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인생

1. 슬픈 진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슬픈 진실은 '그와 나는 다르다'는 점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너와 나는 다르다. 그녀와 나는 다르다. 그와 나는 다르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에는 그 복잡하고 화려한 이야기의 마지막을 이런 질문으로 마무리 해요.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은 유일한 하나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다시 너와 너 라는 기존의 세계를 살아갈 것이냐. 

후자의 외로움과 갈등과 괴로움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물으면서 말이죠.


이것이 지나친 해석일지 모르지만, 이 질문은 에반게리온의 가장 중요한 주제 입니다. 

어머니의 신체로 빚어진 에반게리온 ( 두가지 의미) 에 탑승한 자식들을 비롯해서,

죽은 아내와 다시 합일을 이루려고 하는 남자가 등장하고 그 밖에도 혼자 남게 된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요.


마지막에 그들이 다시 하나로 돌아갈 때,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들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모습. 

'하나'라고 하는 일치감. 분리되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이 보여요. 즉 나와 너가 다르다는, 서로 떨어진 존재라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는 영원한 외로움과 공허함의 근원인 것처럼. 한 사람의 몸의 일부로 나와서 평생 동떨어진 존재로 산다는 것의 퍽퍽한 괴로움이 인물들을 지배하죠.


사실 이런 주제는 너무 오래된 이야기 입니다. 적어도 플라톤 만 하더라도 사랑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원래는 두 사람이 붙어있었는데, 

어느날 신이 그들을 갈라놓았고, 그래서 영원히 서로의 반쪽을 찾아해매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죠. (플라톤의 '향연'/ 영화 헤드윅의 Ost)


그러니까 나와 너가 서로 다른 존재이며, 우리는 영원히 한 몸이 될 수 없다는 그 진실이, 

인간에게 다시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열망 그리고 혼자 라는 사실의 외로움을 던져줍니다. 



2. 무례한 진실



사실 이런 진실에 관해 먼저 쓴 이유는 '무례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무례함은 '나와 너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때 발생합니다. 


나의 행동과 나의 말과 나의 뜻이 흘러나와 그에게 가도, 그것이 전혀 다른 말과 다른 뜻과 다른 행동이 된다는 것. 

나의 생각과 행동이 설령 나에게 맞는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서로 사랑을 하고 우린 온전히 같은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우린 정말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무례함에는 이런 '차이' 에 대한 전제와 인정이 없습니다. 나의 뜻과 생각과 말이 나에게 맞다는 그 사실에서 그냥 끝이 나죠. 

그렇기 때문에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가해지고, 나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때,  오직 나의 뜻으로 이루어지는 것 그것과 다른 반응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전혀 다른 해석과 , 그 사람이 나와 다르기 때문에 빚어질 수 있는 상황은 고려되지 않는 것이죠. 


무례한 사람에게 나는 너고, 너는 나 입니다. 너는 나와 다른 너가 아니라, 나의 해석- 너는 이런 사람- 일 뿐이에요. 

흔히 나이를 운운하며 상대방을 나와 동일시하는 사람들은 가장 좋은 예입니다. 모두에게 주어진 연령이라고 하는 기준 하에서

그들의 '24'과 그들의 '20'은 나의 '24'과 나의 '20'과 같기 때문에 그들은 마치 자신에게 해당되는 진실을 다른 사람에게도 진실이라고 믿어요.

그 무례함에 대한 항변은 이런 식이죠. ' 아니에요 저는 달라요.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의 해석이 아닙니다. 저는 당신과 다른 사람입니다 ' 



3. 무례의 기원



왜 그들은 무례한 것일까요? ' 그는 너무 예의가 없어' 에서 끝나면 던질 필요가 없는 질문이죠. 

하지만 가끔 제가 이야기한 무례함이 위에서 언급한 '슬픈 진실'과 엮여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슬픈 진실은 '나와 너가 다르다는 것' 이고, 무례함은 간편하게 말해서 ' 나와 너는 다르지 않다'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니까 무례한 사람들이 고려하지 못하는 것은 그 '차이'죠.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기분이 나쁠 수 있다.

