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누구와 만나서 노십니까?

    "아니 그럼 금요일 저녁에 맥주 한 잔 하자고 하는 친구가 하나도 없단 말이에요?"
    "네."

    일전의 어느 점심 시간, 신장개업한 식당에서 갈비탕을 떠먹다 말고 누군가로부터 무방비로 들은 질문에 저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없습니다. 없어요. 대답하고 보니 진짜 없습니다. 그 날은 마침 불금을 앞두고 불타오르는 마음을 주체 못해 키보드를 누르는 손가락에 날개라도 달린 양 눈누난나 하는 사람들도 많았겠지만요. 그렇다면 수요일에 또는 목요일엔 약속이 있었느냐? 없습니다. 저는 사실 저런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저에게 전화 걸어 술 마시자 밥 먹자 보고 싶다 말하는 친구들 또는 지인들이 제 곁에서 없어진 지요. 그리고 제가 먼저 전화를 걸어 저녁이나 술약속을 잡기도 전에 스마트폰 송수화기 너머로 벌써 전자파보다 강한 상대방의 피로와 부담감이 몰려옵니다. 그럼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상대방의 악의 없는 발언에, 진짜 그 순간은 먹먹해졌다는 흔한 말로는 다 표현이 되지 않았어요. 30대 중후반부터 40대(여자) 성인에게 친구란 무엇인가? 꽤 오래 전부터 저는 이 주제에 천착하기 시작했고 비교적 가까운 최근에 나름의 결론에 이르렀어요.

 

   지금 내가 사는 나이의 시간, 이 시절은 도무지 누구를 제대로 재밌게 만날 수 없는 시절이구나. 대개는 나를 버려 다른 무엇을 구원해야 하는 시기의 가장 절정이구나 하는 평범한 깨달음 같은 거요. 저는 언제부턴가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던 이 에너지를 더 이상은 감당할 수 없어, 스스로에게 점점 더 함몰되어 가는 듯한 이상신호를 느꼈지만 속수무책입니다. 고상하고 돈 드는 취미를 새로 하나 가져야 할까 싶지만, 내 몸에 들이는 돈으로도 역부족인데다가 요 몇 년 사이 저는 정말 뭘 하고 싶은 게 도무지 하나도 없어요.

   

   친구들 대부분은 결혼 했고 또 평균 한 두 명의 아이들이 있지요. 누군가는 또 결혼생활에서 돌아와 새로운 사람과 새출발을 하기도 했고 그러고 또 아이를 갖고. 그리고 나서 저는 그들을 만날 수 없게 됩니다. 사람에게 가족구성원이 생기고 늘어난다는 것은 울타리 너머 타자의 개입에 대해 엄청난 제한이 자연스레 생긴다는 것은 이미 일가족을 통해서도 경험했던 터. 물리적인 조건들의 장벽이 높아지고 불편해진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감수하더라도 저는 친구들과 그 끈을 놓지 않으려 했고, 항상(?) 먼저 달려가 주는 것을 기꺼워했어요. 그런데 그것이 노력만으로는 극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고 나서 저는 그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지레 포기했다고나 할까요? 사실 어느 순간 저는 그들과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대단히 고상한 주제가 아니라 일부분 찌질하고 노골적인 100% 일상 얘기만 해도, 니가 나 같고 내가 너 같았던 20대 중반에서 30초반을 반추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겠지만, 정말이지 저는 정말 할 말이 없었어요.

 

    한때의 저는 이 세상엔 단 두 부류의 사람만 존재한다고 생각했죠.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과, 내가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제 오만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 저는 늘 전자들에 둘러싸여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술을 마시고 밤이 새도록 무수한 얘기들을 풀어놓으면서도, 속으론 늘 후자들을 열망해 왔어요. 혹여 눈치 빠른 전자들이 후자를 갈망하는 저를 의식하면 저는 예의와 의리로 불식시키면서요. 꿈도 욕심도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너무 명확했던 그 시절에 제가 뿜어낸 에너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런 나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과 경멸하는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았는지 당시엔 깨닫지 못했죠. 이젠 너무 늦었고,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죠.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갈수록 같이 놀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제가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간혹 직장에서의 회식이나 동료와 술자리나 저녁 약속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만나는 주기는 월 1회 이상은 안 됩니다, 제 품위 유지를 위해서라도요.

