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이지만, 급 우울해졌어요.

뭐 좀 먹어볼까 하고 해 놓은 불고기 주물럭을 데우려고 봤는데 벌써 곰팡이가 폈네요. 싹싹 음식물쓰레기통에 담아서 밖에 내놓았는데 왜 이렇게 우울한지. 후라이팬 째로 냉장고에 넣어놓지 않았던 제 실책이지만 어떻게 하루 만에 이럴 수 있죠. 제가 사는 곳이 습도도 높고 부패지수가 놀랄 정도로 높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참 상콤하네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별로 귀찮거나 하지 않지만, 음식이었던게 음식물 쓰레기가 되도록 방치했다는 것이 가장 우울해요. 입이 짧아서 의식적으로 부지런히 먹지 않는 한 까딱하면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어버리거든요. 농담 안하고 잊어먹었던 먹을 것을 끔찍한 상태로 발견했을 때가, 우울함으로 패대기 치는 다른 경험들과는 격이 다르네요. 평가가 안 좋게 나왔다거나, 인간 관계에 있어 문제가 생겼다거나 하는 것들은 익숙해지기도 하는데, 이건 발견하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나락의 높이가 더 커져요. '또야.'란 맘소리가 머리 속에서 울려퍼져요. 으, 어쩌죠. 눈 앞에서 메인 메뉴가 사라져버려서 밥도 잔반찬들이랑 같이 먹어야 하네요.

