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세뱃돈을 받아서 그 돈 넣을 지갑을 사고 나면 넣을 돈이 없는 사태가 늘 발생했어요 . 지갑을 사기 위해 설날을 기다렸는지 허무를 즐기기 위해 일부러 그랬던 건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요.
비슷한 종류의 허무감을 들게 하는 것이 설거지한 그릇 말리기입니다. 건조대에 널어 말리는 걸 좋아해요 . 그런데 뜨거운 물을 쓰지 않는 이상 그릇이 완전히 마르는 데는 의외로 시간이 꽤 걸립니다. 조금 삐딱하게 놓으면 퇴근 후까지 소량의 물이 남아있기도 하죠.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세 끼니를 챙겨 먹다 보면 아침 설거지해서 널어 놓은 그릇이 점심 차릴 때쯤 마르더군요. 굳이 이걸 건조대에서 걷어서 싱크대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 음식을담는 일을 되풀이합니다. 왠지 그러고 싶어요.
세탁을 하고 나면 몸을 움직였으니까 샤워를 하고 싶어지는데 그러고 나면 또 빨래가 나오고, 욕실청소도 마찬가지죠.
세탁물통도, 식기건조대도,욕실도 기분 좋게 바짝 말라서 아무 것도 없는 시간이 거의 없어요.
아래 콘도 같은 집 글 보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건조대 그릇 철수와 세탁물통 비우기와 욕실 청소를 하고 싶어 근질근질합니다. 이런 게 있는 이상 콘도 같은 집은 사진에서만 가능할 듯. 그 집도 제 집처럼 가려진 어딘가엔 세탁물이나 건조 중인 그릇 같은 게 있을 거예요. 하다 못해 건조된 그릇이 아직 방치된 식기세척기라도.
식기 건조기나 세척기 속 그릇들은 언제 치우세요? 다 마르면 즉시? 아니면 그 그릇이 필요할 때나 치워서 반쯤 보관함화? 아니면 저처럼 시치푸스의 그릇?
집안일은 그래요. 하고 또 하고의 반복이죠. 저도 살림 관련해서 제일 싫은 일이 마른 그릇이 아직 건조대에 있는데 무신경한 식구들이 젖은 그릇을 그 위에 올리는 거라, 아침 자다가 누가 물 쓰는 소리가 들리면 눈이 번쩍 떠지고 일어나 부엌으로 달려가 얼른, 마른 그릇이 아직 젖기 전에 설거지 하는 옆에서 그릇 선반에 올리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에요. 최악은 식구 중 누가 설거지 도와준다고 아직 젖은 그릇을 그릇 선반에 올리는 거. ㅠㅠ 사실 젖은 그릇 좀 선반에 올린다고 큰 일 안 날텐데, 그냥 강박의 일종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