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라는 말
SBS 학교의 눈물을 뒤늦게 봤습니다.
왕따라는 말을 처음 들은게 한 15년 전 정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 말 자체가 처음부터 아이들이 따돌림 당하는 피해자를 빈정대는 용도로 만들어서 사용한 말이거든요.
"재 왕따야" 라는 식으로 말이죠.
근데 이 말이 학교폭력 문제가 대두되고 나서부터 서서히 방송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용되더니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정식용어가 된 것 같군요.
방송에서도 학교 선생님들도 계속 왕따 왕따 합니다.
가해자들에 대해서 특별히 지칭하는 말은 없으면서 피해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조롱조의 말이 학교폭력을 나타내는 용어로 고착화되는 거죠.
'왕 따돌림'
문제의 심각성을 완화시키는 다분히 장난스러운 조어죠.
그리고 이 말을 따돌림의 주체인 가해자에게 붙이는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 붙힙니다.
그리고 학교의 눈물에서도 왕따 문제에 대해서 아이들끼리 토론을 하는데
'왕따 당하는 아이들은 머리가 달리거나 남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한다.'
'가해자들이 나쁜 건 아니잖아. 걔네들(피해자들)이 성격을 고치면 되잖아.'
라고 하면서 가해자쪽의 문제보다는 피해자쪽의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언어라는 건 참 묘합니다. 현실을 반영해서 언어가 만들어지고, 그 언어가 또 생각을 지배합니다.
일본에서는 왕따라는 말이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이지메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고,
이지메는 '괴롭힘'이라는 말이죠. 가해자의 행동을 말하는 거고, 피해자에게 '쟤 이지메야' 라고 하지는 않죠.
다른 나라는 그런 비슷한 말이 있는 지 잘 모르겠지만 보통 학교 폭력이라고 말하죠.
아마 피해자에 대해 아이들이 만들어낸 조롱조의 말은 어느 나라나 있을 거라 추측합니다.
하지만 그게 공식 용어로서 사용되어지지는 않는다는 거죠.
왕따라는 말은 처음부터 피해자를 지칭하면서 생겨났고, 그래서 당연히 왕따라는 말은 항상 먼저 피해자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왕따라는 말에서 '피해자의 문제점'과 '왕따가 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을 먼저 연상하게 됩니다.
최소한 학교선생님들이나 방송에서는 왕따라는 말을 학교폭력을 나타내는 용어로 공식적으로 안쓰는게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