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가 레즈비언 컨셉으로 전세계를 낚은 후



요즘 세상에 이런 컨셉이 진지하게 먹혀들어갈 리 없지만

저같은 사람은 여전히 타투의 '낫 고너 겟 어스'같은 곡을 듣고 스트레스를 날리곤 하는 걸요.

그들이 전세계를 씹어 먹었던 게 반드시 그럴 듯한 컨셉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여전히 생각합니다, 아무튼 노래가 좋았다고요.

물론 컨셉의 덕이 없었다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진지하게 먹혀들어갈 리 없지만

준앤룰라를 들고 온 제 기준을 뭐 굳이 말하자면 진정성이라고 해둡시다, 진정성.

직접 쓰고 부른 가사와 멜로디에 아로새겨져 있는 그들 오리지널의 정서 말이죠.

최소한 프로듀서가 컨셉가지고 장난칠 군번은 아닌 것 같으니까요.





 


안녕, 수잔. 어떻게 지내니?

난 잘 있어, 고마워

안녕, 수잔. 널 많이 그리워 했어

나도 그래


혹시 니가 죽지나 않았을까 전화 해봤어

혹시 죽으려 한 건 아니었을까 전화해 본 거야

왜냐면 내겐 너 같은 여인이 필요하거든

날 지탱해줄, 딱 너와 같은 여인이 말야


오, 이러지 마, 수잔. 제발 울지마

오, 안 돼, 수잔. 난 미쳐버릴 것 같아

니가 울면, 난 이성을 잃고 말아

니가 다시 웃을 때까지

니 얼굴을 걷어차고 싶어져

왜냐면 내겐 너 같은 아이가 필요하니까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게 만드는 너 같은 아이가


그러니 수잔, 한 번 더 날 용서해

부탁이야 수잔, 내가 다 설명해줄게

그녀와 잘 때도 난 널 생각했어

니 엄마와 잔 건 그녀가 널 닮았기 때문이었어


여자들이 나에게 끌리는 건 내 잘못이 아니야

그녀들이 내게 가르쳐 준 걸 너에게 보여줄게


오, 이러지 마, 수잔. 넌 날 못 떠나

이리와, 수잔. 니가 날 두려워한다는 거 알아

니가 날 떠난다면 난 네 다릴 부러뜨려버릴 거야

그래도 떠나려 한다면 네 목을 꺾어버릴 거야


왜냐면 내겐 자극이 필요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래서 넌 날 벗어나지 못하는 거야

그러니 내 말대로 해




//


제가 무슨 진지한 게이 뮤지션 콜렉터도 아니고 (...존 그랜트의 음악을 몇 번이나 들고 왔었죠? 아, 그래도 마이클 스타이프 얘기는 많이 안 하려고 노력했는데...)

게이 뮤지션이라는 이유로 그녀들을 소개할 리 있겠습니까.

일전에 we were evergreen을 소개하면서 프랑스 포크씬에서 부는 심상찮은 바람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죠.

가깝게는 칼라 브루니나 캐런 앤 때까지만 해도 짙게 드리웠던 샹숑의 그늘을 벗어나, 영미 본토 포크씬의 어떤 담백함을 구사하는 세대가 태동하고 있다고요.

그러한 자취들을 주시하다가 만나게 된 팀 중 하나가 바로 준 앤 룰라였습니다.

그러니까, 가사에서 드러나는 직설적인 게이 뮤지션의 정체성같은 것을 다 떠나서, 음악적으로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프랑스에 있는 친구가 그쪽 언더그라운드 클럽 같은 곳을 다녀보곤 기함을 한 적이 있었죠. 여긴 쓸만한 밴드가 하나도 없어! 애들이 완전 이상해! 

그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너무 절망 마, 괜찮은 애들은 유튜브 찍고 있을 거야, 했었는데. 

이쪽 취향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겐 기근과도 같았던 프랑스에서, 참으로 보석같은 팀이 아닙니까. 

jazzy한 비음과 깊이 있는 보이스톤을 가진 룰라(금발 여인)와 pop적인 미성의 준(흑발 여인)이 만들어내는 화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귀가 즐겁습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음정으로 느긋하게, 그러나 긴장감 있게 주고 받는 둘의 라이브를 듣고 있으면 거의 쾌감이 느껴질 정도죠.

포크를 기반으로 재즈와 블루스의 터치를 가미한 송라이팅은 편안하게 노는 듯 하면서도 절묘하고요.

음악적인 미숙함을 사랑스런 아마츄어리즘으로 적당히 바르려는 얄팍함이 없어요, 기본적으로. 안타깝지만 요즘 인디씬의 여성 뮤지션에게 흔치 않죠, 이런 태도.


이번 곡은 특히나 라이브가 좋은 곡입니다.

룰라의 매혹적인 스캣 위로 애닳아 하는 준의 독백이 'baby, let me say it! hey!!!'하는 고성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의 짜릿함은 아무리 들어도 줄어들지 않아요.






서글퍼

난 서글퍼져

난 너무 우울해, 그대


내 말을 들어봐

널 처음 만난 그 날, 

난 기타를 들고 아름다운 사랑 노래를 부르는 사내들을 보고 있었어

사내들은 홀린 듯한 눈으로 나를 마주보았지

그러나 넌 황홀한 목소리의 아름다운 여인

비록 기타를 들고 있지 않았지만

널 본 순간 난

무언가 꿈틀대는 걸 느꼈어, 내 팬티 속에서


서글퍼

난 서글퍼져

너를 생각하면

난 너무 서글퍼져, 그대


내가 남자라고 생각하면 어때?

