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이란 무엇인가?
새삼 한의학이 이곳 게시판에서도 주목받고 있네요.
원래는 일부 사람들이 쓰던 말이었는데 어느새 인터넷에서도 유행처럼 번진 '한방무당'이라는 말로 한의학을 폄하하는 관점도 있는 것 같구요, 우리 것이 몸에 좋은 것이여라는 '신토불이'로 해석하여 당연히 의학도 한의학이 우리 몸에 더 잘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관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 이야기도 인터넷 공간을 떠돌게 되는 한낱 몇 글자의 그렇고 그런 별수롭지 않은 글일수도 있겠지만 그냥 제가 생각하는 관점을 좀 적어보려고 합니다.
1. 한의학이란 무엇인가?
한(韓)의학이라고 말하는 의학은 과연 있는가?
당연히 없습니다. 원래는 한(漢)의학입니다. 즉, 지금의 중의학이라는 용어와 완전히 같은 뜻입니다.
허준의 동의보감? 태양인 이제마의 사상의학?
물론, 허준선생이나 이제마선생이 남긴 의학이 있으니 지금의 한(韓)의학과 중의학을 다르게 봐야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동의보감이 한의학의 'A to Z'는 아닙니다.
한의학과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다루는 본초학, 경혈학, 방제학 등의 근원은 역시 중국에서 들어온 것입니다.
한(漢)의학이라고 쓰여지고 불려지다가 어느샌가 한(韓)의학으로 둔갑한 학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양의학이라고 불리는 현대의학이 서양에서 들어왔으니 신토불이에 맞지 않는다면,
오랜 세월동안 한(漢)의학이었다가 한(韓)의학이 된 학문은 정녕 신토불이인지 의심이 갑니다.
2. 서양의학에서도 침구학등 동양의 의학, 특히 우리의 한의학에 주목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는 대체의학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기인합니다.
서양에서 말하는 대체의학은 동양의학(중의학, 혹은 한의학)이 아닙니다.
대체의학이라는 말이 곧 민간요법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대체의학이라는 용어는 우리나라에서 곡해되어 남용되고 있는 단어입니다.
현대의학에서의 대체의학은 엔자임 쎄라피라던지, 다이어트 쎄라피라던지 의학의 범주 내에서 다뤄질 수 있는 대안 형태의 의학을 모두 통칭하는 말입니다.
거기에 침구학에 대한 현대의학적인 해석이 있을 수 있는 거지 동양의학이 대체의학으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건 대단히 잘못된 해석입니다.
또한, 현대 서양의학의 대체의학으로서 전락하기엔 한의학의 입장에서도 다소 억울한 면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한의학의 큰 문제는 역시 진단 및 치료계획의 미비함입니다.
현대의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가 진단입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각종 검사등을 시행하게 되죠.
채혈도 하게 되고, X-Ray도 찍고, CT도 찍고, MRI도 찍고...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검사를 시행하게 되죠.
진단이라는게 환자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예를들어, 폐암이라면 진행된 양상이 몇 기인지, 혹은 중요 장기에 전이된 건 아닌지 등등 질병의 진행상황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아내는 것까지가 진단이라고 할 수 있죠.
지난 무도 방송에 비춰진 것처럼 오링테스트 등으로 간이 안좋은지, 척추가 안좋은지 등을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그게 정확히 무슨 병명인지, 그 병이 얼만큼 진행되어있는 것인지, 진행상황에 따라 어떤 치료법을 선택해야하는 것인지를 전통의 한의학으로는 정확히 알아낼 객관적으로 정형화된 방법이 없습니다.
정확한 병명과 진행상태를 모른다면 이후의 치료는 결국 믿음이 좌우하는 것이 되겠죠.
다시 예를 들자면 집근처 정형외과에서 X-Ray를 찍어 다리의 골절상을 알게 된 환자가, 그 X-Ray를 들고(혹은 들고가지 않고 새로 찍더라도) 회사 근처 정형외과에서 동일한 골절상을 확인하고 똑같은 치료법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건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겠죠.
4. 국내 한의학과 커리큘럼의 문제점
한의대는 예과 2년, 본과 4년의 교육과정을 갖게 됩니다.
한의대 6년 교육과정 중에서 한의대생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게되는 과목이 어떤 과목이라고 생각되십니까?
본과 1, 2학년을 장식하는 본초학도 방제학도 경혈학도 아닙니다.
바로 예과시절에 악몽을 선사하는 '한의학 한문'이라는 과목입니다.
기본적으로 한의학 원서는 당연히 한문으로 적혀있습니다.
그런데말입니다. 이 한의학 원서에 사용되는 한자는 우리가 늘상 사용하는 그런 한자가 아닙니다.
심지어는 옥편에도 실리지 않는 한자가 버젓이 등장하곤 합니다.
예과시절동안 죽어라 한의학 한문을 공부해도 한의학 원서(원전)를 본과생이 독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국 누군가 이를 번역한 책으로 배우게 되는거죠.
한문을 번역해보신 분은 알겠지만, 한문은 번역하기에 따라서 그 뜻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으며, 번역자의 주관이 강하게 반영되기가 쉽습니다.
일단 언어의 장벽을 뚫지 못한 대개의 한의대생은 이러한 혼돈 속에서 '한의학이 과연 어떤 학문인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즉, 내가 지금 뭘 배우고 있는지 아리송해지는 환경에 처해지게 되는것이죠.
결국, 한의대생들은 어떠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여정은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고, 물리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통일화되고 정형화된 학문적 체계가 전국의 모든 한의대에 자리잡히지 않는 이상, 이런 현상은 해결되기가 쉽지 않다고 봅니다.
5. 그럼 한의학은 쓰레기인가?
아닙니다.
제가 한의대 커리큘럼의 문제라는 치부까지 드러낸 이유는 한의학계 내에서 이미 오래 전 부터 학문적 한계를 인지하고 현대적인 의학으로의 전환을 위한 시도가 많이 자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진단과정의 객관성 결여는 현대의학의 힘을 빌려 영상의학과 혈액검사 방법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또한 원전의 독해가 쉽지 않은 현재 커리큘럼의 문제 역시 해가 거듭될 수록 학회내에서 정형화되고 객관적인 텍스트북을 발행하려고 노력중입니다.
일부 방송에 나오는 한의사들의 비판받기 쉬운 행태들로 인해 한의학계가 계속해서 구설수에 오르고 있으나,
모든 한의사가 귀를 접었을 때 통증이 있으면 척추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6. 그럼 한의학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한의학이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양에서 온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는 다는 건 다소 아이러니합니다만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젊은 한의학계가 추구하는 방향은 그간 국민들이 생각했던 한의학과는 다소 생경한 느낌이 드는 형태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건 철학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한의학이 서양의학을 만나서 그 근본을 잊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가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