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 남편과 벌레 퇴치법?

올초에 마당이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결혼 후 쭉 아파트 생활을 했었거든요. 우리 애는 꼭 흙마당이 있는 집에서 기르자,  연애 할 때부터 이야기 했던 터라

큰 맘 먹고 내린 결정이었지요. 꼬딱지만한 아파트를 판돈으로 변두리로 눈을 돌리니 꽤 널찍한 집을 구할 수가 있더라구요. 

신랑 출근 시간이 1시간 반이나 늘어났으니 사실 변두리라기보단 교외라는 표현이 맞겠죠. 

마당 뒷편으로 큰 은행나무랑 목련나무, 감나무도 있고 봉숭아나 맨드라미 같은 작은 꽃들도 제법 심어져 있었습니다. 저희가 이사오기 전엔 50대 부부가 주말에만 들려

텃밭 가꾸는 용도로 사용하셨다고 하는데, 집에 신경을 쓰신 티가 역력했지요. 너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공기도 좋고 조용하고 햇볕도 잘들고...

신랑 출근시켜놓고 커튼 너머 살랑살랑 들어오는 햇빛 냄새 맡으면서 소설책을 읽는 여유로움이라니...

아이를 갖기로 하고 10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서 찝찝했던 마음이 사그라들 정도였지요.


근데 역시나 문제는 있었습니다. 벌레가 너무 많아요. 종류도 다양하고 어디서 들어오는지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합니다. 다행히 바퀴벌레는 없는데 제가 벌레라면 종류불문 

기겁을 해서 (잠자리도 무섭습니다;) 거의 노이로제 수준이에요.

세스코라도 불러볼까 했는데 신랑이 결사반대를 합니다. 저희 신랑은 벌레를 안 잡거든요. 불교도라서 살생을 안 하는거면 이해라도 하겠건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연애시절 경주로 여행을 가서 민박을 했는데 이 인간이 자기 팔에 붙은 모기를 안 잡는 거에요. (네. 이 인간 모기도 안 잡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글쎄

"벌레들한텐 우리가 신같은 존재 아니겠어? 몸에 남아도는 피 좀 빤다고 손바닥 한 번 휘두르면 생사가 왔다갔다 하잖아.

만약 진짜 조물주라는게 존재해서 우리를 들었다 놨다, 벌주고 상주고 하는 거라면 나중에 꼭 한 번 따져볼라고.

야, 넌 뭐가 그리 잘나서 세상을 이 따위로 만들어놓고 설교질이냐. 그래놓고도 밤에 잠이 오디?

그럴만한 자격이 있으려면 당연히 나부터 솔선수범 해야지."

랍니다.;;


당시에는 귀엽기도 하고 착해보여서 좋았는데 (네. 콩깍지가 단단히 씌였더랬죠)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더도 덜도 아닌 딱 중2병의 발상.

얼마 전에도 거실에서 지네를 닮은, 다리가 아~~~주 많이 달린 벌레가 나왔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게임 하고있던 신랑한테 SOS를 쳤더니

행여나 다칠까 쓰레받기로 곱게 떠서 창밖으로 놓아줍니다. 그렇게 놔주면 또 들어 오잖아!!! 버럭 소리를 질러도 물지도 않고 해충도 아니랍니다. 

"징그럽다고! 임신했는데 놀라서 유산이라도 하면 어떡할래? 네가 책임질래? "  

"좀 징그럽다고 얼마 살지도 못 하는 생명을 죽이면 쓰냐? 보다보면 정들고 정들다 보면 귀여워" 

랍니다;;;  

"부처님 나셨네, 부처님 나셨어. 그런 분이 고기는 어떻게 드시나? 송아지랑 닭이랑 돼지는 안 불쌍해? "

"살기 위해 먹는 거랑 귀찮다고 죽이는 건 다르지 이 사람아."

"고기 안 먹는다고 안 죽거든요? 채식하는 사람들도 잘만 살거든요?

"네네, 사모님, 잘 알겠습니다. 고정하세요" 

이러고는 또 게임하러 갑니다;;;

야!! 내가 소중해, 벌레가 더 소중해? 유치작렬 멘트가 목구멍까지 올라옵니다만 지금까지 고이 쌓아올린 저의 지적인 이미지를 생각하니 그냥 눌러 삼킬 수 밖에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에프킬라도 못 뿌립니다. 모기는 물론이고 손톱만한 나방도 가끔 나오는데 말이에요. 방충망도 새걸로 갈았고 거실, 부엌, 욕실등을 전부 개조해서

그럴만한 틈이 안 보이는데, 집 자체가 오래되어서 그런가 벌레들이 오가는 구멍 같은게 있나봐요.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백반이 벌레를 쫓는다길래 친정 엄마한테 부탁해서 구석구석 뿌려봤지만 가시적인 효과는 없네요. 

