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 봤어요(스포 있음)
총.
화이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걸렸던 것은 총 설정이었어요. 티저 사진이나 예고편에서 총이 나오길래, 상당히 께름칙했거든요.
한국에서 총은 꽤 비현실적인 도구인데다가, 특히나 조폭들이 총을 들고 설치는 장면이나 킬러들이 총을 들고 누군가를 저격하는 수준이 되면 판타지급이 됩니다. 까딱하면 어설픈 홍콩 느와르 흉내처럼 보이기 십상이에요. <달콤한 인생>에서 영화의 질적인 퀄리티를 떠나서 제가 굉장히 위화감을 느꼈던 것이 총의 존재 바로 그 자체였거든요.
그래서 화이 티저를 볼 때부터 우려스러웠고, 영화를 직접 보고 나니 생각보단 우스꽝스럽지 않아서 다행이란 안도감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께름칙한 느낌은 떨쳐낼 수가 없네요. 첫째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죄다 한손으로 총을 쏘는데, 보는 내내 저렇게 쏘면 어깨 안 나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한손으로 들고 쏴도 상관없는 모델을 준비해 배우들에게 들려줬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두 번째로 총기가 지나치게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화이 아빠들과 경찰은 그렇다고 쳐도, 조폭들까지 총기를 들고 등장하는 장면에선 뜨악했어요.
세 번째로 총기로 인해 일어나는 설정 모순들 때문에 집중이 어려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총상을 입은 환자는 경찰에 바로 신고가 들어가지 않나요? 쿠키영상에서 화이의 양엄마(?)가 환자복 입고 앉아 있는데 나름대론 해피엔딩을 암시하는 그 장면에서조차 뱁새눈을 뜰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런 점 때문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이 꼭 등장했어야 했던 이유는 알겠습니다. 만약 총이 아니라 칼을 사용했거나 혹은 두뇌플레이로 영화가 전개되었다면 이 영화 러닝타임은 두 시간으로 절대 모자랍니다. 넉넉잡아 스무 시간은 필요했겠지 싶네요. 영화 전개를 그나마 효율적으로 진행시켜준 1등 공신이랄까.
경찰.
전작 <지구를 지켜라>에서도 신하균 커플을 뒤쫓는 경찰이 등장합니다. 문제의 경찰은 마지막 백윤식과 신하균의 대치씬에서도 얼렁뚱땅 중간에 껴들어서 일종의 목격자 같은 역할을 하죠. 그런데 <화이>에서도 경찰(박용우 말고 똘추로 등장하는 그 형사)이 등장하고, 막판에 주인공들 사이에 얼렁뚱땅 껴드는 전개로 이어지네요. 관객들 반응을 보니 똘추경찰은 없어도 되지 않았느냐는 의견이 꽤 보이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경찰이 없어도 스토리 전개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되네요. <지구를 지켜라>에선 경찰이 백윤식과 신하균 사이에 껴들면서 꽤 고약하고도 아이러니한 웃음을 유발시켰지만, 화이에선 솔직히 분위기를 홀랑 깨더군요.
전체적인 감상은 재미 있고 몰입감도 상당한데 뭔가 어정쩡하고 이상하다는 겁니다. 재미의 힘은 뭐니뭐니 해도 설정에서 나오는 것 같네요. 출생의 비밀을 모르고 킬러로 훈련받은 미소년, 모든 비밀을 알고 복수를 하다! 쌍팔년도 무협지나 라이트노벨, 일본만화 같은 데서 인기 많은 소재죠. 비밀병기로 훈련받은 소년이 교복을 입고 아련아련한 눈빛을 하는 그런 모습은 살수로 키워진 소년이 보리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먼발치에서 쳐다보며 '난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어...' 하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무협지 장면과 거의 일치하고, 이런 이야기는 수십 수백 번 반복해서 읽어도 언제나 재미있단 말이에요. <지구를 지켜라>의 지구침략 외계인 설정도 그렇고, <화이>의 미소년 킬러 설정도 그렇고 장준환 감독은 이런 만화적인 설정을 괴악하게 꼬는 것을 좋아하는지...
어정쩡하고 이상하다고 여겨진 이유는 첫째로 부분부분 뜨악해지는 장면이 있어요. 위에서 언급한 조폭들까지 총을 들고 우르르 나오는 장면이 그랬고, 특히 그 조폭두목 말입니다... 어디서 아이돌 가수처럼 생긴 애가 나와서 총을 들고 설치는 모습을 보고 눈을 의심했네요. 연기는 나쁘진 않았는데 영화에서 굉장히 위화감이 드는 마스크와 헤어스타일이었어요. 그리고 액션씬이 제 기준에선 지나치게 판타지스러웠구요. 여진구가 병원에서 조폭과 일대일 격투를 벌이는 장면이나 아빠들과 카체이스(?)를 벌이는 씬도 그 자체로 보면 멋지지만, 뭐랄까 홍콩영화를 보는 기분에 위화감을 떨쳐내기가 어려웠어요.
관상도 그랬지만 화이도 2시간 러닝타임 영화보단 케이블 채널 미니시리즈가 더 어울려 보입니다. 할 이야기는 굉장히 많은데 러닝타임에 쫓기다보니 썩둑썩둑 자른 것 같고...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