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심리상담을 마치고 선릉을 방문했습니다. 선릉의 좁다란 오솔길과 탁 트인 능, 숲 냄새를 좋아합니다.
상담 중에 하고 싶었던 말들은 늘 뒤늦게 생각이 납니다. 다음 회기에라도 생각이 나면 좋겠다 싶지만 늘 그랬듯 한 번 말하지 못한 건 그대로 잊혀지겠죠.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금 제 머리 속에는 비난 자판기가 있어서 저의 일거수 일투족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목소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 목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만 정말로 화가 나는 건 내가 그들에게 나를 비판하고 판단할 권리를 줬다는 것, 내가 허용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나를 상처입힐 수 없다는 것, 그걸 알면서도 깊이 상처받고마는 나약한 제 모습입니다.
마음 속에서 비명소리가 그치지 않아요. 낭패감이면서 절망감이면서 외로움인 신음 소리가 끊이지 않아요.
희망적인 순간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절망은 더 끈질기고 마음은 점점 만신창이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하는 거에요.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 고통과 씨름해야 하는지.
사실은 신속하고 간단하게 이 지겨운 것을 끝낼 방법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실행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죽는 건 무서운 일이죠. 네 본능적으로 무서워요. 그러나 어떤 행동의 동기가 단지 두려움이라면 그건 올바른 동기가 아닐 거에요. 그러니까 저도 죽기 무서워 산다는 이유 말고 좀 더 제대로 된 삶의 동기를 가지고 싶어요.
이 지긋지긋한 비명소리를 들어가면서 노력하고 끝내 이겨야하는 진짜 이유 말이죠.
상담 선생님이 예전에 그러더군요. 사람이 아무 이유도 없이 막무가내로 노력할 수는 없다고.
예전에 아주 행복하던 시절에 누가 물었어요. 역시 태어나길 잘 하지 않았냐고. 저는 신이 행복 가득한 인생과 태어나지 않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기꺼이 후자를 선택하겠다고 했어요.
행복. 사랑. 우정. 성취. 그런 게 뭔지는 저도 알아요. 저 자신 멀쩡한 사회인이고요. 죽음과 절망적인 생존 사이에 있는 차선택들이죠.
그래서 저도 늘 의욕적으로 그런 것들을 좇으며 살아왔어요. 그러나 최선을 지척에 두고 차선에 진심으로 전력투구하기란 참 힘든 일이에요.
오늘 당장 극단적인 선택을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딱 한 번 지하철역에 그럴 생각으로 뛰어갔을 때 느꼈던 해방감, 마침내 끝이라는 그 안도감이 자꾸 떠올라요. 막상 역사에 도착했을 때는 간발의 차이로 다른 사람이 먼저 뛰어내리는 바람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요.
죽고 싶다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살아야하는 자기만의 이유를 한 번도 납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에 점점 한계를 느껴요.
이 글을 읽고 잊고 있었던 상담 일정에 대한 문의글을 상담센터에 남기고 왔습니다. 어쨌든 자꾸 자신을 돌아보고 나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건 좋은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어떤 말을 해도 아침님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그 문제들이 해소되지 않겠지만 한계를 극복을 하든, 조금씩 견뎌지든 지금 살고 있는게 중요한것 같아요. 물론, 납득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슬픔은 너무 동감하는지라 뭐라 드릴말씀이 없네요 우리 같이 힘내요. 내일 또 똑같은 고민을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