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일기와 배움의 고통과 차와 약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잡상으로 가득찬 바낭입니다.

불편하신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1.

우울증 약은 먹고 있으면 (정신신경계 약이라서 그렇겠지만) 머릿속에 미묘하게 안개가 끼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저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이게 공부라든지 집중할 일이 있으면 저에겐 상당히 방해가 됩니다.

어제는 약이 떨어져서 병원에 다녀왔는데(사실 예약을 잊어버렸었기 때문에 약이 떨어지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약을 안 먹었더니 조금은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오늘 다시 약을 먹었더니 아니나다를까 정말 집중이 안 됩니다...

이건 이거 나름대로 스트레스네요...

약을 먹지 않으면 오감은 날카로워지는 것 같은데 기이하게 화와 짜증이 나고 또 우울해지고 눈물이 철철 흐르기도 합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은 것인지...

어지간해선 확신 같은 건 갖지 않는데 언젠간 이것이 날 죽일 것 같다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들곤 합니다.

 

2.

중국어 공부는 계속하고 있는데 오랫만에 뭔가를 배우면서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CD를 들으면서 계속 반복듣기를 하는데... 으아 정말 미쳐버리겠다 싶을 정도로 머리에 안 들어옵니다. 위에 적은 약의 방해작용인지도 모르겠지만...

중국어 정말 어렵네요. 성조는 몇 번이고 설명을 듣고 또 듣고 듣고 들어도 구분이 안 가고 자기 자신이 발음하기도 어렵습니다.

학원 선생님은 그게 당연한 거라고 말씀하시고 저도 당연하다고 이해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기초이자 시작인데 이렇게 어려워서 어떻게 하나 하고 머리를 감싸쥐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발음도 어렵고... 계속 듣고 있다보면 무슨 외계어를 듣고 있는 기분에 빠져서 흐리멍텅해집니다. 외계어를 내가 이해할 리가 있나 하면서....

어제도 학원에 갔는데 한번 눈물을 보인 뒤라 평소처럼 웃으면서 대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왠지 떨떠름한 미소 왠지 시들한 웃음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지요.

이전과는 달리 잘한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진심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조금 있으면 학원에 갈 시간인데 복부가 조여오는 기분입니다.

공부가 싫다고 느껴지는 건 어릴 적 이후로 참 오래간만입니다...

 

3.

요즘 내내 차를 마십니다.

하루 종일 차만 마시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내 물을 끓여서 또 차를 마십니다.

마시는 것도 여러 가지라 이전 일본가서 공수해온 루피시아의 홍차 녹차 루이보스티 이렇게 돌아가면서 마십니다.

요즘은 혀가 거의 맛이 가버린 것같이(아마 이것도 약의 작용) 뭘 먹어도 맛이 없어서, 차 맛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차만 마시고 살 수 있으면 좋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카페인의 작용이란 게 거의 사라져버린 것인지 아니면 몸이 카페인에 적응한 것인지 차를 아무리 마셔도 잠은 자네요.

아마 이것도 약 덕분일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지금도 약 때문에 좀 멍해서.

 

4.

대학병원에 다니는데, 선생님이 세 번 바뀌었습니다.

일 년 전의 선생님은 어찌된지 모르겠고(일 년 지나고 오니 이전 선생님이 아니어도 되냐고 묻기에 그냥 그러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선생님은 한 번 보고 자신의 병원과의 계약이 끝이라면서 다음 달에는 새 선생님이 담당할거라 말했고 세 번째 선생님은 지금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첫번째 선생님은 가장 흔들리지 않고 절 나름 격려해주었고, 두번째 선생님은 마치 절 애 다루듯이 '그러면 안돼요!' 라고 말했고 세 번째 선생님은...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습니다.

전의 두 사람은 남자였는데 지금의 선생님은 여자입니다. 그런데 왠지 이 사람을 대할 때마다 묘한 느낌을 자꾸 받습니다. 뭐라고 형용하기 힘든.

의사라고 해서 반드시 환자에게 감정 이입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때로 의사 입장에서 자기가 보기에 이상한 환자도 있을 것이고(그 이상한 환자가 나라서 조금 그렇지만) 하루에 수십명의 환자를 보는데 그러다보면 지치기도 할 것이고... 그래서 딱히 내게 이렇다할 격려나 조언을 주지 않아도 그러려니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합니다.

그래도 역시, 나를 아주 약간이라도 진심으로 걱정해준다는 느낌이 오는 의사 선생님을 보고 싶다는 욕심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새삼 일본에서 봐주신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그분은 이런저런 말씀을 해 주시고 그게 정말로 좋은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말이지요.

