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쿠데타에 대한 외신들의 논조가 좀 묘하더군요. 명시적으로 '쿠데타'라는 표현을 삼가하는 듯한 느낌도 들고 '헌법의 효력을 정지했다'라는 완곡한 표현은 군부의 발표를 그대로 인용한 문구인듯 싶거든요. '쿠데타'나 '군사정변'등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 보면 의미심장 합니다.
무르시가 애당초 예상과는 달리 가면 갈 수록 강경 이슬람주의 노선으로 기울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시인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서구 미디어에서 무르시를 좋게 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쿠데타는 쿠데타가 맞는데 결과가 그이들 관점에선 썩 나쁘지 않으니 쿠데타라 하지 않는걸까요.
특히 미국 같은 경우는 이집트군에 팔아먹는게 많아서 괜히 군부 심기를 건드릴 일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바마가 쿠데타란 표현을 쓰지 않은 것이라는 추측이 있구요.
군부쿠데타라는 말에 바로 거부감이 들긴 하는데... 오늘 아침에 들은 뉴스로는 쫒겨난 무르시 대통령이 작년에 개혁에 역행하고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하는 헌법개정을 하고 나서 그에 반대하는 시위가 들끓었고, 얼마전에 '아무리 시위를 해도 난 무를 생각이 없다' 라고 한뒤에 군부가 '그럼 우린 대통령 지지 못해줌' 하고 쫒아낸것이라고 하던데요. 그래서 '대통령이 개악한 헌법을 정지한다' 라는 표현을 쓴것이라고.. 박정희나 전두환 쿠데타하고는 상황이 좀 다른것 같습니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건 맞고 군부 쿠데타 자체는 당연 반대하는데 이집트 상황만 놓고보면 좀 복잡합니다. 이번에 축출된 무르시 대통령이 선거에 의해 정상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은 맞는데 이 양반. 그리고 그의 정치적 기반인 이슬람형제단이 정말 개판이었거든요. -_-; 무바라크 30년 철권시대 끝난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등에 업고 선출된 대통령이 파라오를 꿈꾸며 작년 11월에 대통령 권한 대폭 강화한 파라오 헌법 선언문 발표하며 새로운 철권통치를 시작.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덕분에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개뿔이고 새로운 무바라크 탄생일 뿐인 지라 수많은 이집트 국민들이 반정부 시위를 시작했는데 무르시 대통령이나 이슬람형제단이 국민들의 요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죠. 군부가 곱게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시간을 줬지만 매우 당연하게도 그럴 생각 전혀 없어했고 시간 다되니 군부가 정권 접수. 이러다보니 이걸 군부가 정권 꿀꺽하려는 목적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하기엔 이집트 내부 입장에선 애매한거죠. 심지어 대다수 국민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편이고. 여튼 국방장관은 헌재소장을 대통령 대행으로 임명해 조기선거를 실시한다고 밝혔으니 향후 행보를 보면서 이번 쿠데타를 판단해야 할 듯 싶어요.
저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할까봐 그게 제일 두렵습니다. 아니, 두렵다기보다는 쪽팔리다고 해야 할까요? 혼란을 수습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장기간 군사독재를 실행했던 사람의 딸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 직접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습니까...
대부분의 군사쿠데타는 나름의 '명분'을 가지고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직까지 '장면정권을 내버려뒀으면 나라가 망했을거다'라고 이야기 하시는 어르신들도 많고(어쩌면 다수일지도요...) 박정희도 5.16을 일으켰을 초기에는 혼란이 수습된후 군으로 복귀하겠다고 명시적으로 이야기했었구요. 향후 행보를 보면서 평가해야 한다는 말씀도 일리가 있긴 합니다만, 설령 평화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다 한들 군부가 집어준 정권이나 마찬가지일텐데 앞으로는 군부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지 싶습니다.
군부의 개입이야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를 거스르긴 하지만 터키의 경우도 그렇고 중근동은 근대화를 가로막는 이슬람(주의) 때문에 세속주의를 지향하는 군부가 어떤 면에서 적어도 겉으로는 서구적인 민주주의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보니 학살을 자행하던 세르비아 군부나 아프가니스탄 민중을 짓밟던 탈레반을 없애려고 개입한 나토가 옳았느냐의 문제처럼 딱 부러지게 답하기가 아리송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