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 듀나님 SF연작단편집 '아직은 신이 아니야' 읽었습니다 [강추]
우연히 서점 갔다 발견하고 냉큼 사들여서 "아직은 신이 아니야"를 읽었습니다.
붙잡고, 단박에 다 읽어 버렸습니다. 감상은, 사십시오. 두권 사십시오.
정말 재밌었습니다. "면세구역", "태평양횡단특급"은 어마어마한 걸작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는데,
발간된 시기를 생각안하고 재미만 놓고 보면, 이번 신간 "아직은 신이 아니야"가 두 책을 넘어서면 넘어섰지 모자람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듀나 3대 걸작으로 꼽을만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최근에 나온 "제저벨",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보다도 훨씬 재밌었습니다.
유일한 단점은 듀나님께서 작가의 말 쪽에 쓰신 표현을 빌면, 이 책은 제목이 좀 "오글거린다"는 정도.
보통 요즘 SF/환상 소설들이, 사회 풍자적으로 나가면 상상력이나 이야기 구조가 유치해지고
"발칙해 보이려고 애쓰다가" 시시해져버리는 경우가 많지 않나 싶었는데,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듀나님 최근 여느 소설보다 현실 풍자적인 면이 직접적으로 많이 나오면서도
화끈화끈한 환상적인 장면들이 신이 나고 호기심 당기게 하는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잘 조직된 이야기들이 아슬아슬한 맛이 기막힌 부분도 많았고.
기본 내용은 초능력이 보편화되면서 점점 세상에 퍼져 나가면서, 생겨 나갈 수 있는
갖가지 사회의 파국적인 상황들을 단편 줄거리로 꾸며 놓은 것들이었습니다.
"창비청소년문학" 레이블로 나왔는데, 유난히 청소년 주인공이 많은 책이다 뿐이지, 별로 청소년 문학스러운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실린 이야기 중에, 두 세편 정도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청소년 문학"스러운 내용이 있기는 했습니다.
제가 재밌게 읽은 걸 꼽자면,
짧은 줄거리가 자극적이라서 팍팍 와닿고 심상도 강렬한 편인 "돼지치기 소녀"
주인공의 모습이 영웅적이고, 이야기도 20세기 실존주의 작가식으로 상당히 건설적인 편인 "부적응의 끝"
두 편이 특히 재밌었습니다.
장중한 결말로 맺기 위한 재료를 택하기 위해 너무 손쉽게 소재를 골랐다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야기 짜 놓은 기교가 멋졌던 마지막 "성인식"도 감탄했고.
단편들 중에 일부, 줄거리나 내용은 다른 것들보다 좀 약했다 싶었으면서도,
이야기를 재미나게 빨려들게 짜놓은 기교와 문장이 훌륭해서 재밌게 본 쪽으로는,
이야기가 가장 길면서 개성 넘치는 주인공들을 돌아가면서 다채로운 비밀을 한겹한겹 파헤치는 "나비의 집",
비슷하지만 이야기가 조금 더 많이 보던 SF스러웠던 "연꽃 먹는 아이들" 도 기억 납니다.
상대적으로 재미 없게 본 쪽은 "LK 실험 고등학교 살인 사건", "염력 도시"인데,
다른 이야기들이 워낙 재밌어서 덜 재밌었다는 것이지, 초능력이 보여주는 재미난 양상들을
다양하게 상상하고 탐구해서 보여 주는 것들은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 대단하네" "어떻게 이런 생각까지"
라는 감탄에, 조금도 지루함 없이 즐거웠습니다.
책 후반에 나오는
"과학의 시대가 돌아오는 것이다" 같은 문장은 정말 말 그대로 이면서도, 무진장 감동적이기도 하고,
장중하기도 했습니다. 멋 부리려고 크게 써넣은 것도 아닌데, 아주 크게 보이고. 읽히고.
제목처럼 약간 오글거리는 대목 읽다가도, 이런 부분 보면 또 울컥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멋있게 쓰시는지... 싶기도 하고...
다른 듀나님 책에 비해서는 두께로 보면 얇은 책이라, 간만에 책이 너무 재밌어서,
"너무 재밌어서 책의 남은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을 아까워 하며" 책을 읽어간 경험이 되었습니다.
많이들 읽고 이야기 많이 나눠 봤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