 

5.

왠일로 오늘도 듀게에 악성코드가 뜨네요...

대체 듀게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럴까요.

 

6.

지난 번의 글에 댓글로 격려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뭔가 감정의 교류가 힘들어서 일일이 댓글 달기가 힘들어서, 이렇게 간략하게 감사드리는 것이 또 죄송합니다.

 

 

    • 에아렌딜님 글 좋아합니다. 힘들단 얘기를 써도 뭐랄까 조곤조곤 쓰셔서.
      저는 제2외국어가 중국어인데 지금은 거의 잊어버려가요 (흑). 고등학교 선생님은 노래를 많이 알려주셨어요. 덕분에 말은 까먹어도 그때 배운 노래는 가끔 흥얼흥얼 합니다. 차는 몸에 좋지만 빈 속에 마시면 위(?)에 나쁠 수도 있다고 들었으니 식사해가면서...
    • loving_rabbit// 저도 토끼님 글 좋아합니다. 토끼님은 어떤 이야기를 쓰셔도 활기있다는 느낌을 주셔서...
      저는 지금 배우면서 새삼 제2외국어를 중국어로 안 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랬으면 성적이 더욱 바닥을 쳤겠지 하면서...
      여담이지만 노래에서는 성조는 전혀 모르겠더군요.
      • 아니 이러시면 우리 사귀기만 하면 되는.. 'ㅅ' (죄송)
        제가 영 잘못알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예전 노래같은 경우는 성조도 일정부분 고려해서 작곡을 한다고 얼핏 들은 것 같아용.
        • 사... 사... 좋아합니다. (...)
          사실 노래가 아닌 걸 들어도 성조는 구분 못한다는 게 함정이죠. 이런 멍청이.
    • 어어 이거 두분 핑크빛인데 제가 끼어들어도 되는지 모르겠어욤ㅎ

      지난글에 보리님께서 남긴 댓글 읽다가 빵 터졌었어요 저도 모르게 소리내서 따라하고 있더라고요ㅎㅎ

      그리고 약은 잘은 모르지만 항우울제 신경안정제? 이렇게 나뉜다고했나..암튼 불안감같은 것이 낮아지면 기분을 좋게하는 약을 더 쓰고 이런식으로 조절하는거로 알고있어요 너무 무기력하고 몸이 늘어지는 감정이 계속 드신다면 말씀드리고 약을 바꾸는게 좋지않을까요 느끼는감정이나 몸상태등을 세세하게 말씀드리면 자신에게 맞는 약 고르는데 더 도움이 될거예요 까지 적고보니 이미 잘하고 계실거 같아서 뻘쭘;; 그리고 원래 처음 기초 다지기가 가장 힘들어요 힘내세요!
    • 케이 재미슨 교수의 책 권해 드리고 싶어요.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 있는데 재밌게 잘 읽힙니다. 존스홉킨스 대학 정신과 교수이면서 그 자신이 심각한 조울증으로 고생했던 사람이기도 해요. 그래서 더욱 병에 대한 이해가 깊습니다. 이 사람은 치료약으로 리튬을 복용했는데, 에아렌딜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뿌연' 느낌에 대해 이 책에 좀 나왔던 것 같아요(조울증과 우울증은 물론 다릅니다만). 논문을 읽는 속도가 전보다 훨씬 느려져서 힘들었다고 그런 얘기를 합니다. 몇 년이 지나 상태가 호전되고 리튬의 양을 줄이면서 그런 부작용도 많이 줄어들었다는 내용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약물치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실 것 같아요.
    • 봄의 속삭임// 음 너무 졸리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이번에 바꿔주신 약도 여전히 좀 졸려요 ㅎㅅㅎ 뭐 신경약이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해요. 그래도 아주 심하게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그리고 사실 의사 선생님도 별 관심없어 보였어요(...) 참 의례적으로 요즘 어떠세요? 하고 묻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지...
      dior// 오 추천 감사합니다. 한번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저도 아마 조울증인 것 같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분노와 우울이 둘 다 나타나서 그럴까요...
      두분 모두 감사합니다. (__)
    • 카페인이 더 이상 카페인이 아닌거죠 커피는 날 못자게 못해요.
    • 예전 글 보고 마음이 많이 안 좋았는데, 중국어 공부도 계속 하시고 선생님에게 칭찬도 듣고!!! 다행입이다^^ 공부도, 상담도, 약도, 치료도 모두 한발한발, 차근차근, 잘 하고 계십니다. 멋집니다. 꼭 행복해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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