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고운빨로 점수를 주는 대학 수업은 그렇게 불공평한 것인가?
피클 님께서 이런 글을 올리셨더랬죠.
http://djuna.cine21.com/xe/index.php?mid=board&page=2&document_srl=6451864
저는 글쓴분이 대학생이나 된 동생분 교양 수업에 20%를 차지하는 매주 보는 쪽지 시험 방식이 불공평함에 함께 공분할 것을 촉구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시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고 그래서 마치 글쓰신 분이 동생분을 유치원생 같이 생각하시는 거 같다는 댓글을 달기도 했습니다. 일단 유치원생 대하듯 동생분을 생각하시는 것 같다는 제 생각의 표현이 기분이 나쁘셨다는 점에 대해서는 사과를 드립니다.
이 글은 그런데 말씀하신 방식이 정말로 불공평한 평가 방법인가 (그렇게 당연히 공분을 일으켜야 마땅할 만큼?)에 대한 생각입니다.
피클 님께서 요약하신 그 평가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외국어(러시아어) 교양수업시간에 단어 쪽지 시험을 쳤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쪽지 시험이 아니라 빙고게임 등수대로 점수를 줬답니다.
빙고칸에 단어 25개를 적고 줄3개를 이으면 빙고가 되는데 빙고를 한 순서대로 점수를 주게 됩니다.
6명이 한 조를 이루어 1등은 4점, 2등 3점, 3등 2점, 4등 1점, 꼴등(2명)은 0점을 받습니다.
(단, 단어철자를 하나도 틀리지 않는 선에 서요.)
그런데 이게 보너스 점수가 아니고 앞으로 이런 빙고게임을 여러 번 시행해서 수업참여도 20%로 학점에 반영한다고 합니다."
피클님께서는 이것이 실력과 상관없는 운빨이므로 불공평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사실 운처럼 공정한 것은 없습니다. 운은 말그대로 아무 것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그래서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찬스가 있는 랜덤 이벤트죠.
물론 두 가지 반론이 가능합니다.
첫째, 실력 혹은 공부한 노력을 평가해야 할 쪽지 시험은 완전무결한 공평함(즉, 운)이 아니라 실력 혹은 노력에 따른 불공평한 결과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거겠죠. 충분히 납득이 가는 반론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쪽지 시험은 그야 말로 쪽지 시험입니다. 중간 고사나 기말 고사가 아닌 거죠. 나머지 80%를 교수가 어떻게 평가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합리적인 수준에서 추측을 해본다면 아마도 중간 고사나 기말 고사를 통해 실력을 평가할 것입니다.
사실 어느 수업이나 10-20% 정도는 실력보다는 출석, 수업 참여 등 직접적인 실력, 능력이 아닌 태도를 위해 할당이 되죠. 출석 체크도 할 겸 매주 저런 모두에게 공평한 랜덤 방식으로 평가를 해서 총 점수 중 20%를 채우는 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빙고 게임으로 쪽지 시험을 본다는 것은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려는 교수의 나름의 노력으로 보여요. 물론 다소 기이하고 완벽히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그게 그렇게 지탄을 받아야 마땅함을 넘어 학교에 문제제기를 해야할 정도의 중대한 문제라고는 전혀 생각이 되지 않죠.
둘째, 만일 쪽지 시험을 한번만 본다면 그것은 분명 불공평할 것입니다. 만일 한번 사는 인생이 완전히 운으로만 결정된다면 운이 안 따라준 사람들에게는 그것처럼 불공평한 게 없죠. 수많은 문학, 예술 작품의 테마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다행히 쪽지 시험은 여러 번 시행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여러 번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매 시간은 아니더라도 매주 1번씩은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 대략 12-15번 사이가 되겠죠. 이 정도가 되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개인들에게 있어서 좋은 운빨과 나쁜 운빨은 대략 상쇄가 됩니다. 그리고 개별 학생들의 점수는 전체 평균에 수렴이 되죠. 20%라고 하지만 실제 이 쪽지 시험을 통한 수업 참여도 부분은 변별력이 별로 없게 되죠.
아마 교수가 바라던 바일 것입니다. 큰 변별력 없이 학생들에게 골고루 점수를 부여하면서 동시에 학생들의 참여(수업 참여도라고 했으니까!)를 이끄는 방식이죠.
제 생각의 요지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방법이 완벽하다거나 이상적인, 그리고 철저히 공정하다고 교수를 옹호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제가 교수라면 저런 방식을 택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이런 방식이 피클님께서 사랑하는 가족이 당하면 누구라도 억울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그런 부당한 처사인 건가 할 때, 생각해보면 전혀 그런 건 아니라는 점이죠.
여기서 뱀발을 하나 더 달아보자면, 저는 기본적으로 수업의 구성과 평가방식은 선생(시간 강사 건 종신 교수 건)에게 일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학생들에게 평가를 받아야 하죠. 제 3자가 나서거나 개입되어야 할 상황은 아주 제한적이어야 합니다. 정말 평가 방식이 누가 보더라도 불공정하고 사회의 핵심적인 합의와 도덕에 도전하는 식이어서 단순히 당사자들(선생과 학생)에게만 맞길 수 없고 사회적 공론화가 되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죠.
얼마전에 마광수 교수의 평가 방식이 공론화가 되어서 말이 많았는데, 사실 저는 그 이슈가 정말 사회적으로 토론이 되어야 하는 이슈인가 의구심이 많이 들었었거든요. 물론 그 사건의 이면에는 충분히 생각해 봐야 할 여러 사회적 이슈들이 많이 관련되어 있긴 했지만 말이죠. 충분히 납득이 되는 교수의 무리수와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이해해 주고 싶지 않지만)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학생들의 오바가 낳은 갈등인데 충분히 교수와 학생 간의 대화와 토론으로도 충분히 해결이 가능하지 않았을까(혹은 그렇게 되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뱀발이 길어졌네요.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