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바낭- 한국은...


1.

귀국하고 나서 생긴 일입니다.

대형 여행가방에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왔기에 팔이 저려왔습니다. 체력이 떨어진 탓도 있지요...


여행 가방을 끌고 지하철까지 가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그냥 포기하고 택시를 잡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지 몰라도, 한국에서는 택시 잡기도 왠지 눈치가 보입니다.

왜냐면.. 택시가 사람을 고르거든요.

택시 기사 아저씨가 무슨 로또도 아닌데, 어떤 기사 아저씨는 매우 친절하시고, 어떤 기사 아저씨는 매우 퉁명스럽거나 화를 버럭버럭 냅니다. -_-...?

전에도 여행가방을 들고 택시에 탈 수가 없어서 택시 트렁크에 태우려 했더니 택시 기사 아저씨가 화를 내시더라고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뭐라뭐라 버럭버럭거리는데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왜 내가 짜증난 얼굴을 당하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아저씨는 'ㅇㅇ동 가나요?' 했더니 인상을 쓰면서 '여 오지말고 저쪽 가서 타소' 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냥 글로 써놓고 보면 별 느낌이 안 와닿지만, 실제로 그런 일을 당했을 때는 굉장히 당황스러웠죠. 아니 내가 화날 일을 물어봤나요 아저씨...


택시 하나 잡는데도 사람 참 피곤한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택시 기사 눈치도 봐야 하고.

다행히 이번에 탄 택시 기사 아저씨는 화를 내거나 하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2.

부산의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생긴 일입니다.

가방이 장난 아니게 무거웠기 때문에(게다가 빈 손이 없을 만큼 잔뜩 가방을 여럿 싸들고 와서) 버스의 짐칸에 가방을 넣으려니 팔이 저려서 힘이 들어가질 않았습니다.

에이 할 수 없다, 도와달라고 해야지 하고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초로의 버스 기사 아저씨는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피곤했기 때문에 뭐라고 했는지는 잘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대략 화를 내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습니다.

당황해서 웃는 얼굴인 채로 '네?' 하고 되물었더니 또 버럭, 하시더군요. 그다 못 넣으면 우짤낀데, 나중에 내릴 때는 내가 못 넣어 준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일본에 있을 때의 디폴트 표정인 웃는 얼굴인 채로 네네, 죄송합니다, 하고 버스 기사 아저씨님의 친절함에 굽신거리고 버스 좌석으로 갔지만 마음은 참 불편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못할 요구를 했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죠.

뭐 고작 일년 일본에 있었지만 너무 일본식에 익숙해졌나 봅니다.

일본에서는 승무원이나 기사 아저씨한테 부탁을 할 때, 그런 식으로 화난 얼굴이 돌아올 거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거든요.

오히려 이쪽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들 하시죠. 버스에 타고 내릴 때도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 란 말이 늘 들려오고. 

내가 제3국인이었다면 분명 일본은 또 오고 싶은 나라겠지만 한국은 절대 다시 오고 싶은 나라가 아닐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 하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한국에서는 크게 신경쓸 일이 아니죠?

오히려 남에게 친절을 기대하는 쪽이 건방진 편이겠지요.


저는 사람의 감정에 민감해져 있는 탓일까요.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을 때 화난 얼굴이나 무표정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그래가지고 인생 어떻게 살겠냐는 핀잔이 저절로 생각나는군요...

그래요... 살다보면 온갖 일을 다 겪겠지요. 세상은 무섭고 끔찍한 일도 많으니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죠. 이깟 일쯤 아무 것도 아니고 어디 일 축에나 들어가기나 하겠나요.

나약한 소리로 치부되기 일쑤겠지요.

강하게 살아야 하는데, 늘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한국에 오면 언제나 표정이 굳어집니다.

그리고 또 그런 소리를 듣겠죠, 넌 왜 언제나 불퉁해서 화내고 있냐고.


다들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가요...

후쿠오카에 갔을 때는 말을 거는 모든 사람들이 다 친절하고 웃는 얼굴로 답해줘서 참 좋은 도시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땅은 내 고향이지만 왜 이리 낯선지요.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더라는 시구가 떠오르는 밤입니다. 




