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학을 과학으로 정의하는 것

한의학과 (양)의학 간의 논쟁을 흥미롭게 봤습니다만, 한의학을 비판하는 분의 "논리"의 문제점에 대해서 한마디 적어볼까 합니다.

(기우에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결코 한의학을 지금 비호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한의학에 상당히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입장...)

 

의학은 과학적 방법론 혹은 접근으로 정의되므로 한의학은 과학적인 접근을 하는 순간 의학이 된다는 주장이죠. 따라서 한의학은 결코 과학이 될 수도,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학문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는 운명이라는 주장입니다. 과연 이런 의학의 정의가 공정하고 적절한지 그리고 일반적인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저는 위의 주장이 본질과 속성을 혼동한 결과물이 아닌가 싶어요. 의학을 과학으로 정의하는 것이 좀 의아한 게 의학은 과학에 기반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즉 과학적이기는 하지만 과학 그 자체는 아닙니다. 공학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의학은 사람을 고치는 것이 주요 목적이지 왜 X라는 처방이 Y라는 병을 낫게 하는지 그 기저의 메커니즘을 밝혀내는데 있지 않죠. 그것은 관련된 진짜 과학 분과의 학문들(생물학 등)이 하고 의학은 그것을 바탕으로 그래서 X가 Y를 낫게 하느냐 안 하느냐에 초점을 맞춥니다. (제도권 의학 내에 다양한 기초과학 분과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상을 위한 과학 분과들의 편의적으로 보조적인 제도적 통합이라 볼 수 있겠죠)

 

아래 soboo님이 적절히 지적하신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의사들(및 약사들)은 X와 Y 사이의 미시적인 메커니즘이 투명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X가 Y에 효과가 있다는 통계적 근거만 충분히(이게 애매할 수 있긴 합니다만) 있다면 Y라는 병에 X를 처방할 겁니다.

 

한의학이 (그 실제는 엉망이라고 치더라도) 이 과정에서 "본질적"으로 배제되거나 조화될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의사들이 전통이란 이름으로 유지되어 오던 음양오행이니 등등의 비과학적, 유사과학적, 사이비적 이론들, 썰들을 다 쳐내고 기반이 되는 과학 분과들과 손을 잡고 그 위에서 일반화가능한 경험적인 근거들을 바탕으로 한의학을 재정립한다면 그럼 한의학은 의학이 그렇듯 '과학적'이 되겠죠. 의학이 되는 게 아니고요 (물론 저는 이 가능성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입니다만 그게 포인트는 아니고요).

 

그 경우 장기적으로 한의학이 주류 의학으로 결과적으로 점차 수렴되지 않을까라는 예측은 해 볼 수 있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게 제도권 한의학의 쇠퇴나 몰락으로 귀결될 수도 있겠죠. 그건 또 다른 논의 거리가 되겠구요.

    • 이건 국가주의에 입각한 기여contribution 수용 문제일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한-의학에 배타 대비 되는게 양-의학인데 서양의학이라고 하기엔 양-의학에서 지금까지 규합해 온 지역들이 매우 다양하니까요.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검증된 학문들을 통합하는데 있어 지역의 이름으로 기여했다는 걸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선에서 양보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소설을 써보면, 진단법 중에서 제가 풍월로 들은 것에 의하면 한의학은 환자 개인의 상대성에 의거하여 처방을 한다고 하더군요. 현대의학은 '건강한 환자'를 규정하고 그 상태를 유지하려 하구요. 그렇다면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전자의 진단법이 발전하여 유동-진단 뭐 이런 식의 진단법이 교재에 실리게 되면, 사史적 설명에 이런 문구가 붙는거죠. "이 것은 한국의 고대 의학에서 비롯된 것으로 2015년 문XX의 <ㅇㅇ>을 통해 정립되었고, 가타부타 누가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이렇게 되었고 그래서 결국 이 교과서의 여기에 실리게 되었다" 이런식이요.) 학문의 분류에 있어서 지역 명칭을 앞에 붙이는 게 어색하다는 걸 다들 지적한 것에 동의하며, 지역학이라면 굳이 과학적 방법론으로 그것을 변별해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각국 유사과학의 소멸이 과학적 방법론의 세계 확산에 있다면,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남아있는 지역적 특색을 무시하며 단숨에 뿌리뽑기 보다는, 근대 서양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도구를 통해 한의학을 여과시켜 찌꺼기를 버리고 알맹이를 취하면 된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의학 논리를 기반으로 경제 규모가 성립되어 있는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완전히 박멸시켜야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은 (실제로 그 규모를 줄이는데 있어서는) 별로 효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요와 공급은 비이성적이더라도 그 자체로 규모를 유지하니까요.
    • echoic / 그래서 그 둘이 결과적으로 수렴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둘다 과학적이 되는 거죠. 보편적 과학끼리 통하지 못할 이유가 없죠. 그렇다고 의학은 과학, 한의학은 과학이 아닌 것이라는 정의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은 논리가 될 수는 없다는 겁니다.
    • 미재/ 현대의학이 그 자체로 자연과학이라기 보다는 자연과학을 바탕으로 한 응용분야라는데 동의하고요, 한의학을 비판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원글의 마지막 부분에 동의할 겁니다. 개별 시술의 효과에 대한 재현가능한 효과가 입증되면 당연히 의학의 하나로 통합될 수 있죠. 극단적으로 말해, 이유는 모르겠는데 경혈에 침을 꽂은 신장병 환자들이 엄밀하게 통제된 대조군에 비해 유의미한 치료 효과가 검증되었다, 이러면 의학의 한 분야로 당연히 들어올 수 있고 그게 바람직하죠. 이건 한의학 아니라 무안단물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의학이나 주변 학문에서 그 기작에 대해 열심히 조사하겠죠.

      그러나 한의학을 둘러싼 논쟁이 그정도 수준에서 돌아가고 있지는 않죠. 현실에선 '한의학은 양의학과 신체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식으로 논점이 비켜가기 때문에, 비판자들 입장에서 그 근본 원리라는 게 일반적인 과학 상식에서 독립하여 돌아가는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는 공격도 함께하는 겁니다.
    • 가족중에 의사가 있는데 병인지 생리현상인지를 화학이나 물리 등등(전자가 왔다갔다 한다느니 등등) 으로 설명하더군요.
      검증된 타 순수과학을 통해서 인과관계 증명을 시도하면 과학적으로 검증된 영역에 속하게 되지 않을까요?
    • '한의학의 어떤 치료법이 효과가 있더라' 이런 게 단순히 한의학이 아닙니다. 다른 민간치료법이 그랬듯이 개별 치료법은 얼마든지 의학에 통합되어 사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의학의 음양오행이니 하는 사변적 논리들은 절대로 의학에 들어올 수 없죠. 한의학의 이런 기본 원리들을 쳐내고 나면 개별 치료법만 남는데 이걸 과연 한의학이라고 부를 수 있나요. 한의학의 정체성을 부인하게 되는거 아닌가요.



      의학이 곧 과학이 아니지만 그 기반은 자연과학이 뒷받침하고 있기에 뭉뚱그려 과학이라고 표현했지만 한의학은 그 근본원리 자체가 사변 아닙니까. 그 사변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한 절대로 한의학은 과학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한의학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것과 한의학의 개별 치료법의 효과가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천지차이라는 거죠.



      연금술에서 발견한 어떤 화학적 테크닉이 응용화학에 들어와서 쓰일 수는 있지만 연금술 자체가 화학에 편입될 수 없는 것과 같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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