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기, 어휴!

감기 보고 왔습니다. 그래봐야 도토리 키재기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작년 개봉했던 연가시보단 조금 더 나았습니다.

구성보단 기술적인 면에서요. 연가시는 칙칙하고 투박했지만 감기는 꽤 규모있게 재난영화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른 헐리우드풍의 아류작이며

CG도 잘 썼고 화면 때깔이 연가시보단 세련됐습니다. 분당이라는 지역으로만 국한하여 특징적으로 잡아낸것도 인상적이고요.

분당 사람들은 많이 보겠더군요.

 

연기도 좋았습니다. 수애와 장혁, 그리고 야왕에서도 수애 딸로 나온 아역 배우, 그 외 마동석,차인표,이희준,박효주 등등 조연진들도

다들 제 몫을 다 해주었습니다. 전형적인 재난영화 공식을 따르고 있고 컨테이젼,월드워Z같은 최신 재난영화 스타일과 겹치는 면도 많은 아류작이지만

그래도 웰메이드로 만들 가능성이 구석구석 보이는 영화였죠. 그러나 웰메이드가 될 수도 있었던 가능성을 모조리 피해가거나 놓치고

참 딱한 영화로 만들었네요.

 

일단 재미는 있었어요. 계속해서 사건이 터지고 인물들이 발버둥치니까 흡인력은 있습니다. 그러나 엄청나게 산만하고 인물들의 등퇴장은

지나친 우연의 남발이라 갸우뚱할 뿐입니다. 다들 예지력과 초능력이라도 있는것같아요. 아무리 영화라지만 최소한의 설득력은 있어야 하는데

위급하고 혼잡한 상황에서도 마술이라도 부린것처럼 자신이 찾고 싶은 사람을 찾아내는 주인공들의 능력은 경지에 이른것같습니다.

최소한의 논리조차 없어요. 각본이 중구난방.

 

촬영을 작년 5월부터 9월까지 했고 후반작업을 1년 가까이 했죠. 원래는 지난 6월쯤에 개봉할 예정이었다가 후반작업을 이유로 미뤄졌는데

영화 보면 미뤄질만 합니다. 두달 동안 후반작업을 더 했는데도 이 모양이면 그 전엔 대체 어느 지경이었을까요? 영화를 보고 있으면

과연 대본이라는게 있었나 싶을 정도에요. 그냥 현장에서 즉홍적으로 쪽대본 써서 되는대로 찍고 아무렇게나 이어붙인것처럼 내용은 얼기설기라도 이어지는데

그 안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은 마구잡이로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마무리도 없습니다. (특히 이희준 지못미)

 

무엇보다 이 영화가 불쾌한것은 원인불명의 감기 바이러스의 원인을 밀입국 동남아인으로 시작한다는것이고 후진국 사람들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으며

아무렇지 않게 얕잡아 본다는것입니다. 도입부의 불법 밀입국 동남아 사람의 묘사를 보고 있으면 정말 토할것같아요.  

약소국가 사람들에 대한 오만하고 편협한 태도가 너무 뻔뻔합니다. 정체불명의 독감 바이러스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았다 하더라도 현재 만들어진 바이러스 재난 영화를 전개시키는데

문제가 없는데 굳이 원인을 동남아 사람들, 그것도 인권이 유린당한채 밀입국하여 타국에서 개고생하며 무시당하고 천대 받는 설정으로 꼭 그렸어야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 영화는 모든게 남탓이에요. 올바르고 인간적인 대통령상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다른 나라를 이용하고 있죠. 자기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온갖 불법적인 일을 거침없이 해나가는 수애의

캐릭터도 지나치게 극단적이어서 공감하기가 힘듭니다. 공무원으로서의 책임감과 성실함, 착실함을 거듭 보여주는 장혁 캐릭터도 스테레오 타입의 영웅 캐릭터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요.

영화가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을 다루었는데 장혁의 수염 길이는 꼼꼼하게 신경썼지만 배우들의 외모는 끝까지 광고같이 담아내더군요.

최악의 상황에서도 미백한 치아는 반짝반짝 윤이 아는 남녀주인공의 이빨이 끝까지 어색했습니다.

그리고 무척이나 피로를 부르는 영화입니다. 컨테이젼이나 월드 워, 심지어 연가시를 볼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 영화는 정치인들, 의료진들, 군사 인원들이 시종일간 대립하며 짜증을 내고 그 사이사이 시민들의 발악과 고함이 2시간을 빼곡히 채우고 있어서 보고 나면 힘이 다 빠지죠.

 

그래도 스릴도 있었고 어쨌든 이런 류의 정체불명의 독감 바이러스로 대규모 인원이 몰살당하는 재난 영화가 국내에선 없었으니 뒷북치는 아류작 보는 재미는 있습니다.

관객은 꽤 들것같아요. 새삼 월드 워가 얼마나 잘 만들어진 영화인지 느껴지더군요.   

    • 저도 봤는데 아....ㅜ.ㅜ

      그냥 이런 시나리오를 통과시킨 사람이랑 쓴 사람이 대체 뭔 생각을 했는지 좀 묻고 싶었습니다.
      장혁 얼굴 잘생긴 낙은 있었는데 아아...ㅠ.ㅠ
    • 이미 '해운대' 부터 그랬지만 이런 류, 이런 분위기의 한국 재난영화는 앞으로도 계속 패스할 생각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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