나의 말이 다르게 들릴 수도 있다. 나의 생각과 말이 나 혼자만의 것이다 라는 사실을 모르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자신의 생각은 , 이 세상의 생각이고, 오직 나의 뜻이 실현되는 공간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릴 때, 그러니까 아직 작은 아이였을 때, 모두 바로 이 무례한 사람의 세상을 가질 때가 있어요. 

피아제 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혹은 사회학자 이기도 하죠. 그는 아이의 발달단계를 4단계로 나눕니다. 

그 단계는 서서히 나와 다른 존재를 의식하고, 그것과 상호작용하면서 소통하는 과정 '사회화'를 다룰 때 인용됩니다. 


그 단계 중에 2,3단계가 있어요. Pre-Operation 과 Operation. 후자인 3단계는 바로 상호작용 그 자체에요. 

이렇게 행동하면 이렇게 전달이 되고, 저렇게 말하면 저렇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배우는거죠. 

그런데, 바로 이전 단계. Pre-Operation 단계에서 아이는 바깥 세상에 말을 하고 행동을 하지만 , 정작 다른 사람에 대한

고려가 없어요. 가령 아이가 혼자 책을 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떠드는데, 정작 그 말을 듣는 어머니는 그 책의 내용을

모름에도 아이는 상관을 안하죠. 오직 자기가 보고 자기가 먹는 것만을 생각해요. 아이들이 '배우지 못했을 때'의 무례함이죠.


결국 어떤 의미에서 무례함은, 슬픈 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아이였을 때, 다른 사람의 존재와 마음을 몰랐어요. 나의 마음과 존재가 다른 사람과 같거나, 같기를 기대했죠. 

자신의 상황을 알아달라고 울기만 하는 존재. 내가 배가 고프고, 괴롭고 힘이 든다고 호소만 하는 존재. 


나와 다른 생각과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이 나의 밖에 존재하고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뜻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그 사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일단은 정말 '피곤한 일 아닌가요? 



4. '차이'의 피로



프랑스의 문학 평론가 모리스 블랑쇼는 자신의 저서-문학의 공간-에서 이런 구절 로 시작해요. 


'는 가 는 이 를 게 될 때, 는 에 여 가 게 는 것 다.

 독, 은 도 다. 는 것. 로 는 것. 은 을 가. 제 는 로 는 까.

 런 을 게 고 서 인 에 는 자. 이 의 서 독 란, 의 다.' 


우리가 혼자 라는 것. 그러니까 서두에서 언급한 '혼자' 라는 사실에서 예술은 시작된다고 블랑쇼는 적어요. 

사람들은 모두 혼자지만, 정작 다른 사람도 혼자 라는 사실을 까먹죠. 혹은 무례한 사람처럼 그냥 단순하게

나와 다른 사람은 같다. 오직 나의 생각과 마음이, 나의 해석이 전부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예술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나 혼자만의 생각. 나 혼자만의 삶. 나 혼자만의 마음을 빗어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그것이 자신이 의도 했던 바가 아니라고 할 지라도 어떻게든 알아주기를 빌어요. 

자신의 뜻과 마음과 해석이 이렇다고. 나의 마음은 이런 그림이라고, 보여주면서. 그것과 가장 가까운 문장과

그림과 선율을 고민해요. 온전히 우리가 혼자일 때,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면서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기를 바라고. 바로 어떤 순간에는 어떤 완벽한 '일치감'을 이룰 때가 있어요.


그래 바로 내가 느끼던 마음이 저거야. 내가 생각하던 것이 이 문장이야. 라고 하면서, 타자와 나 라는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에 느끼는 , '나는 혼자가 아니야 '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예술에는 있어요.

 

나는 너무 외롭기 때문에, 이 생각과 뜻을 가진 사람이 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두가지 선택을 할 수 있는거죠.

