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대로.
0_ 전번에 처음으로 '여러 가지'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 봤는데 편하더군요. 글쓰기 귀찮을 때 이름을 대충 지어 쓰면 거슬리지 않고 아무거나 쓸 수 있으니까요. 뭔가 준비해서 쓰지 않아도 되고. 또, '여러 가지'로 글을 쓰고 나서 느낀건데 그런 제목은 자기 인지도를 걸고 쓰는 것이더군요. 여러 가지, 라고 하면 도대체 무슨 내용일 지 알 수 없고 관심 없으면 보지도 않을테니까요. 그런 제목으로 꾸준히 쓰는데도 읽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글의 내용으로 (아니면 인지도로) 독자를 꾸준히 유치한다는 거니까, 그 재미도 무시할 수 없더군요. 한 번 쓰면 꼭 다시 쓰게 되는 마의 이름이라고 할까. 하지만, '여러 가지'의 경우 DJUNA님이 쓰시는 것이라 속인단 생각이 들어 한 동안 그런 종류의 다른 이름을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만큼이나 균형잡힌 이름을 떠올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한참 포기했다가 대충 지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제목을 '무제'로 짓는 그림들은, 그리는 사람들이 편하기 위해 그런가보다 싶기도 합니다. 그림이나 글은 제목을 정해두고 쓰거나, 다 쓰고 제목을 정하거나 하는데 글의 경우는 제목을 정해두고 쓰는 편이 많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글 중에 내용을 다 쓰고 제목 정하는 건 신문 기사 정도일까요. 그림도 제목을 정하고 그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린 후에 제목을 정하는게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1_ 구로사와 아키라전을 다녀왔었습니다. [마다다요]가 짜증나서 글 쓸 기운이 빠져버리더군요. 이 소재도 다른 글로 빼서 쓸까 했는데 힘이 빠져서 쓸 수 없더랍니다. 총 네 개의 영화를 봤는데, [요짐보], [조용한 결투], [백치], [마다다요] 순으로 봤습니다. [마다다요]는 전후 일본 사회의 식자 지식인이 주인공인데, 선생님을 하다가 글을 쓰기 위해 교수를 그만둡니다. 그리고 동창회를 열면서 학생들이 선생님을 일본 전후 사회에서 꾸준히 돕는데 그 과정이 매우 위인전스러운지라 지겹습니다. [마다다요]란 제목이, '아직 아냐'란 뜻인데, '안 죽었나?'에 대한 대답으로 '아직 아냐'란 답을 하는 선생의 동창회 이름이 됩니다. 전 꼬여서 보고있던 터라 전쟁 이전의 지식인 보고 '안 죽었냐?'라고 물을 때마다 '아직 아냐'란 대답을 듣는 현대 일본 사회에 대한 풍자가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영화는 일본 문화가 아주 농밀하게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으면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많았으리라 생각이 들더군요. 전쟁에 있어서 오직 피해자 입장에서 주인공을 그리며 늙어서까지 동심을 가졌던 아름다운 선생님, 이런 이미지였던지라 짜증이 났습니다. 하, 전쟁에 대한 일절의 성찰도 없이, 전쟁이 끝났다고 좋아하는 이들을 "전쟁 패배했는데 뭘 좋아해?"라고 가볍게 찔러주는 식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꼴사납더군요. 구로사와 아키라가 이 영화만 안 찍었어도 제가 완전히 푹 빠질 수 있었을 텐데, 다된 죽에 코 빠트린 것도 아니고. 다른 무엇보다 화나는 점은 나머지 3편의 영화가 너무 좋았다는 겁니다.