널 본 순간 가슴이 벅차오른 

내 얘길 들어봐, 널 사랑해

널 위한 사랑 노래를 부르게 해줘

널 보면 내 가슴 속에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올라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난 너무 서글퍼

여인과 사랑에 빠진 이 가엾은 소녀가 보이니


이 서글픈 마음을 받아줘, 내 사랑

널 생각하면

내 마음은 비탄으로 가득해


나의 이 자그마한 심장 속에 담긴

마지막 한 방울의 눈물까지 쏟아질 것 같아

나의 이 작고 작은 심장 속에서...


오, 내 말을 들어봐

그대, 내 말을 들어봐

내 말을 들어줘

내 말을 좀 들어줘


내 말을 들어 보라고!

네 앞에 서면 

난 고독한 사내가 돼

그럴 듯한 말 한 마디 생각해내지 못하는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나의 다른 연인들을 만나 봐도 눈물만 흐를 뿐

어차피 그들도 꺼내놓을 성기가 없긴 마찬가지지

난 사랑에 빠진 사내에 불과해

그저 사랑에 빠진 가엾은 사내


내 온 몸이 너를 원하고 있어

다만 내 두 다리 사이에 그것이 없을 뿐

내 두 다리 사이엔 

깊은 심연이 자리 잡고 있어

텅 빈 구멍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 생략하려 했지만 영상이 예뻐서 추가하는, 같은 곡의 립싱크 버전 :)





//


그리고 어쨌든 미뤄두었던 가사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수 년 전, 데뷔 초의 제이 브래넌을 소개하면서 비슷한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노래의 청자를 대충 얼버무리지 않고 'he'라고 지칭하는 데서 오는 대리적인 해방감에 대해서요.

그녀들 역시 보시다시피 대체적으로 청자를 she, woman, girl로 직접적으로 지칭하며, 결코 에둘러가지 않는 태도를 고수합니다.

클로젯 속의 고뇌나 (난 당신에게 내 얘길 들려주고 싶어, 거울을 깨고 그 속의 나를 해방시켜주고 싶어 - my girl)

종교적인 갈등부터 (사람들은 내가 매일 죄를 짓고 있다고 해, 난 그냥 살아있는 건데 - i'm not going)

사랑하고 이별하는 보통의 러브송들까지 이야기의 스펙트럼도 넓고요.


안타까운 건 프랑스 뮤지션인지라 불어를 못하는 제겐 정보가 너무 없다는 것 뿐이군요.

아무튼 그런 그녀들의, 아주 오랫만의 새앨범이 올해 나왔습니다.

펨핀코 수준은 아니지만 비슷한 맥락으로 스타일의 변화를 보여준 준의 모습이 처음엔 조금 낯설었지만 어쨌든 편안해보이고

영상이 예뻐서 아래의 클립을 들고 왔는데 완곡은 아닙니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이라 유튜브에 뮤비가 올라와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확인해보시고

아... 날카롭게 날이선 가사도, 준과 룰라의 화음도 여전히 아름답네요.







내 엉덩이를 줄게, 먹어도 좋아

춥다면 내 피부를 벗겨가

내 머리카락을 지금 당장 덮어도 좋아

다 가져가

난 당신 거니까


내 무릎을 베고 꿈을 꿔도 좋아

더이상의 연인은 필요 없으니

한때는 네 것이었던

모든 게 이제 내꺼야


그의 머리속에서 울려나오는

메아리가 내 귓가에 맴돌아

그렇게 밤이면 난

야생으로 돌아가는 꿈을 꿔


나의 살점에 입을 맞춰, 그게 네 혀에도 좋을 거야

나의 살점을 입에 넣으면, 너의 혀끝이 만족할 거야

그렇게 밤이면 난

야생으로 돌아가는 꿈을 꿔


네가 그곳에 날 데려갔을 때 난 땀에 젖어 있었지

너의 트럭 안에서 난 한껏 열이 올랐고

마침내 우리가 도살장에 도착하자

넌 마지막 인사를 건넸어

나를 도륙하기 전.





goodbye suzanne

lonely guy blues

revert to the wild

all songs from june & lula

translated by lonegunman




    • 타투...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요. 가사 잘 보고 노래 잘 듣고 있습니다.
    • 타투가 나왔을 때 낚여서 앨범을 샀고, 아직도 종종 그 앨범을 듣곤 해요. [200 km/h in the Wrong Lane]이라니.
      더 스미스의 'How Soon Is Now?' 리메이크도 재미있어 하면서 들었죠. 칩멍크들이 부르는 것 같아서요.
    • 누군지는 잊었는데 프랑스의 유명한 (대중음악) 작곡가 하나가 '프랑스는 중세의 춤곡 이후로 음악적으로 발전이 없었다'고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름 잘 나가는 씬들도 있고 1급 뮤지션도 적지 않지만 그래도 너무너무 층이 빈약한게 사실이죠. 주류는 한국 가요보다 낫지 않고.
      • 그래도 하우스 뮤직의 발전에는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봐요
        다프트 펑크라는 슈퍼스타도 있고, 망할 놈의 데이빗 게타(...)도 프랑스 출신이더군요 -_-
    • 예쁘네요. 한국에서도 흥할 수 있을 듯.
    • 당장 CD를 구매하고 싶군요. lonegunman 님의 음악 이야기 팬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음악 많이 소개해주세요.
      님의 글은 오아시스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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