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치가 환기하는 것은 대상에 대한 공감과 연민과 찬탄이라기보다 감상자 자신의 심미안과 만족감과 허위의식인 것이다"
"진정한 예술은 우리 바깥쪽에 존재하며 그 엄격하고 초월적인 미 때문에 소비계층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꽤나 유명한 책인데.. 전 왜 인정이 안되는 걸까요. 사람이 무언가를 보고 감동하는 것은 보통 무언가가 자기 내면에 있는 것들을 건드렸을 때 아닌가요. 죄책감이라던가 추억이라던가..
이 책에선 키치를 아주 싸구려 쓰레기로 매도하고 있거든요. 혹시 이해가 되시는분은 짧게나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예술은 감상자가 미리 욕망하려는 것 외에 둔기로 머리를 내리쳐받은 것처럼 새로운 자각을 불러 일으킬 수 있어야 진정한 예술이라고 보는 것 아닌가요. 우리가 차를 부수는 것을 보고 쾌감을 느끼려 액션영화를 보러가서 딱 그 정도의 느낌만 받고 온다면 그건 예술감상이 아니라 킬링타임과 엔터테인먼트라고 보듯이 말이죠. 우리가 마음이 언짢아서 울고 싶어 딱 그 중도의 슬픈 스토리의 신파극을 찾아
물론, 그 '진정한 예술'을 자각한 것은 우리 - 나지만, 우리 - 나는 (본문의 표현따라) 죄책감이나 추억 같은, 자기 내부 아닌 어떤 것을 인식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네요. 얼마전 문학판에서 유행한 용어로 표현하면, 기존의 서정시가 환기하는 보편적으로 아름답고 윤리적으로 옳은 '서정'이 있고, 그것이 아닌데 (비-서정, 반-서정, 다른-서정) 아름다운 무엇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지요. 그 가능성을 '초월적', '엄격한', '바깥'등의 용어로 표현한 것일 테고요.
우리가 서구의 근대를 아직 추수하고 있고, 그러한 한에서 데카르트가 설정한 '나'의 구도를 벗어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것이 초월적인 미美건, 보통의 서정에 가까운 것이건, '내'가 그것을 의식한다는 사실은 기본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구도겠지요. 우리가 너무 당연한 것을 설명할 때는 종종 그것을 생략하는 것처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