    • 마음이 둔해서 화 안내는게 제일 좋은거라고 생각해봅니다 이게 모든걸 다 깨달은 만큼이에요.
    • 한국에 오신 것,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 정이 있는 나라 동방예의지국

      이라고는 하지만 그렇지 않은거 같아요

      다들 치여서
    • 저는 반대로 뉴욕에서의 7년 생활이 모든 것에 대한 기준을 낮췄다고 농담하고 있어요. 뉴욕이 싫었던 건 아닌데 제가 생활했던 그곳은 많은 사람들이 신경질내고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욕도 하는 도시였거든요.
      짐도 많으신 모양인데 여행에 고생 많으셨어요.
    • 가끔영화// 가영님은 늘 달관하신 듯한 말씀을 하신단 말예요. 대단하세요. 乃
      라곱순//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환영해주시는 분은 라곱순님뿐인듯해요. ^ㅅ^
      Ricardo// 역시 다들 치여서 그런가요. 먹고 살기 힘들어서 각박해서 그런가요. 뭔가 근본적인 게 어긋났단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
      감마루스// 글쎄, 한국은 여행객에게도 살갑지 않다는 데 오천 원 걸겠어요. 뭐 제가 금발에 파란 눈이었으면 달랐을려나요.
    • loving_rabbit// 오오 타지 생활 대선배님 토끼님.. 뉴욕은 그런 곳이었군요. 하긴 미국은 좀 무서운 이미지가 있어요. 미국 사람들도 인상이 나쁘거나 불친절한가요.
      고맙습니다. 다시 떠날 때는 짐을 되도록 줄여가야겠다고 다짐 중이어요.
    • 힘드셨죠. 날도 더운데 짐까지 들고.. 푹 쉬세요.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한동안 무한 반복 ^^ 그래야 체력이 회복돼요.
      저도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 괜찮은데? 하며 평소처럼 지내다가 뒤늦게 고열로 한동안 힘들었어요.
      그동안 많이 힘들고 바쁘셨기 때문에 긴장이 확 풀리면 심하게 몸살이 올 수도 있어요.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푸욱 쉬세요. 반가워요!! :D
    • 봄의 속삭임// 고맙습니다. 저도 맘같아선 일주일 정도 뒹굴고 싶은데 어머니가 구박하셔서 그건 어렵겠어요... 후우
      그러잖아도 돌아오자마자 몸살이 났어요. 근데 이렇게 아픈 몸살은 처음이에요. 학교 합숙으로 행군했을 때도 이렇게 아프진 않았는데...
      반가워해주셔서 고맙습니다 ^ㅅ^
    • 한국식엔 한국식으로 대처를 해야죠. 화 내시는 겁니꽈 제가 무슨 잘못을 했죠? 라며 휴대폰으로 차 번호를 찍고 신고 고고.. / 부산 분이신가 봐요. 부산 기사분들 장난 아니게 불친절하시죠.
    • 어쭈// 그 정도까지는 못하는 게 아무래도 제가 소심해서 그렇죠. OTL 사실 그렇게 강경대처하면 그건 그거대로 큰일이 나겠죠. 싸움날지도 모르고; 다들 그렇게까지 되면 귀찮으니 그냥 참아넘기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부산은 아니고 경남 사람이에요. 아무래도 경상도 남자분들은 무뚝뚝한 타입이 많으신데 요즘은 화내는 사람들이 부쩍 자주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아저씨 왜 저한테 화를 내세요.. 라고 하고 싶지만 위에 적은 대로 싸움은 피하고 싶으니 이하생략... 에고고.
    • 일본에서 택시는 좀 더 친절했던 것 같은데 다른 대중교통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네요.
      외국인이랑 손잡고 걸어간다고 나에게 소리지르고 화내는 아저씨-.-도 봐서 세계는 다 비슷하다는 생각만 했거든요.
      • 서비스업종사자는 대체적으로 일본이 더 친절한 것 같지만 일반사람진상은 어딜가나 마찬가지죠?

