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쓴다. 오늘 한 화장.
금방 세수를 하다 생각 난 건데,
나는 두개를 가진다는 생각을 못해 본 것 같다.
그건 마치 개화기 이전 조선 사람들의 사고 같은- 뭐 이런 말은 뻥이고,
그냥 내가 자라면서 얻게 된 여러가지 생활정보들이 내면화 되었다는 게 옳다.
얼굴이 이쁘면 창자가 못생겨야 한다. 머리가 좋으면 게을러야 한다. 이기적이면 친구가 없어야 한다.
이건 무척 견고해서 생리통 때문에 죽을 거 같으면 하느님 제 수명 일주일 아니 3일 아니 하루 들고 가시고 지금 이건 없애주세여.
그러다 게보린 먹고 (요즘 게보린 보다 좋은 약 많습니다.) 나아질라 치면 하느님 취소요. ㅇㅇ
조건 없이 꽁으로 주는 건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해서 하느님과 거래 할 때도 값진 걸 내놓는 것이다.
어릴 때 무거운 고민을 할때 가장 많이 써먹은 저울질은 가족 중 하나가 없어지면서도 이걸 얻고 싶은가? 이걸 하고 싶은가?
어쨌든 뭔갈 얻으려면 무엇인가 사라진다.
아 이거 엄청 당연했는데, 그렇지 않은게 너무 많다. 서글프다.
이런 생각을 여기 주절주절 쓰는 것은, 내일이면 또 까먹고 또 까먹고 또 까먹고
내가 이런 생각을 했는지 김영하가 이런 생각을 했는지 교수님이 이런 말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가끔 한글 파일에 저장된 메모를 읽었는데 열라 좋은 시인데 글쓴이가 없어서 네이버 검색해도 안나와 내가 쓴 것임을 알게 될 때와 비슷하다.
그러니 나는 기록해둬야 한다.
여튼 자꾸 옆으로 새는데 이 생각을 왜 했냐면은
다시 아까 세수하던 걸로 돌아가서-
나는 오늘 화장을 했다. 보습도 안하고 했다. 버거킹을 가기 위해서.
당연히 대충 쳐발라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엄청 예쁜 여대생들이 많이 지나가는데 나는 국물을 흘리고 걔네는 뽀송뽀송했다.
나도 꽤 좋은 화장품을 쓰는데, 왜 나는 인중에서 땀이 흐르고 쟤네는 뽀샤시 하지?
난 꿀광인줄 알았는데 휴대폰 어두운 화면으로 훑어봐도 개기름이다.
좌절해서 빨리 집으로 돌아와 화장을 대충 지웠다.
그리고 잡지책을 읽었다.
난 잡지가 너무 싫다. 정보가 공격적으로 많은데, 나는 한 자 한 자 '구두 자라 59800원' 이런거 다 읽는 사람이기 때문에 과도하게 지치게 된다. 난 모든 정보와 광고를 읽는다.
또 딴 길로 왔네. 여튼 잡지를 보다가, 인터넷 사이트에서 장쯔이 공리 이쁘다는 게시물도 보다가
급 코스메틱블로거스러운 부지런함이 발동되었다. 나는 공리를 좋아하기때무네.
그래서 비루하지만 있는 도화지가 내 얼굴 밖에 없어서 엉엉 그나마 흉내낼 수 있는 공리의 눈썹을 흉내냈다.
눈썹은 클렌징워터로만 지울수 있잖아여^_ㅜ
와 이미지를 존잘여신으로 상상하며 그렸더니 눈썹이 미친듯이 잘 그려진다.
귀찮아서 펜슬로 쓱싹쓱싹 그리고 있는데 손이 피카소의 손이 되고 내 얼굴은 공ㄹ ㅣ... 는 아니고 여튼 이번 하반기 눈썹 중 최고였다.
아직 공리가 되기엔 미진하다. 그래서 립스틱을 꺼냈다. 나는 공리니까 연예인 풍 모란지(찐오렌지)나 임패션드(꽃분홍) 발라도 돼!
바를때마다 나의 못생쁨에 절망하던 그 색깔을 꺼내서 발랐다. 와 쵸쵹하게 발린다. 미친... 이 시간에 어딜 나가라고 화장이 이렇게 잘 되는 것이냐,
그래서 나는 힘을 내어 들었다. 무엇을? 컨실러를.
이것은 잡지에서 연예인 화장법이라며 나왔던- '파데는 극 소량 컨실러로 잡티를 숨긴다.' (준비물 : 고현정 피부)
를 흉내내려는 마음도 조금 있었고 파운데이션까지 꺼내자니 지울 일이 귀찮아서...
여튼 쓱싹쓱싹 토닥토닥 와.......... 이번 하반기 피부화장 중 최고다22
그래서 나는 셰도우와 아이라이너와 치크와 기타 여러가지 온갖 스킬을 다 뽐냈다. 이게 내 한개다!!!
그러고 오분 후 오일로 얼굴을 문질문질. 이번 환상은 끝이 났습니다.
다시 한 개를 얻으려면 두 개를 가져와야 아니 한 개를 잃는다 로 돌아와서,
어쩐지 나는 눈썹을 그릴 때 부터 이 화장은 굉장할 것임을 알았던 것 같다. 자정에 시작한 화장은 분명 훌륭할 것이다. 보여줄 사람이 없으므로.
그런데 억울하다. 나는 이런 체념이 너무 훌륭하게 내면화되어있지 않은가?
어째서 나는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피곤해서 그만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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