 

   그런데 늦은 저녁 또는 밤의 퇴근길, 사대문 한 중앙 도심의 복판이라 할 수 있는 이 동네에 다다라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부터 소외감이 느껴져요.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은 성경처럼 오묘한 말씀이예요. 실내 좌석이 모자라  바깥까지 내놓은 오*닭의  플라스틱 탁자와 의자에 앉아 생맥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광경을 보면, 곧 거품처럼 꺼질 시시껄렁한 얘기와 허튼 약속이라도 그 순간은 맹세를 할 만큼 확신하는 저 친목질들의 과시에 조금은 기가 죽으며... 나는 정말 소소한 사는 재미를 놓치고 산 지 꽤 오래 되었다고.

 

   그래서 저는 운동을 갑니다. 할 일이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이것이 그렇게 불쌍하거나 나쁜 상황은 아니지요. 운동은 여러모로 구원인 겁니다.         

    • 오만 독선 무지 밖에 없던 시간도 악당의 아우라가 있듯 그래도 빛이 있든 시간이라 생각해야죠.
      나를 에워싼 모든건 그 빛의 영양을 받은거죠.
      이런 생각은 후회할 때 주로 합니다.
      누가 따로 찾아 안만나요 가끔씩 그냥 만나게 됩니다.
      • 그리고 오만 독선 무지 그 안에 살면서도 좋은게 있어서 그래요 박테리아가 유용하게 쓰이듯 말이죠.
        • 오랜만에 나타나 너무 솔직(궁상)떠는 글에 2플이나 해주시다니 감개가 무량할 따름입니다^____^
    • 저도 올해부터 부쩍 만나자는 사람이 없어졌어요. 원래 깊고 친밀한 관계를 부담스러워하는 편이라 노상 만나고 연락하고 공유하는 절친은 없었지만 가끔 날 찾아주는 친구와 지인은 내 기준에는 부족하지 않게 있어서 외롭지 않았거든요. 근데 올 들어 그런 사람들이 확 줄어서 뭔가 좀 쓸쓸하네요. 그런 나이가 됐나 봐요. 이래서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거구나 싶고...
      • 그런데 또 결혼만이 해답은 아닐 것 같기도 해요...
    • 으앙 제가 쓴 얘긴줄 알았어요! 근데 저는 나이에 상관 없이 어렸을 때부터 이랬어요. 흑흑.
      • 한꺼번에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 보단 차라리, 꾸준히 적요한 것이 훗날의 공허함을 덜 느끼게 해주지 않을까요.
    • 나 스스로에게 함몰되어 간다는 글...아프게 공감해요.
      약간 다른 경우인데 원래는 나 자신을 지키려고, 혹은 정신 건강을 위해 멀리 했던 사람들과 관계들이었는데 요즘 들어 스스로에게 회의가 느껴질때가 종종 있어요.
      가까이 하면 내가 힘들고, 놓고 살자니 외롭고...
      인간관계라는 것이 늘 외줄타기처럼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남들은 설렁설렁 잘 부대껴 살아가는 것 같은데 말이죠!
      • 어쩌면 오빠닭 호프집에서 술 마시던 사람들도 저희와 같이 일년 중 두 번째 모임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만... 나를 버려가며 내가 아닌 채로 관계에 막 섞여들어가는 사람들은 (저보단) 덜 외롭겠지요.
    • 헉..이건누가 제속에들어갔다와서 쓴글인가했네요. 정확히 일치합니다
      • 그래도 하이텔님(?)에겐 냉면 지도가 있잖아요 ㅎ. 지금은 안 드시는 것 같지만요.
      • 제가 오래전에 금연에 대해 쓴 글이기는 하지만, 담배야말로 나를 가장 깊게 안아주는 긴팔원숭이지요.
    • 제 이야기인줄 알았어요. 심지어 운동하는것까지 똑같네요.
    • 헉! 저도 제가 쓴 글인 줄...

