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주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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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도 어두우리라. 사람이 미워졌고 더구나 사람을 미워하는 방법을 배워 버린 내가 어두운 고향에서 또 어떠한 광태(狂態) 속에 휩쓸려 버릴는지, 나는 벌써부터 울고 싶었다. 그러나 울고 싶은 만큼의 반작용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장담할 수도 있긴 했다. 해내는 거다. 세상이 당연하다고 내미는 것을 나 역시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이도록. 평범한 것을 흡족하게 생각하며 받아들이도록. '여보게 딴 생각말고 착실히 공부해서 좋은 데 취직하여 착한 여자 얻어서 아들 딸 낳고...' '네, 저도 그럴 작정입니다'라고 대답하도록. '분수에 넘치도록 욕심이 많은 사람이 자살하는 법이야. 욕심을 줄이면 되지 않나?" '선생님, 참 그렇군요'라고 생각하도록. '팔십이 다 되어 가는 내가 끄덕 없이 사는데 귓바퀴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괴롭네 어쩌네 앓는 소리를 하다니...' '할아버지, 존경하겠습니다.'
- 김승옥 <환상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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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카톡을 깔았습니다. 맨날 답답하게 스마트폰으로 치다가 키보드로 편하게 칠 수 있겠는걸. 매우 좋은걸. 이란 마음으로 깔았습니다.
그런데 쓸 일이 없네요... 편한지 안 편한지 알 수가 없네요. 쓸일이 없는데 어떻게 편한지를 알아요..
하지만 한가지 좋은 점이 있습니다! 주말 황금 타임에 카톡이 옵니다. " 어? 이 시간에 누가 ? " 라고 확인해보면
"PC 카톡에 접속하셨습니다. " ... 예 PC 는 참 좋은 친구죠. 웃기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올때마다 설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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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무렵의 나이가 든 뒤로 기존의 만나왔던 친구들이 이제는 모두 재미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사실 같이 만나면 웃으며 농담도
던지고 낄낄대고 방갑다고 마중나가며 고민도 주고 받지만, 솔직히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그냥 허무한 마음에 편의점에서 맥주나 사요.
친한 무리의 친구들이 있는데, 이 놈들의 관심사는 주로 게임이고, 게임 안에서 승부욕에 미쳐 온갖 말을 주고 받는 모습을 보면 정이 떨어집니다.
뭐랄까요. 그들에게 게임 안에서의 승리는 마치 유일한 승리 인것처럼 보입니다 . 세상에서 자신을 잃을수록 점점 게임 안에서 미쳐가는 것 같아요.
결국 구색을 맞추어 같이 있어도 그들은 저에게 이제 더이상 흥미도, 든든한 의지도, 깨우침을 주지도 않아요. 솔직히 전혀 즐겁지 않아요.
그냥 언젠가는 보지 않을 사이라는 것을 속으로 예감할 뿐이죠. 그 예감은 굉장히 서늘한 다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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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혼자 있는 주말을 보낸지 오래되었어요. 집밖으로 나서면, 유행가 대로변에 바쁘게 오가는 연인들 서로 마주보며 웃고, 몇몇 젊은 친구들 무리가 술에 취한 걸음으로
거리를 활보하는데, 저는 구석진 자리에서 허름한 옷차림으로 담배 비닐을 벗기고 있죠. 마치 누군가와 있어야할 것 만 같은데, 누군가와 있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아무도 필요없는데, 그게 낯설어진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아요. 사람을 만나면 즐겁거나 사람을 만나서 좋았거나, 사람을 통해서 행복해진다는 감정 자체에 대한 회의에
오랫동안 시달려왔어요. 그래서 요즘은 침대에 누우면 계속 잘못살았다는 생각이 들기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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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공상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이 / 오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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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솔직히 가끔은 아니 매번 음악이 가족만큼, 아니 가족보다 소중하다고 느껴요. 허세처럼 들리는 느끼한 말이지만
음악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마음을 잃을 때마다, 정확하게 앉을 자리를 가르쳐주는 느낌이 들어요. 사람들에게 듣고 싶었던 말들, 사람들에게 기대했던 것들
가족에게 친구에게 동료에게 기대했던 어떤 감정과 정서를 지금은 유일하게 음악만이 건네준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아마 지난 2년 만큼 음악만 열심히 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 그러니까 혼자 있는 주말이 제법 오래 이어지고, 하루중에 한마디도 한 적이 없는 날이 계속되면서, 이제는 음악 마저 지겨워질 때가 있어요.
그냥 모든 게 지겨워진거죠. 사람을 만나고 싶지도 음악을 듣고 싶지도 않고 보는 영화마다 결론이 훤히 보여서 그냥 꺼버리고 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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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수기는 여기서 끝나고 있는데 아마 그 눈이 내리는 벌판을 건너오긴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곧장 이 수기를 썼던 모양이다. 그러나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며칠 후 그는 자살해버렸다. 다시 한번 말하고 싶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 내야한다는 문제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더구나 그를 자살로 이끈 고뇌라는 게 그처럼 횡설수설하고 유치한 것이라면 아예 세상엔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리라. 그는 마지막에 가서 엉뚱하게도 죄와 벌에 관한 얘기를 잠깐 꺼내고 있지만 죄란 게 있다고 한들 또 어떠한가? 불가피하게 죄를 짓게 되면 짓는 것이다. 그러나 죄의 기준이란 게 없어진 지금, 죄의 기준을 비단 죄뿐만 아니라 모든 것의 기준을 일부러 높여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분명히 환상적인 기준을 만들어두고 거기에 자기를 맞추려고 애썼던 모양인데 참 바보 같은 놈이었다. 그가 고통하며 지낸 밤이 길었다면 내가 고통하며 지냈던 밤은 더욱 길었으리라. 산다는 것, 우선 살아 내야 한다는 것. 과연 그것이 미덕이라고까지는 얘기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야 출발하는 것이다. 죽음, 그 엄청난 허망 속으로 어떻게 하면 자기를 내던질 생각이 조금이라도 난단 말인가! 나의 건강이 회복되면 그때는 나도 죄의 기준이란 것을 좀 올려 볼 생각이지만 뭐 꼭 그럴 필요도 없으리라고 믿는다. 이 수기의 처음에 나오는 오영빈이라는 친구나 찾아보고 그가 아직 살아 있다면 태초의 인간임을 자부하면서 술이나 들고 싶다.
-김승옥 <환상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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