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과 다이빙

제주에서 어제 올라왔습니다. 아직도 눈을 뜨면 눈앞에 곧장 바다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바다는 없고 서울에는 가을비가 쓸쓸하게 내리니 다이빙 생각이 간절해지네요.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며 얼마 되지 않은 저의 다이빙을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조금 멀리 돌아 저의 어릴때의 추억도 끄집어내보고요.


어린시절에는 등산을 많이 다녔습니다. 아버지가 등산을 좋아하시거든요. 여름이면 온 가족이 지리산 종주를 했습니다. 고등학교 가기 전까지는 매년 지리산종주를 해왔어요. 고등학교에 가서는 2년에 한 번, 혹은 3년에 한 번정도밖에 지리산종주를 하지 않았네요. 이제는 부모님도 억지로 데려가지 않으시고 또 당신들께서 하시는 등산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져서 저는 따라갈래야 따라갈 수가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어요.
 
저는 산이 싫었어요. 어릴때부터 체격이 컸던 전 산에 오르면 늘 뒤쳐지곤 했습니다. 달리기도 정말 못했어요. 뭐든지 맡아놓고 꼴찌라는 건 기분좋지 않잖아요. 가족 중에 제일 산도 못타고 매번 애먹으면서 산을 다니고. 하지만 어린시절에 산을 타는 건 거의 의무였습니다. 등산은 가족스포츠였고 쉬는 날은 뭐든지 산으로 연결됐어요. 

제가 제일 싫은 산은 겨울산행, 야간산행이었습니다. 미끄러운 눈길에서 넘어질 것 같기를 몇차례, 급기야 넘어지고 나면 정말 자기자신이 싫어집니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야간산행에서 부들부들 떨면서 헤드랜턴을 켜고 겨우 한발씩 딛고 가다보면 가족들이 벌써 저 멀리 가고 있고 처절한 몸부림으로 쫓아가기 바쁩니다. 동이 틀 무렵이 되면 그제서야 안도감이 듭니다. 드디어 동이 트는구나. 싸늘한 새벽공기가 더 차가워졌다가 누그러져서 뺨을 스칩니다. 볼은 꽁꽁 얼어있습니다. 모자 속과 장갑 안, 따뜻하게 챙겨입은 안쪽엔 이미 땀투성이. 

산에 대한 기억이 모두 싫었던 것은 아닙니다. 산에서 배운 것도 많았어요. 오르기 시작할 때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너무 고통스러우면 그런 생각을 했어요. 3시간 뒤에는 쉴 수 있어, 5시간 후에는 식사를 할 수 있을 거야, 내일 이 시간에는 집에 있는 이불 속에 파묻혀 있을거야. 언젠가는 힘든 시간이 끝난다는 확신. 오르막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내리막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힘든 오르막을 오르고 나면 아주 멀리, 또 높은 것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 그 때 여유를 잃으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것도요.

