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밤에 저는 아주 예쁘고 예쁜 바위와 친구가 되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사는 꿈을 꿨답니다
요즘 좀 우울한 마음이 있었는데 그 꿈이 위로를 주었죠
그래서 한달 전에 강정에 다녀온 일을 일기로 썼는데 듀게에도 옮겨봅니다
감상적이고 우울한 글이니까 불편하신 분들은 패스하시고 편안한 일요일 오후 되시길 바랄게요
2.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바위 구럼비야 안녕
우리들은 너를 기억하기 위하여 걷고 쓰고 또 말하지
3.
제주에 있을 땐 행복했던 순간이 많았어요 십년만에 다시 외돌개 주변을 걸었던 저녁도 그중 하나였어요 황홀했지요
4.
강정마을을 찾은 건 외돌개를 다녀온 늦고 깊은 여름밤이었어요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타며 어렵게 도착했던 그곳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아주 고요한 곳이었어요
여기저기 걸려있는 투쟁의 흔적들이 없었다면 그렇게 평화로운 마을에서 그렇게 많은 생명의 약탈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짐작하기가 힘들었을 거예요
5.
인간의 역사를 투쟁의 역사라고 본다면 우리가 살면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싸우면서 살아가야 하나라는 고민을 늘 안고 살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우리는 삶에서 무엇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깟 바위 하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해야하나 싶기도 하지만 만일 그 바위가 생명과 평화에 대한 의미있는 상징이라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는 게 맞겠죠 여기저기 어지러운 이권들이 걸려있고 권력은 늘 개인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만 그와중에도 우리 개인들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고민해봐야 할 거예요
어디에도 정답은 없겠지만 늘 정답이 무얼까 고민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정답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6.
강정천 초입에서 강정포구까지 가는 길은 어두운 밤에 걸어서 가기에는 꽤 멀고 고요해 두려운 마음이 일었어요
게다가 강정포구까지 가는 길에는 해군기지 건설현장에서 끊임없이 굉음이 유입되었는데
고요하고 어두운 길 옆으로 밤새도록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굉음을 만들어내는 공사현장이 낯설고 거대한 괴물처럼 느껴져 무서웠죠
그런데 정작 도착한 강정포구에는 별 게 없었어요 아주아주 깊고 고요한 어둠과 밤바다의 파도소리만이 저를 맞았는데
강정에 다녀온지 한달이 지난 지금 그 어둡고 고요하기만 했던 강정포구에 다녀온 일을 언급하는 건
별 거 없이 그 깊고 고요하기만 했던 강정포구의 기억이 우울한 마음을 앓고 있는 저에게 어떤 위로를 주고 있기 때문이에요
7.
살면서 감사해야 할 일들이 많고 하고 싶었던 일 하고 싶은 일 모두 다 할 수 있는 지금이지만
어쩐지 아무 것도 하고 싶지않은 마음에 휘감겨 있는 나날이에요
스스로가 자초한 불행들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믿지만 과연 그게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늘 삶속에서 제가 한 선택들에 대해 책임을 지며 살아야겠죠
왜 이렇게 나약하고 어리석게 생겨먹은 걸까 자책하기도 하지만 이게 저라는 사람인 걸 어쩔 수가 없네요
가을은 더더더 깊어질 거고 이 계절이 가는 매순간이 눈물나게 안타까워요 더 잘살아보고 싶어요 어서
몸과 마음을 정리해 남아있는 계절은 좀 더 행복하게 보내고 싶네요
8.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일요일 오후지만 해야할 일들이 남았고
그 일들이 저에게 위로를 줄 거라 믿어요
요즘엔 옷과 구두를 사는 일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가을엔 예쁜 옷들만 입고 다닐 거예요 예쁜 옷들을 잘 입기 위해선 몸과 마음이 똑바로 서있어야겠죠
마음이 조금 좋아지면 강정에 다시 갈 거에요 그곳에 가서 제가 만났던 위로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확인해보고 싶거든요
금방 다시 좋아질 수 있겠죠 저에겐 좋은 친구들이 있으니까 지금의 이 마음은 그저 떠나간 계절 탓이니까
그래요 금방 다시 그곳으로 떠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이 계절이
아주 길고 긴 이야기였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