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아마도 스포

이 긴 영화가 지루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2차세계대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으로서 이 영화를 마음 편하게 잔잔하구나!하면서 볼 수는 없더군요.

지진과 뒤이어 일어나는 화재에 대한 묘사가 매우 뛰어납니다. 집들이 춤추 듯 파도에 실려오듯 지진에 요동치던 장면과 모든 것을 삼킬 듯 공포스러운 소리를 내는 화염은 정말 감탄스럽더군요. 지진의 화재의 한가운데 있는건 저런 느낌일까?

지진과 화재, 바람 자연에 맞서는 지로의 담담함은 그의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은 그대로 내버려 둔 체 담담하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그 결과가 참혹한 학살이어도.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할테니까. 미야자키씨에게 실망하게 됩니다.

듀나님도 썼드시 연애질 장면들은 그다지 감흥이 없더군요. 특히, 그녀가 산을 내려오고 그들이 결혼하기로 결심하는 부분에선 답답하더군요. 하지만, 사랑이란 어차피 둘만의 문제이고, 둘만의 느낌이니까요. 그리고, 1900년대 초반의 결핵 생존율이 그렇게 높지 않았을테니 마지막을 함께하려는 그들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전쟁에 대해, 폭력에 대해, 파시스트들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독일에서 게슈타포에게 쫓기는 장면이나, 휴양지 호텔에서 만난 마의 산의 주인공, 일본 비밀 경찰에 잠시 쫓기는 주인공. 이런 것들은 대체 왜 넣었는지 그냥 변명처럼만 느껴집니다

영화를 보고 제로센에 대해 검색을 해봤습니다. 결론은 그렇게 대단한 전투기도 아니었다는 것이고, 일본 패망 이후에 구겨진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과대포장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됩니다. 일본인인 미야자키씨도 그런 미화와 과대포장에서 자유롭지 못했겠지요.

이 영화를 보다가 몰락의 융에를 떠올렸습니다. 듀나님의 히틀러의 비서 리뷰를 인용해 봅니다.

"결정적으로 이 기록은 뼈아픈 고백이고 변명이기도 합니다. 융에의 이야기는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국가와 체제가 저지르는 엄청난 광기와 죄악에 말려들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전쟁 후 별다른 죄의식 없이 살아가던 융에가 소피 숄의 기념비를 지나치다, 그 사람이 자기와 같은 나이 또래라는 걸 알고 젊음이 여기에 대한 변명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인식하는 마지막 장면은 섬뜩한 구석이 있어요. 우리라고 그 사람의 입장에 서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하야자키씨의 몇몇 영화를 좋아하지만, 존경하거나 거장이라 부를수는 없을 것 같네요.

한국 사람들이라면 욱일승천기가 펄럭이는 이 영화를 마음 편하게 볼 수는 없을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제게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라는 아름다운 시를 알게 해줬네요.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
거대한 大氣가 내 책을 폈다가 다시 접는다
가루 같은 물결이 바위에서 솟아난다!
날아 가거라, 정말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희열하는 물로 부숴라,
삼각 돛들이 모이를 쫓고 있는 이 지붕을.

Le vent se lève!. . .il faut tenter de vivre!
L'air immense ouvre et referme mon livre,
La vague en poudre ose jaillir des rocs!
Envolez-vous, pages tout éblouies!
Rompez, vagues! Rompez d'eaux réjouies
Ce toit tranquille où picoraient des focs!
    • 저는 미야자키 하야오 세대의,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생각하는 특정한 노인들을 위한 영화라고 봤습니다. 나오코의 설정이 거의 픽션이라고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로맨스는 사실 의미가 없죠. 일본이 파멸할 줄 뻔히 알면서 열심히 비행기를 만들고, 죽을 걸 알면서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잠시 살기 위해 요양소에서 뛰쳐나오는 가상의 인물들이요. 은퇴를 결정한 노장이 그리고 싶었을 이야기 같아요. 이 영화를 보면서 쿠로사와 아키라의 마지막 영화(?) '마다다요'가 계속 생각났어요. 늙은 교사가 가르친 제자들이 열어준 생일 잔치에서 매년 큰 잔으로 맥주를 원샷하며 "마다다요." 아직 괜찮다, 끝나지 않았다고 하죠. 하지만 맥주잔은 노스승의 건강을 고려해 매년 점점 작아집니다. 범작이고 흥행을 염두에 두지 않은 굉장히 개인적인 종지부 같은 느낌입니다.
    • 저는..... 동일본 지진 이후의 일본인들의 감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어요.
      지진을 마치 의지와 목소리를 가진 짐승처럼 묘사하고, 묵시록적인 절망의 상황들을 계속해서 보여주면서,
      동시에 (모든 인간이 그러하지만) 한쪽의 죽음이 너무나 분명한 사랑을 하는 주인공은
      모든 상황에 "최선을 다했지만" 끝은 슬프고 참혹하지요.

      조국은 파멸했고 돌아온 비행기는 없고 사랑했던 이는 죽었지요.
      그럼에도 백작과 사랑하던 이는 말합니다. "살아있어줘"

      동일본 지진 후 얼마나 많은 이가 죽었는지, 남아있는 자들의 슬픔이 어떤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추측도 할 수 없지요.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분노에 대해서는 짐작이 가지 않아요.
      어쩌면 이 할아버지는 그들에게 말하고 싶은게 아닐까요, 그래도 살아다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살아남아다오.

      저는 어쩐지 보면서 끊임없이 울고 있었어요. 물론 중간중간 피식피식 웃었던 장면들도 많았고
      아, 아름답구나, 했던 장면들도 많았지만, 덤덤히 하지만 단호하게 살아있어달라고 말하는
      이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덤덤하게만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 "지진을 마치 의지와 목소리를 가진 짐승처럼 묘사하고, " 이 표현이 맘에 드네요.



        물론 언급하신 그런 느낌이 있어요. 살아야 한다...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그 꿈에서 하늘 가득 날고 있는 제로센을 보며 백작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그것들이 진주만에 날아가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데, 그 장면을 맘 편히 볼 수는 없더라구요. 살아가도록 노력해야한다...이 말이 아무리 절절해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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