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으로 뇌를 활용하는 종목인 바둑에서는 결국 나이를 이기는 장사가 없습니다. 비교적 선수층이 얇았던 예전에야 나이가 40대~50대가 되어도 정상급이던 경우가 종종 있긴 했었지만, 요즘에는 한국이나 중국이나 10~20대 천하지요. 반면에 골프는 운동중에서도 꽤 오랜 기간동안 활동할 수 있는 종목인데다가 (몇년 전엔 환갑의 할아버지(Tom Watson)가 The Open 우승 코 앞까지 갔었죠) 청야니는 나이도 많은 편이 아니라서 (89년생), 세대교체라고 보는 것은 좀 무리이고, 아마 선수 본인의 멘탈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는데서 오는 스트레스와 부상의 여파 등으로 자신감을 잃어버린게 아니냐는 분석이 많죠.
바둑에서 이국수의 경우에는 정말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총기가 예전만큼 못한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고, 바둑이 두뇌스포츠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체력싸움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젊을때에 비해서 체력이 약해진 것이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가지 다른 복합적이 이유들이 있겠지만요....
그러나 그것 보다는 이국수가 전성기때 너무 많은 바둑을 두었고, 너무 많은 기보를 남겨서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전성기때 이국수는 한중일 모든 바둑기사들의 타겟이자 지향점이자 꼭지점이었습니다.
원뿔의 맨위 꼭지점에 이국수가 위치하고 다른 기사들이 원형으로 대형을 이루어서 순서대로 도전하는 형국이었죠. 당시 그러한 이국수가 세계 최정상급 기사들과의 대국에서 승률을 보면 입이 벌어져서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이죠.
게다가 모든 기사들이 이국수의 바둑을 깨뜨리기 위해서, 밤낮으로 이국수의 기보를 마르고 닳도록 연구했었죠.
한명의 바둑기사, 즉 이창호국수를 깨뜨리기 위해서 전세계 바둑기사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그의 기보와 마주하면서 기울였는지 안다면, 이국수의 현재 부진은 어느정도 이해가 가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19*19 의 바둑판에서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기력을, 세계 최정상의 고수 수백 또는 수천명이 15 년이 넘는 시간동안, 넘어서기 위해서 정말 날밤을 부지기수로....
이국수가 그래서 계속해서 변화를 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정상급을 유지할 수 있는 건 그나마 이국수정도가 되니 가능하겠지요.
그리고 만일, 이국수가 지금까지도 천하무적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게 더 문제일겁니다. 그러면 아마도 가영님께서 올리신 글의 내용은 '이창호말고 우리나라에는 다른 바둑기사들이 없습니까?' 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장강에 앞물결은 자연스럽게 뒷물결에 밀려나는 것이 가장 이치에 맞는 것이죠. 이국수도 자연스럽게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