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키드의 마지막 밤

독립을 하게되서 몇시간 후면 이사를 하는데 마음이 너무 착찹하네요.

동인천키드로 살아온 세월에서 분리를 하게되다니 믿어지지않아요.
너무 좋아하던 동네인지라 자유공원 가까이 집까지 언덕을 오르락했지만 힘든지 몰랐고 사랑하는 장소인 홍예문 너머의 이쁜 우리집을 너무 좋아했던지라 서글프고 눈물날 거 같고 그러네요.

빌라라서 공과금도 많이 나오고 이래저래 손도 많이 갔지만 태생이 아날로그인간이라 참 사랑한 동네고 집인데 복잡한 사정으로 분리겸 처분을 하게되서 여러 감정이 복받치네요.

이제 동인천 급행을 타고 집에 올 일도 없고 퇴근길에 대한서림에 들러 책을 뒤적이는 일도, 대동학생백화점에서 종이를 사는 일도, 옛심지터를 지나면 추억을 생각하는 일도 없겠네요.

삼치골목, 신포닭강정, 청실홍실모밀, 원보군만두, 중화루 짬뽕, 신포동사무소근처 양꼬치집, 카페파랑돌, 역사박물관정원, 팟알 등등 사랑하는 곳들을 두고 떠나기가 힘드네요.

물론 이제 회사까지 걸어서 십오분이고 평생 처음 싱글 생활을 만끽하겠지만 오늘이 마지막이라 그런지 지겨워서 미치던 아빠의 담배 냄새까지도 애틋합니다.

동인천 키드로 살아온 세월 행복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기회가 또 있을까요.
전 동인천을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


늦은 밤 동인천 역 지하도를 걸으실 때 생각해 주세요.
막차시간 넘어서 지하도 개방하고 동인천 지하상가 계단이 낡을 때 마다 건의해서 보수하던게 바로 저랍니다. ㅎㅎㅎ
    • 예전에 처음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자유공원을 알려줘서 갔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약간 바랜듯한 분위기의 경사진 길을 계속해서 올라갔을 때, 갑자기 탁 트인 바다가 나와서 탄성을 질렀었거든요.그 뒤로 저도 사랑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닭강정도 차이나타운도 모두 이 친구와 처음 갔었는데 이 글 읽고 오랜만에 생각이 났어요. 감사합니다 :D
      • 심지어 우리집거실에서 바다가 보이는데 항상 바다를 망각하고 살았네요.

        도심인데 바다가 보이는 집.

        생각해보니 꿈같던 시간이었어요.
    • '한 번 떠나면 다시는 같은 곳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라고 **년째 이사 중인 저는 오래 전 일기에 썼습니다.
      그 기분 그 느낌 그 눈물과 정서 정말 알 것 같다고 감히 말할게요. 태어난 고향이든 유년기 이후 수십 년 살던 동네든 2년 전세 다해서 옆 집으로 옮기든, 이사를 앞둔 그 기분은 왜 맨날 같을까요. 객창감도 뭣도 아닌 채로 다시 새롭게 맛보는 도시생활자의 공간이동에 따른 감성은 늘 이상하게 애틋하고 낯설지요. 어디든 또 몸 담고 정들이면 거기가 내 집이다, 라고 쉽게 말은 못하겠지만, 잘 떠나시고 이사 잘 하시고 어딘가에 또 잘 안착하시길 바랄게요.
      • 이사가는 동네도 운좋게도 제여건에서 과분하다싶게 좋은 장소에요.

        앞으로 그곳을 사랑하도록 노력해야죠.

        그래도 동인천이 제 끝사랑같은 기분은 뭘까요.
    • 동인천은 아니고 제물포 사는데 그래도 왠지 반가워 로그인 했어요.^^ 저도 동인천 좋아해요! 동인천으로 학교를 다녔어요. 대한서림과 신포닭강정집에서 알바도 했었죠. 역사박물관정원 등 너무 반가운 이름들이네요. 저도 독립하려 하는데 그냥 이곳이 좋아서 여기서 알아볼 것 같아요. 회사랑 한시간 반 거리인데도요 ㅎㅎ이사 잘 가시고, 좋은곳에서 빨리 정드시기 바랄게요~
      • ㅎㅎ 같은 장소를 머물었군요.

        저도 서울에서도 한시간넘게 통근을해도 우리동네가 역시좋다라 생각했죠.

        구도심의 매력이 있는곳이죠.

        집건너는 일본집, 길건너는 중국집. 우리집은 한국집
    • 옛심지터 라는건 뮤직비디오 틀어주던 그 곳을 말씀하시는걸까요? 전 아주 짧게 인천에 살았었는데 아련히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조금이나마 글쓰신분의 기분이 느껴집니다.앞으로 좋은일이 더 많이 생기실꺼에요.
      • 예. 전설의 음악감상실 심지입니다.

        홍대가 인디씬에서 소프트한 타입이라면 인천은 전통적으로 메탈이 유명한, 여자판테라가 나오던 곳이죠.

        덕담해주셔서 감사해요.
        • 훗 그 심지가 맞군요. 저도 교복입고 그 컴컴한곳에서 메탈을 들으며 집에갈 걱정하던 시절이 있었군요. 학교는 서구에 있고 집은 부평구였는데 학교 끝나고 동인천까지 가는것도 여행같았어요^^
      • 아 심지. 20여년전; 대학다닐 때 동인천. 그 먼곳을 찾아가 계단을 올라 그 어둑한 데 널부러져 죙일 죽치곤 하던 생각이 나네요. 그때가 천국이었는데..
        • 오층에서 (사층이었나ㅡㅡ)팝송 신청하면 브이제이가 시크하게 '팝송은 사층 내려가서 신청하세요'라며 락부심에 쩔던 심지.