      같이 술 한잔 할 사람 없는 날이 올꺼라곤 예전엔 상상도 못했습니다.
    • 전 아직은 친구들이 아무도 결혼하지 않아서 저랑 놀아줄 사람이 있는데(20대 후반입니다) 이것도 얼마 안남았구나 싶어서 있을 때 잘 해야지- 하면서 열심히 놀러다니고 생일 같은 것도 잊지 않고 챙겨주고 여튼 신경 많이 써요.
      • 죄송하게도 조금 초치는 말씀일 수 있겠지만, 같이 열심히 놀러 다니고 생일 같은 것도 잊지 않고 챙겨주고 여튼 신경 많이 써-도 인간관계는 그것이 정말 전부도 아니고 심지어 아무 것도 아닌 때가 분명히 오는 것도 피해갈 수 없겠지만, 지금을 즐기세요 인간관계의 황금기.
        • 네 투자라기보다는 그냥 있을 때 잘하자 차원이에요. 나중엔 챙기고 싶어도 못챙길 때가 올테니까요.
    • 어렸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나를 좋아한다, 고 믿고 살았는데요. 요새는 대부분 나한테 관심 없구나 생각하며 삽니다; 저도 그렇고요.. 얕든 깊든 인간관계는 사람 자체를 만나길 즐기고 좋아하는 천진한 사람들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의미부여를 하건, 양질의 대화를 한다고 믿든 사람에 대해 너무 무거워지면 어려워진다고 생각해요.
      • 저야말로 이 혜안의 댓글에 공감 500 보탭니다, 성님!
    • 동인질을 하셔서 친구를 만드십셔 <- (...)
      쿠델카님이랑 비슷한 또래인데 저는 참 운이 좋았던 것이, 인터넷 통해서 좋아하는 것 얘기하다가 만난 친구들이 참 좋은 친구들이에요. 저랑 가끔 만나서 놀아주고ㅠ_ㅠ 음 그리고 제 원래 성격이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들면 이런 것이 나은지 모르겠지만, 일상도 서로 많이 달라지니까 딱 일상 얘기만으로는 만남을 끌고 가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아이 엄마들은 아이 얘기가 중심 화젯거리가 되지만,, 뭔가 같이 좋아하는 책이라든가 취미라든가 음 뭐 암튼 그런거요.
      음 그리고 사대문 안에 사시면 전 사대문 바로 밖에서 근무하는데() 음 제가 별로 재밌는 사람은 아니지만/ㅅ/
      • 저도 사실 하이텔 시절이나 인터넷 활동을 통해 만난 친구들이 반 이상이었는데, 일상 이상의 교감이 분명히 있었고 거기에 진심도 있었는데 모든 것이 흘러가더군요...
    • 조용히 공감 하나 보탭니다.
    • 운동이 구원이죠. 그래도 그게 잘 사는 것처럼 보이나봐요. 부럽다는 사람도 있으니 ㅋ..
      • 아주 어렵지만 단순하고, 아주 단순하지만 지속가능을 필수로 요한다는 점에서, 운동은 늘 가기 싫어 꾀가 나는 건조한 종교의식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 나이대가 비슷해서 인지, 제 얘기인가 할 정도로 정말 공감했어요.
      특히 "전자파 보다 강한 상대방의 피로와 부담감"이라는 부분과 운동이 구원이라는 구절이 제 일상과 비슷해서 "찌찌뽕"을 부르짖었어요.
      그리고 요즘 제가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한, '나를 만나고 싶은 사람'과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의 사람 구분법이란 표현이 나와서 좀 놀라기도 했네요.
      제 경우는 단순하게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항상 달려가는 쪽이었는데,
      '날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절 대하는 상대방의 가식과 예의를 어느덧 제가 빤히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자 그다지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별로 의미가 없어지더라구요.
      • ㅎ ㅎ 뭔가 만나자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선빵을 날려버리는 상대방의 피로에 관한 사인은, 출장길에 10불 주고 인도 공항에서 산 싸구려 이어폰이 제 고막을 까끔거리는 자극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제 눈치라면 눈치겠지요.
    • 모임을 가지시면 됩니다:)
    • 이맘때쯤엔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나요? 공감합니다.
    • 오랜만에(?) 나타나 너무 없어보이는(!) 글을 쓰면서 내심 걱정했는데, 제 글에 공감을 표해주시는 분들이 이리 계시다니 우리 마음은 모두 외로운 사냥꾼. 역시나 운동 다녀와서 댓글 다네요. 선풍기에 말린 머리, 두피까지 말리려면 한 시간 이상은 걸리겠죠...