[요짐보], [조용한 결투], [백치]를 연달아 보면서 구로사와 아키라에 대해 희미하게 잡히는 공통점은 선한 사람을 영화로 그려내려 노력한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선하다는 건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말이죠. 그가 그린 주인공들은 [요짐보]를 제외하면 무식하도록 선함을 추구하더라구요. 어찌 보면 [마다다요]의 주인공도 선자의 일종이었을진 몰라도 사회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여줬어야 말이죠. [요짐보]는 재미있는 시대극이라 생각했어요. 영화가 시작할 때 화면 위에 두꺼운 붓으로 스텝롤이 지나가는 부분이 흥미롭더군요. (세로쓰기 스텝롤을 보고 있으니 세계에서 세로쓰기 하는 나라가 얼마나 되나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끝에는 끝- 이러면서 끝나고. [조용한 결투]는 참 주인공이 무식해보이더군요. 다른 말로 하면 우직해보인다고도 할 수 있겠죠. 선함을 추구하는데 있어 바보같이 우직함이 타인을 감화시킨다, 라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서도 그런 비현실적인 인물을 잘 그려내서 감동을 준다는 것에 있어서는 영화를 잘 만든다고 양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성적 순결이란게 시간이 흐를수록 선과는 멀어져가니 시간이 흐를수록 부조리극처럼 보이겠지만 말이에요.
[백치], 아. 전 [백치]를 보고 구로사와 아키라가 뛰어난 사람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훌륭한 원작을 두고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가 영화를 통해 뭔가를 전했다는 느낌, 그리고 그걸 제가 전해 받았다는 느낌, 그것은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백치]를 보면서 지금까지 영화를 보면서 연기에 대해 둔감했던 제가, "연기를 잘 한다"라는 표현이 무엇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언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보면 격한 감정에 대해 쉬운 표현처럼 보이는 부릅 뜬 눈 같은 부분에 있어, 그렇게 화내는 사람들이 "진짜로" 그 감정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슬퍼하면 진짜 슬퍼하는 것처럼 보이고, 분노하면 분노하는 것처럼, 사랑하면 사랑하는 것처럼 믿어졌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백치]의 서사 요소들은 현대 한국의 막장 드라마 내용가 그렇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왜 그리 좋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던 [무지는 유지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명제를 주제로 삼아 필사적으로 그려낸 영화였기 때문일 겁니다. 두 손을 가슴에 모아 바보처럼 보이던 주인공도, 굵은 아이라인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여주인공도 잊지 못할겁니다. 결혼 비용을 아궁이에다 집어 넣어버리는 장면이나, 마지막의 사자대면 장면도 잊지 못할 거구요. [달과 6펜스], [에반게리온:Q]와 마찬가지로 [백치]에서도 왜 불길한 예감을 전해주는 사람의 말을 그렇게도 안 들어먹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저는 그런 조언을 무시하고 강행하는 이들이 겪는 고통이 결국, 그들이 민감하게 듣지 않았기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이걸 보고 [마다다요]를 봐서 왜 굳이 제 기분이 잡쳐져야 됐는지는 의문입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도대체 왜 [마다다요]를 찍은 것인가!
2_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상록미술관을 다녀왔었습니다. "현대미술의 현장과 최근 경향들"이라는 월간미술 편집장 초청 강의를 듣는 겸사겸사 미술작품이나 보러 갔었습니다. 10시부터 여는데 여기는 입장료가 없더군요. 그대신 본관과는 달리 내부가 상당히 덥습니다. "동서의 미래와 소통"이라는 작품전을 하고 있어서, 무슨 유럽과 동아시아를 잇는 대규모 작품전인가? 하고 기대했는데 한국을 동서로 나눠놨더군요. 대전 - 대구 - 광주 - 부산 등지에서 화가들이 그림을 보내온 전시회였습니다. 작품들을 유심히 보니, 회화 작품이란게 이차원이 아니라 삼차원이었습니다. 집에서 모니터로 작품들을 볼 때, 납작한 화면에 눌린 인쇄된 그림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가보면 물감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덧칠되고 또 덧칠된데다, 불쑥 솟아올라 있거나 가라앉아 있고, 수채화는 물기로 인해 눅눅해지거나 퍼진 게 보였습니다. 그걸 유심히 바라보는게 재미있더군요.
