이지, 전역하고 나서 술안주로 군대얘기하며 낄낄깔깔 하는건 정말 즐거움에서 비롯하는게 아니라고요. 일단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적으로 상정한 살아있는 인간을 죽일 수도 반대로 내가 그 적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라는 전제하에 조직된 집단에서, 그런 목적에 부합하는 활동을 반복하는 생활을 2년 하는겁니다. 삽질이 힘들고 혹한기가 빡세고 총이 무거워서 고통이 아니라, 징병은 본질적으로 고통이에요. 그런가하면, 현역병 전역자들이 병영만 나오면 군대얘기로 꽃을 피우는 심리에는 '나는 살아서 돌아왔다'는 안도감, 그리고 그런 안도감을 공유할 사람들이 있다는데서 오는 또 다른 안도감이 크고요.

 

그런 본질적인 것 말고도 당장 피부에 닿는 고통도 있죠. 내무생활이요. 음... 내무반 아니 생활관 안에서 병사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군필자들은 다 아시잖아요. 개중에는 내무생활을 안하다시피 하는 보직도 있다고는 하는데, 이 경우는 주로 소수의 고급간부를 상대하거나(=노예처럼 모시거나) 사무실에서 행정을 보는 쪽이겠죠. 이쪽은 이쪽대로, 아니 어쩌면 내무생활했던 저같은 '땅개'보다 더 악랄한 고통을 당할 개연성이 큽니다. 제가 군생활 할때 직접 동기가 당한걸 목격해서 압니다. 트러블(=괴롭힘)의 주체가 같은 병사가 아니라 간부가 되면 말 그대로 지옥이에요. 이쪽은 하소연할 데도 없고...

 

어쩔 수 없이, 공동체를 위해서 가긴 가는데, 고통을 감수하긴 하는데, '불공평하니까 그 고통은 너희들도 함께 받자'라고요?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같은 남자인 후배나 연배가 낮은 가족친지에게 '수단을 가리지 말고 군대 안갈 궁리를 해라'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왜냐면 이미 완성되어 있는 시스템 안에서 그 구멍은 결국 또 다른 어떤 희생자에 의해 채워져야 하니까. 하지만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범위를 여자쪽으로 확대하자는 발상은 너무 끔찍합니다.

 

저한테 당장 스물몇살 먹은 여동생이 있고, 아직 미성년자인 나이차이 많이 나는 사촌동생들이 열명이 넘는데 걔들이 내가 겪었던 병영을 똑같이 겪는다? 전 정말 상상조차 하기가 싫어요. 병영 안에는 또라이 고참 몇명에 의해 저질러지는 성범죄나 폭력범죄 외에도 '구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폭력이 만연해 있거든요. 그 안으로 집어넣는다?

 

저는 자꾸 이런 얘기가 나오는게 어떤 국가주의나 비뚤어진 애국심의 발로라기보단, 전형적인 인터넷의 남vs여 이간질 내지 여성혐오 문화(논리적으로 터무니없고 남성일반의 피해의식을 자극하는 말을 지껄이는 여성의 SNS나 커뮤니티 게시글을 캡쳐해서 '여기로 와서 다같이 욕합시다' 선동하는 류의)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의심이 매우 강하게 듭니다.

 

진짜 꼴통 마초나 전체주의적인 '애국자'라면 오히려 정 반대로 생각할 것 같거든요. 여자를 열등한 성으로 생각하는 부류라면 오히려 '내가 이런 숭고한 의무를 이행함으로 해서 열등한 여자들을 보호하는 거다'라는 식으로요. 근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남자가 역차별당한다니, 여자들이 이제 살만해지니까 덤빈다느니 하는 시대착오적인 헛소리나 늘어놓는 주제에, 다른 입으로는 엉뚱하게 남녀평등 끌고오는 아전인수식의 말장난이잖아요.

 

어휴... 거기에 여자를 보낸다고요?

 

여자 兵의 병영을 남자 兵 규모로 만들거나 혹은 남자 兵의 병영에 여자를 편입시킨다는 발상의 제반비용 기타 현실성은 접어두고요.

 

거기에 여자를 보내요?

 

이런 생각 자체가 여성주의적인 시각에서 보면 꼴통 마초이즘의 발로라고 비판받아도 할 말은 없는데, 아주 저차원적이고 나이브하게 생각했을때 저는 그래요. 너무 끔찍해요.

 

 

 

 

    • 전형적인 마초 + 가족드립이로군요. ㅎㅎ 듀게에서 이런 글을 보게 될 줄이야..
    • 내 아들, 내 형, 내 남동생이 군대가는 것도 끔찍하죠
    • 여성주의적인 시각이 아니라 그냥 봐도 마지막줄처럼 생각합니다.
    • 사실 남자들은 여자들이 가든 말든 어차피 군대가야하니 실질적으로 큰 상관은 없죠



      오히려 여자들이 군복무(나 이에 상응하는 의무부담)문제에 관해 적극적으로 고심해야 할 겁니다

      지금처럼 방관자 입장에 선다면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는건 없을 거에요
    • 제가 군대를 끔찍하게 생각하는건 군대라는 집단 생활 자체보다 거기에 살면서 잔임함을 표출하는 인간들 때문이에요.
      군대식 집단 생활 자체가 그런 악습을 필수적으로 만들어내는지 모르겠지만, 중산층이하가 많이 간다고 들은 미군만 해도 우리보단
      악습이 덜해보이더군요. 단순히 모병제와 징병제의 차이라고 생각은 안들고요. 우리 군대는 일단 악습부터 근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군대 악습이나 가혹행위 얼마나 없어졌나요? 제대 후에 군대에서 힘든 훈련 받고 그런건 고통으로 전혀 남아 있지 않지만 인간같지 않던
      인간들 몇몇은 내내 기억이 납니다. 물론 좋은 사람들도 제법있었기에 그런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친구로 지내니 나쁜경험만 있었던건 아닙니다.
      제발 군대가 사람 살만한 곳이 먼저 되었으면 합니다.
      전 군대 다시갈래? 이런 농담이 하나도 사실 안무섭거든요. 사람 사는 곳이니까. 다만 악질적인 인간들만 없다면 말이죠.
    • 하하, 저희 남편이 딱 이래요. 니 여동생, 여자친구를 군대 보내고 싶어? 에라이 남자 망신 다 시키는 놈들~
      가운데 달린 거나 떼고 그런 소리 해라~ 등등... 요즘 넷상의 여성혐오 기조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이고요.
      연애 초기엔 페미니스트가 아닐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기에 그 실체를 깨닫고는 포복절도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가끔 뜨악할 때도 없지는 않지만 부대끼며 몇 년을 살다보니 이젠 귀여워 보이더군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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