그냥 내 생각과 뜻이 전부다. 라는 무례한 방식과, 내 생각과 뜻은 나만의 것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바깥 세계에 전달하며 다른 사람에게 나의 뜻과 의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나와 전혀 관계없는 타인의 삶이 나의 삶을 울릴 때까지. 


아마 그래서 알랭 바디우는 사랑을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둘이 등장하는 무대가 지속되는 것'이라고 정의한 것인지도 모르죠.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하지만 둘이 등장하는 이 무대를 끝까지 지켜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예술은 그 사랑과 다르지 않아서,

함부로 '하나 가 되려고 하는 '무례함'과 맞서 싸우는 거죠. 이 고독은 온전히 나 혼자만의 것이에요. 



5.나만의 생각


이 글은 무례하게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분명 이 글을 여기까지 읽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들은 '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어' 이거나 ' 아 쉬운 이야기를 왜 이렇게 어렵게 쓰나' 혹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 잖아' 라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문장을 다듬지도 않았고, 퇴고도 하지 않을 겁니다. 

아마 아무도 읽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게 바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요약입니다.

 

 바로 그런 반응들. '당신의 생각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나에게 어렵습니다. 나는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이거나

'나는 당신의 생각과 다릅니다' 혹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글을 오해하고, 자신의 해석으로 받아들이는 경우 .

그러니까 나의 생각은 나의 생각일 뿐이라는 '고백'이 결국 '글쓰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슬픈 진실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고백이 무례함의 반대가 아닐까요?  

 

 




나만의 인생



                         하재연 



내 눈동자는 나의 것

눈썹을 깜박이는 것도 나의 의지입니다

고개를 돌려 당신을 바라보는 것도 나의 의지

내 손은 나의 것

담배를 피우거나

비벼 끄는 것은 나의 의지입니다

연기가 피어올라 공중으로 사라져가듯,

나의 말은 나에게서 나와

당신에게로 흘러들어갑니다

당신이 나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내 뜻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어느 날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거리에 불이 켜지면

나는 거리로 나갑니다

어느 날 가로등들이 꺼졌다 켜졌다 하듯이

당신은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나는 쏟아지는 불빛을 거리에서 맞습니다

나의 의지는 나만의 것이지만,


















    • "무례" 라는 말.
      예가 없다는 말인데 이 "예"라는 것도 누군가, 사회적, 도덕적 기준에 의해서 예라는걸로 성립된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예라는 것도 처음에는 누군가의 주관적인 예 였을 것이였으며 이것이 퍼져나가고 이 예라는것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무례하다 했겠지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사회가 정한 예라는 틀에서 벗어나니 무례라고 하는거죠.
      그렇게 보자면 례야말로 서로의 다름은 인정하지 않고 그저 정해진 례에 맞추라고 강압하는 무례한 것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습니다.
      례라는 것은 결국 무례한 것이라는거, 례 = 무례, 결국 같은거죠.
      그래서 똑같은 례라도 누군가에게는 례로 누군가에게는 무례한것인지도 모르겠군요.
    • 여러 생각이 드네요. 글 잘.. 시도 잘 읽었습니다.
    • 그렇다면 나 또한 무례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결국 붉은 끈으로 이어져있어요." 다시 무례하지 않게 말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끈은 언제나 바들바들하죠." 그리고 마지막은 고백이어야 겠죠. 놀랍게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가끔 소름끼쳐요. 관음적인 욕망이 커튼 사이로 펄럭이는 느낌이죠. 그 펄럭거림 사이로 거울이 놓여져 정확히 나 자신이 반사되는 느낌이에요. 이걸 무례하게 말하면 연약하고 부끄러운 무엇이며, 이걸 공손하게 말하면 우리가 이어진 질긴 끈이죠. 열정이 지나치면 끊어지고 관심이 없다면 녹아버리는.
    • 아이가 배우지 못했을 때의 무례함을 받아주는 부모가 있어 아이는 무례함을 지워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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