          지금 생각하면 진짜 지저분했는데 심지는 왠지 더러워야 제맛
    • 동인천이라니! 너무 반가워서 로그인했네요!!!

      지금도 동인천에서 출퇴근하고 있지만 점점 쇠락해가는 모습이 늘 안타까워요.
      동인천역사 쇼핑몰은 언제 완공되는 건지 벌써 몇년째 공사중이고 중고등학교들도 하나둘씩 떠나가고 있죠.
      특히 빵집인지 서점인지 분간이 안되는 대한서림은 아직도 적응이 안되네요.
      이런 모습들이 보기 싫어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아 마르타님이 부럽기도 하네요.

      근데 12시 넘으면 지하도가 폐쇄돼서 무단횡단하곤 했는데-.-;; 마르타님 덕분에 개선되었던거군요!
      덕분에 차 끊겨도 지금은 여유있게 길을 건널 수 있게 되었네요. 정말 감사드려요!!!
      부디 새로 이사간 곳에서도 빨리 자리잡으시고 좋은 추억 쌓으시길 바랄게요^^
      • 대한서림이 변하고 몇년 전에 시립도서관이 떠날 때도 느꼈지만 대체왜 아름다운 것들을 파괴하는지..



        그나저나 지하도 이용에 편리해지셨다니 기뻐요.

        저도 같은 이유로 불편해서 예전 게시판에 동인천 지하도 개방 프로젝트 게시물을 올린적이 있었죠.ㅋㅋ
    • 그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 괜시리 이 글이 굉장히 좋습니다.
      장소에 많이 애착을 두시는 것 같고, 저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서 더 좋은 것 같아요.
      동인천은 뭔가 영화가 떠난 도시같은 느낌이었는데, 토박이의 손 때가 여기저기 뭍어있는 그런 오래된 가옥같은 느낌이기도 하군요. 누군가에게는.
      둥지는 언젠가 떠나가야 할 곳 아니겠습니까? 그리고는 영원히 그리워하라고. 새 장소에 적응하는걸 넘어 다시 마르타님만의 좋은 곳으로 만들어 가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곳을 따뜻하게 만들고, 그 곳에 추억을 켜켜이 쌓는 이는 따로 있더라구요.
    • 좋은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제 추억이 아니면서도 아련하게 느껴지는 지명들이 붙잡네요. 제 아버지가 자유공원 밑의 제물포고를 나오셨고 홍예문 부근에 사셨어서 아직도 중구 내동이 본적지입니다. 아버지의 추억어린 이야기만 듣다가 얼마전에 부근에 간김에 처음으로 신포시장-자유공원-제물포고-차이나타운-진흥각 대충 이런식으로 걸었었습니다. 처음 갔는데도 마음이 가는게 있었어요. 아버지 어릴때도 자유공원의 어르신들은 그 자리에서 바둑과 장기를 두셨다는데 어느새 저희 아버지가 그 연세가 되셨죠.

      추억이 깃든 동네를 떠나서 새롭게 출발하시는 님의 앞길에 행운을 빕니다~! ^^
    • 머문다는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애정넘치는 글을 읽으니 마음이 훈훈해요
    • 두어시간만에 후다닥 짐내리고 제 첫 보금자리로 향합니다.

      내내 계속 살아온 할머니와의 이별이 가장 힘드네요.

      공감해주신 글들 모두 감사드려요.

      저 잘살아보려고요.
    • 새동네와도 정들이고 잘 사시길 바랍니다. 지내다 옛동네에 갈 일도 생기겠지요^^ 글 읽어보니 동인천에 가보고 싶어졌어요.
    • 심지에서 잠시 알바한 적 있어요 ㅎ 천국같은 곳이었는데(지저분해도).
      익숙한 지명이 나와서 클릭했어요. 동인천 한때 참 번화가였죠..인천의 구도심 문제에 요즘 관심이 생겨서 더 씁쓸해요
    • 아아, 동인천.
      참 달고도 쓴 이름입니다..
      오랜만에 문득, 덕분에 동인천 거리들을 떠올려보네요.
      자유공원과 홍예문과 파랑돌까페가 있는 한적한 길들, 예쁜 주택들이 늘어서있는 언덕에서 보이던 인천바다,
      지하상가와 인형극장, 애관극장과 KFC가 있던 골목들
      신포시장에 늘어섰던 옷가게들과 작은 커피숍들, 그곳에서 먹던 2500원짜리 체리에이드..
      동인천역 사거리에 있던 유명한 사진관에서 명함사진을 찍느라 줄을 서서 기다리던 기억..
      친한 언니가 입시원서를 대한서림에서 사던 그 겨울,
      양키시장을 가기 위해 신발가게 주인들의 호객행위를 뿌리치던 그 길도
      다 아련하네요. ^^
      저는 지금도 가끔 친구들과 동인천에 놀러갑니다.
      그곳은 단순히 쇠락한 번화가가 아니죠. 저희에겐.
      골목골목을 걸을때면 꼭 어디선가 십대의 내가 뛰쳐나올것만 같은 동네예요.
      부디 오래오래 그 모습 간직하길 바라는 유일한 동네입니다.
      • 유독 인천사람들은 동인천에 대한 향수가 지독해요.
        이유가 뭘까..해보지만 그닥 알맞은 해답을 찾진 못했어요.
        단순히 유년기의 추억들이 있는 곳, 이라고 단정하기엔
        동인천 동네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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