        어린 여자에게 시비거는 아저씨들이나 괜히 청소원같은 분들에게 화풀이하거나요.그러면서 중고딩들 단체로 있는 건 또 못건들고.
    • 외국은 아니지만 놀랄만치 무독하고 순한 분위기의 제주에 한동안 있다 서울로 돌아와선 순간 도시 자체에서 풍기는 빡세고 독한 분위기와, 생존+전투의지가 불타오르는 듯한 오오라가 풍기는 엄마를 보고 심장이 빠르게 뛴 적이 있어요. 그 때 엄마는 그냥 상냥하게 절 마중나오셨을 뿐인데도요. 음 돌아와서 얼마 안가 저도 다시 이 도시생활에 적응했지만요. 언젠가 님은 왠지 제주 생활이 잘 맞으실 것 같기도... 일본어도 잘하고 상냥하시니까요.
    • 일본은 서비스 요금을 그만큼 더 받죠. 수송원가 160엔대랑 1000엔대라고 비교해 보면(택시는 만엔대까지 올라갈듯?), 덜 내는 만큼 덜 받는 것 아닌가도 생각해봅니다. 물론 일본만큼 공공요금을 올렸는데도 서비스가 개판이면... 그 때는 교통불편 민원처리 해야겠죠. (지자체에 찌르는 이 민원처리, 의외로 효과 큽니다. 다만 기사는 직장을 잃거나 봉급이 반토막날 수는 있겠네요.)

      제 체감상으로는 서울>>대전>>수도권(고양, 성남)>>수도권(기타 G버스)>>>>넘사벽>>>>경남, 부산 이었습니다.
    • 이 두 가지 예로 바로 한국은 전반적으로 불친절한 나라가 되는 건가요.가끔 보면 말끝마다 일본은 그렇지 않은데 한국은 이러저러하다,하시는게 전 좀 불편하네요.택시기사 중 한 분의 불친절이 바로 한국은 택시 잡기도 피곤한 나라로 비약되는 것도 그렇고(서울 거주하면서,다른 지역 여행하면서 그런 기사님 거의 뵌 적이 없어서 전 공감이 안돼요),버스 기사 한 분의 태도가 대부분 한국인의 태도도 아닐텐데 한국은 다시는 방문하고 싶지 않을 나라로 찍히는 것도 그렇고요.무엇보다 <남에게 친절을 기대하는 쪽이 건방진>게 되는 곳이 어디에 있나요.몇 가지 예시로 너무 멀리 나가는 경향이 있으십니다.
    • 한국이 좀 빡세긴 하죠. 그런데 한국보다 더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나라도 있으니.. ^^;; 지내다 보시면 또 금방 적응 되실 거예요.

      보리/저는 우리나라에서 택시 잡기 피곤하고 불친절한 기사 분들 많다는거 아주아주 공감해요.
    • 곧 한국식으로 적응하시겠죠. 아닌 상태로 일본이 이러했다고 되새겨봤자 본인만 힘들어지니까요. 위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신고 등으로 한국식 대처법을 익히고 마음에선 털어버리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 보리/ 다른 건 몰라도 택시는 일본이 훨씬 친절합니다. 일본에서 장기체류하다가 귀국해서 택시를 타면 바로 체감하게 됩니다. 아, 내가 정말로 한국에 왔구나...
    • 신아// 음 관광명소(?)인 곳은 역시 분위기가 다른가봐요. 다음 구직은 제주해서 해볼까봐요. 감사합니다.
      01410// 인건비가 비싸기도 하죠. 음 역시 수도권쪽은 좀 더 친절한가요. 전 촌놈이라 경남 분위기밖에 모르겠어요. 흑...
      보리// 이런 글 쓰면 분명 화내는 분이 나올 거야 하고 생각은 했지만.. 그러고보니 글 말머리에 개인적인 잡상이라 불편한 분은 스킵해달라는 문구를 깜빡했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운이 나쁜 경우일 거고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친절한 분들도 분명 많이 계실 거에요. 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으로 만사를 판단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단지 저의 개인적인 경험은 이랬으며 제가 받은 느낌은 이랬더라,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잠익2// 하긴 우리나라보다 더 분위기가 무서운 동네도 많을 텐데 말이지요. 제가 너무 좋은 분위기에 젖어 있었나봐요.
      보름달// 한국에선 마음 강한 사람이 아니면 살기 힘든가봐요...

      댓글 달아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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