      사실, 그렇다고 누굴 꼭 만나야겠다거나 술자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거나 모임을 가졌으면 한다거나 하는 욕망이나 아쉬움 같은 것도 그닥 없어요. 아시잖아요...? 그냥 살 만하다는 것을. 술은 사다 집에서 마시거나, 마땅한 술집 찾아 혼자 마셔도 되고... 피차간에 돈을 빌려달라거나 보험을 들어달라는 전화만 아니면 기꺼이 받을 수 있지만, 사실 나 사는 얘기나 너 사는 얘기나 뭐 서로간에 신통방통한 것도 하나 없고... 이렇게 중년 되고, 그러다 동창회 나가는 여(남)자 안 나가는 여(남)자 중 하나로 구분 되다가 건강검진 더 정밀히 받고 가진 재산 더 엄격히 체크하고 늘리면서 점점 꼴을 못보는 것들이 늘어가는 게 중년 아니겠어요. 정말 사실은... 인간관계고 뭐고, 내 옷장에 소장하고 있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가방이나 열몇 개가 걸려 있지만 다들 세상에 하나 뿐인 트렌치코트 만큼의 애정도 없고, 다 귀찮고 하나도 아쉬운 것도 없어요.

      그런데 아주 가끔,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떤 보잘 것 없는 추억이나 기억 하나에도 절절맵니다...
    • 아..낮에 오랜만에 애엄마인 친구가 친구관계가 다 끊겼다고 하소연하던게 생각나네요.미혼인 경우와는 다르겠지만,결혼하고 가족 외에 만날 사람이 없어지는 건 가끔 참 막막하고 답답하고 그렇다더라구요.이 친구는 출퇴근시간도 길어서 퇴근하고 바로 집으로 가도 한밤중이고,주말에는 아이와 있어줘야 하고..그 와중에 남편은 술도 마시고 친구도 만나지만 자기는 어째서인지 이제 만날 수 있는 친구도 없다고.보니까 더 나이들고 아이가 좀 자라고 하면 주부들 사이에서도 유대감이 생기는 것 같지만,이맘때는 그러기도 힘든가봐요.
    • 지방 출신인데 타지에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직장생활 하다보니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은 회사동료 뿐이네요.. 오랜 친구는 딱 한 명이구요. 그 친구가 바쁘면 회사사람들하고 주말을 보냈는데 잘 지내던 4~5명의 무리에 균열이 생겨 지금은 쌩~하고 있어요.ㅠ.ㅜ 애인을 통한 인간관계에 기대는 면이 커서 애인이 있을땐 그의 행사에 항상 따라다녔고요.. 돌이켜보니 제가 누군가를 부르고 모임을 주최하는 일은 거의 없었네요. 애인이 떠나가고 회사동료들과도 소원하니 오래된 친구가 절 부르지 않으면 그 먼 고향으로 억지로 내려가서 주말을 보내고 오기도 합니다. 쓸쓸한 자취방에 주말 내내 혼자 남는건 너무 싫거든요. 갑자기 우울해지네요.. 지나간 사진첩에 남아있는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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