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ㅸ' 발음에 대해 배웠던 날

고등학교 몇학년인지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분명한 건 여름방학 보충수업 때였다는 거에요.

국어선생님 시간었어요. 여름은 원래 덥지만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세 대만 온풍을 뿜어내는 교실에 애들 60명이 모여서 각기 체온을 뿜어내서인지 정~말 더웠습니다. 지금도 그 눅눅하고 무겁고 뜨거운 공기가 기억나요. 수업이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이들이 하나 둘 졸기 시작하고, 한 이십분 쯤 지나니까 2/3는 책상에 머리를 대고 있더라구요. 선생님도 힘들어 보이고. 저도 더는 못버티겠다 싶을 때, 뜬금없이 선생님께서 물으시길 'ㅸ' 요거 어떻게 발음하는지 아냐고. 그나마 정신줄을 놓지 않았던, 하지만 어떤 발음인지는 몰랐던 학생들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몰라요'라고 대답을 했고, 선생님께서는 씩 웃으시며 너네 맨날 발음하는데 모르겠냐고 그러시더니만, 지금 날씨 어떠냐고 다시 물으시더군요. 아이들이 '더버요, 더버 죽겠어요.'라고 대답하자 선생님께서 그거라고, 너네 지금 'ㅸ'발음 한거라고 알려주시더군요. ㅂ 불규칙 용언에서의 경상도 지역 'ㅂ'발음은 약간 영어의 'v'발음과 비슷한 면이 있는데 그 발음을 잡아 표현한 것이 순경음 ㅂ, 즉 'ㅸ'라고 얘기해주셨어요. 시험에 나오거나 어디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 건 아니지만 그래서 이건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선생님께서 교탁 위 책을 덮으시더니 더는 더버서 수업 못하겠다고 남은 시간은 그냥 자자고 하시더군요. 해서 남은 30분 동안 학생들도 선생님도 모두 자버렸어요. 그리고 집에 돌아가니 TV에서 아스팔트 위에 날계란을 올려놓고 굽고 있더라구요. 정확한 기온은 기억 안나지만 대충 38도와 39도 사이였던 거 같아요.

좀 전에 뭘 급하게 사야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수퍼에 다녀왔는데 너무 덥네요. 그래서인지 저 일이 생각나서 써봅니다. 다들 더위 조심하시길.
    • 헐. 글 올리고 밖을 내다보니 어마어마한 돌풍이 불고 있네요. 날도 잔뜩 흐려졌고.
    • 뭔가 아련한 글이네요. 저도 이 글을 읽고 찜통교실에 드는 햇빛을 조금이라도 막아보겠다며 커튼을 치고 어둑어둑한 가운데 5교시 수업을 받았던 고등학교 윤리시간이 생각났어요. 깨어 있는 애들은 열 명도 안 되는 와중에, 나즉한 목소리로 계속 강의를 하시던 선생님이 잠시 교실을 둘러 보시곤 칠판 조명을 위해 약간 열어둔 커튼 밖을 바라보며 다시 말씀을 이어가셨는데, 그 옆얼굴이 아주 외로워 보였죠. 눈이 햇빛을 받아 잠깐 반짝였던 것도 같고.
    • 1994년 여름이었을까요
    • 늘보만보 / 댓글 읽으면서 그 교실에 앉아서 윤리선생님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Mindy/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94년 보다는 후의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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