제 가 가장 좋아했던 작품은 민경옥, "feeling 나무"였습니다. 아, 이름을 쓰고나니 생각나는건데 한국 화가들은 작품 제목 짓는데 센스가 없어 보였어요. 영어 + 이름이라던가, 아니면 꿈 이나 시간, 행복, 과거와 미래 이런 느낌으로 많이 짓는데 제겐 좀 별로였습니다. 이름이 작품의 맛을 떨어트리는 경우가 다수. feeling 나무는 (으아! 쓸 때마다 끔찍해요) 점성이 강한 물감으로 그려진 듯한 나무 그림이었는데 색갈 찰흙으로 그림을 그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마 그 물감 종류는 흔할거에요, 제가 익숙하지 않은거지) 제가 좋아했던 이유는 터치를 느낄 수 있는데다가 어떻게 보면 나무로 안 보이는데 전체를 보면 확실히 나무란 걸 알 수 있는 그 사이가 불분명해서 그랬습니다. 화가가 나무"처럼" 보이도록 잘 구성을 해 놓았다는 기분이 잘잘한 붓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물감이 짓이겨진 부분 부분에 담겨져 있어서 신기했다고 할까요. 어떻게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지 감을 잡았어요. 심심한 정물화도 싫고, 너무 멀리 나가버린 추상화도 싫고, 딱 그 사이 쯤에서 줄타기하는 것, 상당한 덧칠이 섞여 섬세한 것, 정도일까요. 뭐라고 부르는진 모르겠지만.
이돈흥, "무등산 2013-2"도 좋았어요. 푸른 색의 산 그림인데, 붓을 휘두르는 것이 느껴질만큼 대담하고 격한 그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답답하단 기분이 들었다면, 이 분의 작품은 시원하다는게 바로 와닿더군요. 정상섭, "만발하다"는 꽃이 나무를 다 덮어서 꽃 장판처럼 보이는 사이로 겨우 나무가지가 보이는데 그런 식의 표현으로 "만발하다"라는 걸 설명하는게 재미있었습니다. 만발에 대해서 내가 그린다면 저렇게 생각해서 그릴 수 있을까 하는 재미였죠. 제목과 그림을 비교할 때, 제목을 그림으로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화가와 겨루는데, 썩 맘에 들지 않는다거나 실망이라거나 하는 것도 많았어요. 어떻게 되었든, 미술관에 간다는 건 복권을 긁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꽝이 많긴 하지만 내게 찡! 하고 맘에 드는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로 간다는 것 말이죠. 하나나 둘 정도만 얻었다 해도 매우 큰 소득이라 생각했어요. 삶을 살면서 그렇게 적은 투자로 큰 즐거움을 얻긴 힘들다고 보거든요. 제 취향을 더 알수록 재미있겠다 싶었습니다. 잘 알게되면 맞는 전시회에 참가해 취향을 간질간질 건드려서 더 즐거운 관람이 가능하겠죠.
3_ 세입세출과 박근혜 관련해서 글쓰기 귀찮아서 유보 중입니다. 세금관련은 알면 알수록 어렵고 어렵기 때문에 의견을 내지 않는다는건 이상하지만 모르면 모르는 만큼에서 모른다고 시인하면서 의견을 내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아마 남을 전부 신경쓰면서 자기 이득 취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박근혜는 위원회 4개를 위촉했고 아마 그 4개 다 자문위원회일겁니다. 7월에 국무회의는 3번을 했는데 아직 내용은 읽어보지 않았어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설명한다는 형식을 집어치우고 제가 느낀 것을 느낀대로 대충 쓰면서 알면 알고 모르면 모르고 하는 식으로 정리하자고 장벽을 낮추는 중입니다. 그래도 무언갈 아는게 재미있긴 하군요.
4_ 트위터를 시작했습니다.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담은 한 톨도 쓰지 않기로 마음 먹고 말이죠. 재미있긴 합니다. 팔로잉과 팔로워는 공개되어 있는 수치 부분인지라 최대한 줄이고 리스트를 만들어서 거기다가 이 사람 저 사람 집어넣어서 분류 몇 개를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다른 사람이 만든 비공개 리스트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지 없는지와, 관심글로 지정했다가 관심글을
풀면 "관심글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런 말이 나오는가에요. 트윗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건 한시입니다. 140자라는 한계가 있는데 그
안에 무언가를 짜 넣어 글을 써야 된다는건 예전의 규격에 맞춰 시 쓰던 사람들이랑 비견되더라구요. 답변도 140자 맞추는 걸 보면 옛날에 답시 쓰는 것도 떠오르고. 짧은 시를 옛날 사람들이 그렇게 다작했던걸 생각하면 트윗을 잔뜩 쓰는 사람들이 떠오르고. 교술도 문학의 일종이라고 받아들인다면 트위터하는 사람들은 전부 교술시인이 아닌가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