벌레를 죽이지는 않고 쫓기만 하는 효과적인 방법 없을까요? 벌레를 못 들어오게 하는 전문적인 공사라든가...

아니면 아직 철이 덜든; 저희 신랑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라든가...

저도 생명존중 좋아라하고 가능하면 그러고는 싶은데, 거실에서 TV조차 마음놓고 볼 수가 없으니 저한테는 정말 심각한 일이거든요.  

    • 죄송한데 저한테는 남편분 멋있네요;
      저도 벌레 잘 못죽여요.. 어렸을 때는 잘 죽이고 잔인한 짓도 하고 했는데
      나이 드니까 벌레 죽이는게 꺼려져서요.. 아주 작은 초파리같은게 귀찮게 하면 잡아버리긴 하는데 왠만하면 벌레도 죽이지 않고 잡아서 놓아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뭐 어쨌든 해결책을 제시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 커플 신고 ^^ 행복하세요.
    • 벌레가 별로 안 싫으면 잡기 싫은 게 사실이에요. 심각한 위생문제를 일으키거나 물어서 가렵게 하는 게 아니면 내가 뭔가를 때려 죽인다는 불쾌감이 더 크거든요. 가렵거나 식중독 일으키는 거면 일단 내가 살아야 하니 ;;;
      본인이 벌레를 안 싫어하니 싫다는 걸 괜한 과장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요. 그러니 저는 상대를 바꾸겠다는 것에는 회의적.

      백반이 확실하게 쫓는 건 바퀴였어요. 쫓는다기보다 식빵에 섞어 놓으면 안 보이는 걸로 봐서 아마도 먹고 죽는 것 같네요. 시체도 몇 치웠지만 자연사인지 중독사인지는 잘^^;;
      그냥 세스코 부르심이 어떠실까요? 저희 본가도 굉장히 오래된 집이었는데 개인이 설치하는 약으로는 박멸이 안 되더군요. 아무리 벌레를 안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세스코 불러 박멸한 것 가지고 뭐라고 하진 않으시겠죠. 상대의.완전한 개종을 바라지 마시고(그냥 푸념 삼아 농담하신 것 같지만) 확실한 방법으로 '내가' 박멸하겠다는 것에 동의하는 선에서 만족하심이 어떠실까요.
    • 손톱만 한 나방 넘어서 손바닥만 한 나방 날라다녀도 사람은 사니까요.
      사람은 참, 마음 먹기 나름, 사람 간의 문제지요.
      ........화이팅.
    • 남편분 호감이네요. ^^
      저도 딱 저같은 얘기를 2번 들어봤어요. 대학 교양수업 곤충전공 노교수님과 꿀도 안먹는 비건인 일본인 친구.
      그 얘기 들을 때, 뭔가 내 안에서 충격이었고, 좋은 감정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 주먹만한 바퀴벌레를 방생하는데.. 살아있는 것에 대한 애정이 담긴 눈빛이 기억이 나요.
      전 중2병 환자들 좋아합니다. ^^
    • 이게 왜 중2병이고 철이 덜 든건가요. 제 눈엔 굉장히 훌륭해 보입니다.
    • 전 거미는 집안에 냅두고, 모기나 파리는 죽이고, 다른건 그냥 밖에다 내놔요. 벌레가 짜부러져서 죽은거 보면 소름이 쫙 돋아서...



      앞마당에 개미집이 있어서 지네같은거 내놓으면 죽겠지 하는 생각으로...
    • 전 벌레공포증 비슷한 거 있어서 님 마음 충분히 이해갑니다 ㅠㅠ 근처에 벌레애호가(미술하는데 벌레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주로 그림)가 있는데요, 그 사람과 친해져도 도저히 벌레의 미학을 전 진짜로 모르겠어요. 음 님의 구역을 설정하고 그 구역만큼은 벌레가 오지 못하게 수단방법을 다 쓰고 거기에서만 머무는 모습을 보이면 어떨까요? 그럼 남편분도 반응이 있지 않을까요..
      • 2222

        제 눈에도 중2병으로 보입니다. 아내가 이렇게나 고민이 많은데... 벌레 싫어하는 제가 읽기 괴로운 내용. ㅠㅠ
    • 세상에... 전 벌레 잘잡는 사람이 이상형이라 이해불가네요 ㅜㅜ 모기도 안잡는다니;
    • 취향은 노력에 의해 바꿀 수 없는걸까요?

      벌레 없는 큰 마당은 모순적이죠.
    • 벌레 나왔을때 오버액션 몇번 취해보시는게.
      안잡아서 생기는 귀찮음이 일정수준을 넘어서면 그 귀찮은게 싫어서라도 잡을 수 있겠죠.
    • 자신의 불편함을 얘기하고 벌레를 잡으세요
      백반도 놓고 하시는 거 보면 남편 분이 글쓴이가 벌레 잡는 것까지 완강하게
      막는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럼 큰 문제 없지 않나요?
      결국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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