산행에서 기억나는 아름다운 광경이 있어요.
보통 높은 산을 오를 때에는 밤새도록 버스/기차를 타고 산이 있는 지역까지 가요. 그리고 한 새벽 3시정도에는 산행을 시작합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눈을 뜨면 곧 시작될 산행으로 긴장한 사람들의 흥분이나 열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새벽산행은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몸을 채 풀기도 전에 가파른 경사를 허겁지겁 올라갑니다. 특히 산악회를 따라가면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그 사람들은 강인한 체력, 빠른 속도로 저를 휙휙 지나쳐 가는데 제가 길을 막으면 안되니까요. 온 힘을 다해 올라갑니다. 입 안에서 피맛이 나기 시작하고 저는 안간힘을 다해 경사의 끝에 섭니다. 길 옆에 서서 숨을 내쉬고 있으면 빠른 산악회 아저씨들은 저 멀리 사라져갑니다. 가족들도 그 뒤를 쫓아갑니다. 저는 대체로 느렸고 저와 보조를 맞춰주시는 아버지와 함께 걸었어요. 숨을 가라앉히고 다시 산행이 시작됩니다. 작은 길을 따라 나무 사이를 걷는데 아버지가 길 옆을 가리키십니다. 그 곳에는 구름으로 가득 찬 거대한 호수가 있었어요. 실제 호수는 아니었지요. 산의 높은 언저리에서는 계곡에 가득찬 구름이 호수처럼 보였던 거예요. 아버지께 물었어요. 저게 운해예요? 아버지는 그렇다고 해 주셨죠. 우리는 잠시 운해의 옆을 산책하는 것처럼 걸었어요. 아까까지의 숨막히도록 뛰던 심장은 어느새 고요해졌고 눈 앞에는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으니까요. 그 모든 고생을 만회하는 풍경. 등산할 때 항상 그런 풍경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건 산행에서만 볼 수 있었던 특별한 광경이었어요. 저희가 올랐던 산은 이제 이름은 생각나지 않아요. 그렇지만 산들이 둥글게 모여 있고 그 계곡 가운데에 호수처럼 넘실대던 흰 구름들, 그리고 우리가 그 구름의 위에서 구름을 바라보며 동이 터오는 것을 지켜보았고 하늘은 아침노을로 가득찼다가 금세 태양이 떠오르자 다시 맑아졌던 것이 생각납니다.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거예요.

두 번째의 아름다운 풍경은 아마 지리산 선비샘에서 있었던 일인 것 같네요. 그 때의 저는 아직 어렸고, 제 동생은 더 어렸고 그래서 무박 2일로 산행을 하는 건 무리가 있었어요. 그래서 한 번 정도 야영을 했죠. 여름이었습니다. 지리산 종주가 그렇듯이 정말 힘들었어요. 제가 워낙 못하니까 아버지가 짐을 나눠서 져 주셨는데도 정말 자기가 마실 물 하나 간수하는 것도 괴로웠어요.

그렇지만 그날 밤에 선비샘에서(그때는 야영을 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정해진 산장에서만 잘 수 있지만요.) 야영을 하는데, 올려다 본 하늘은 엄청났습니다. 하늘은 별로 빼곡히 차 있었습니다. 늘 하늘을 올려다보는 걸 좋아했는데 그렇게 많은 별을 본 건 처음이었어요. 지상에 빛이 사라지자 하늘에 빛이 가득찼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그 후의 지리산산행에서도 그런 황홀을 맛보진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저는 이제 벌써 서른이 되었고 듀게도 하게 되었죠ㅋㅋ
듀게에서 만난 분이 다이빙이야기를 해 주셨고 단숨에 매혹되었어요. 처음에 매혹되게 된 포인트의 이름은 자리여였습니다. 자리여. 자리돔이 많은 절벽이라는 뜻이었어요.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물 속으로 절벽을 따라 끝없이 하강하고 나면 거대한 맨드라미산호가 반겨주고 끝없는 하강중에 고개를 들어보면 수천마리의 자리돔이 우리 위를 떠돌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고요. 바다 안에서의 편안함과 그것이 주는 평화가 그 무엇에도 비견할 수 없다고요.

그래서 갔습니다, 다이빙을 하러!
처음에는 수영장에서 패닉해서 호흡기랑 마스크도 집어던지질 않나, 입수시에 다리가 먼저 물에 들어가는 핏퍼스트를 할 때는 두려움에 제 자신이 엉망진창으로 변해가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나 정말 엉망이야, 하며 그래도 그 포인트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갔던 딥다이빙. 수심 23미터 지점에서 그 매력의 입구에서 공기가 부족해서 돌아와야 했을 때의 서글픔.
도저히 거기서 그만둘 수는 없었어요. 남은 교육을 위해 다시 갔을 때 저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야간다이빙.
야간다이빙의 특별함은 아직도 저를 설레게 합니다.


그 특별함에 대한 이야기는.....


안알랴줌

은 아니고요 ㅋㅋㅋ 좀 길어지니까 다음편에 계속.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이빙을 배워보고 싶은데... 혼자 하긴 싫고,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 맥주병이라 그냥 꿈만 꿉니다. ㅋ
    • 좋은 취미를 가지고 계시네요.
    •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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