    • 여름엔 곰팡이 안 펴도 그대로 두면 위험해요ㅠ 여름에만 안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 푸른나무_ 깜빡, 하는 순간 불고기는 이미 저승의 문턱을 밟은거네요. 여름잠을 자는 유전자가 시급합니다.
    • 양배추찜을 해놓고 깜빡했는데 하루만에 악취가.. 안그래도 요즘 입맛 없어 힘든데 더욱 식욕과 의욕을 잃었지요 ㅠㅠ 고기라면 더욱 아깝네요
    • 익명이라지요_ 양배추찜도 여름에는 못 배겨나는거군요. 제가 다른 정서에 대해서는 '나만 그런가?'하는 의문도 품지 않는데 이에 있어서 다른 분들도 우울하다니 알 수 없이 위로가 되요ㅠㅠ 버리는데 양념 냄새는 그대로 맛있게 나서 위에서는 '버리지마! 먹을 수 있어!'하는데 머리는 척척 버리고 해서 지금 아까워서 바닥을 구르고 있어요..ㅠ 가끔 음식들이 "나 썩어가! 나 지금 위험하다고!"하고 소리쳐줬으면 하지만 소리쳐도 먹히는건 마찬가지니 그럴리도 없겠지만 이상한 생각만 막 나네요.
    • 저도 엄마가 해주신 밑반찬들, 청국장에 곱게 곰팡이꽃이 핀 거 보고는 너무 우울했어요. 나란 인간에 대한 혐오와 엄마와 신성한 음식, 환경에 대한 미안함. 꼬박꼬박 해치우려 하는데 여름은 정말 쉽지 않네요.
    • 가을잠_ 망가진 음식을 발견했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속죄와 참회(?) 뿐이라서 더 우울한지도 모르겠어요. 일체의 핑계가 불가능한 (온전히 혼자서만 감당해야할) 고발을 당한 기분이죠. 빨리 잊고 미래로 나아가야(?)겠어요. 아, 핑계라고 하니 불고기 앞에서 변명이라고 했으면 좀 기분이 풀렸을지도 모르겠네요. "아, 나도 먹고 싶었어! 어제도 그제도 그렇게 맛있게 먹었잖아! 근데 자기 전에 잠깐 너에 대해 잊었을 뿐이라고, 먹고 싶지 않았거나 곰팡이 피게 놔두고 싶었던게 아냐!"라고. 그럼 불고기는 "나에 대한 관심이 그것 뿐이었던 것 아냐? 잊어버릴만큼 관심도 없었으면서."라고 차갑게 대답하겠지만. / 오버했더니 (창피한만큼) 우울이 좀 풀리네요. 저녁이나 준비해봐야겠습니다.
    • 자취할 때 자주 경험했던 일이군요. 개인적으로 자취 시절엔 마른 김이 최고였어요. 별로 상하지도 않고, 저렴하고 간편하고 설겆이도 필요없고... 정말 마른 김이 최고였죠. 하하. 상한 음식은 어쩔 수 없죠. 활용 가능한 건 활용하고 나머진 버리는 수 밖에...
    • ANN'S 440_ 잔반찬 중에 김도 있지만 김만 먹고 살수는 없잖아요ㅠㅠ. 어쩔 수 없고, 버려야한다는건 아는데 우울함을 막기 힘들어요. 언제쯤 냉철하게 휙 버리고 '다음에 잘하면 되지'하고 쿨하게 새로 만들 수 있으려나요.
      • 저는 김만 먹고 살았어요. 물론 제가 그 땐 정말 독하게 살았죠.ㅎ
    • ANN'S 440_ 김만 먹고 사셨다니, 제가 졌어요. 패배 인정. 확실히 그렇게 하면 이런 문제로 우울에 빠지진 않겠네요. 확실한 해답.
    • 제친구는 무를 사와서 냉장고에 안넣고 하루뒤에 보니 바닥이 흥건하게 젖을만큼 물러터져 있었다더군요. 믿을수가 없었죠.
    • 103호_ 여름에 야채나 채소 등의 찬거리와 과일 등의 간식 거리를 관리하다보면, 샤머니즘을 어떻게 믿었는지 납득이 되요. 보이지 않는 사악한 힘을 확실히 느낄 수 있거든요. (...)
    • 비슷한 경험 이랄까. 완전 다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는데, 얼마 전에, 오렌지를 한바구니 샀는데, 하나 먹어보니 너무 맛이 없더군요. 웬만하면 맛있게 먹는 입맛이고, 오렌지는 제법 좋아하는 축에 드는 과일이라 오래 두고 먹은적이 없는데 이번엔 심하더라구요. 여튼 꺼내서 냉장고 위에 늘어 놓고 있다가. 퍼렇게 곰팡이가 피거나. 시커멓게 썩어가는 놈을 발견하면 하나씩 버리면서, 제 죄를 돌이키고 있답니다. 아직 하나 남았습니다.
    • StAy_ 당도 낮으면 맛있게 먹기 힘들죠. 관대한 입맛이라고 하셨는데 먹기 싫을 정도면 얼마나 맛이 없는 것일지.
    • 저는 자두가 시길래 좀 익혀 먹으면 날라나 놔뒀더니 맛이 갔어요.
      음식물 버리는 건 그 가격과 별개로 마음에 남는 데미지가 있죠 ㅎㅎ
    • 호레이쇼_ 누구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 생기면 요플레 뚜껑만 핥고 버린다지만, 저는 식사 매니저를 고용하는 사치를 부려보고 싶네요. '자두는 3시간 동안 실온 보관하여 이제 적당히 익었으니, 20분 내로 드셔야 합니다. 드시고픈 마음이 없으시다면 냉장보관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냉장고에 있는 생선전과 숙주나물 무침을 드셔야 됩니다. 앞으로 3끼면 숙주나물은 다 드시며 생선전은 이틀 내로 드시는게 가장 안전합니다.'
    • 좀 전에 모친이 노각, 그러니까 늙은 오이를 수술하면서 혼자 계속 노여워하시더군요. "사다 논지 얼마나 됐다꼬 벌써 물러터져서는 사람을 애먹이고 말이지.. 맨날 짱이찌에 멸치 쪼가리만 먹구 살으라는건지원.. 아깝구로.. 에흐.." 뭐 그래도 워낙 큰 노각이어서 결국 남은 살들로 맛나게 반찬해서 먹긴 했습니다. 새밥에 참기름, 깨, 노각 이케해서 쓱싹쓱싹 비벼서요. 우야둔둥 마음 추스리시고 맛난 저녁 드셔요~
    • 곰고양이_ 대수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어졌나보군요. 여름 더위에 몸은 축나지, 신선한 걸 먹고는 싶은데 그날 그날 먹으려고 장보기엔 귀찮지 균형 맞추기가 애매하네요. 저도 대충 냉장고에 있는 오이짱아지와 깻잎무침이랑 해서 먹었습니다. 이제 물을 또 끌여야 하는데 방 더워지는 것도 더워지는거지만 습기 오르는 것 때문에 끓이기가 귀찮군요.
    • 그래도 날파리가 창궐하지 않은게 어디에요 ㅜ



      젊은시절 혼자 자취할 때 여름에 잠깐 바빠서 또는 게을러서 영양분이 있는 쓰레기 관리 조금만 못하면 날파리 창궐.... 날파리는 그래도 날아다니니까 날려 보내면 되는데 쓰레기 주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참깨같은 날파리 알 ㅜㅜㅜㅜㅜㅜㅜㅜ





      제가 미국바퀴벌레도 손으로 텁 잡아서 밖으로 내던지는 성격인데 날파리알 군집은 진짜 너무 혐오스러워요...
    • forestkwon_ ... 날파리 없는건 정말 다행입니다. forestkwon님께서 크나큰 깨달음을 주셨네요. 음식물쓰레기 같은 경우에는 오래 방치한다 싶으면 냉동고에 얼리는 전략을 쓰는지라 날파리 군집을 보진 못 했습니다. 상상만해도 끔찍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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