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몹시 우울해합니다.
이유는. 실은 잘 모르겠어요. 아직 생각의 키가 다 자라지 못한 탓인지 아님 늘 여자여자 테크만 타서 그런지 남편의 마음을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어요ㅠㅠ
남편 말로는 직장도 재미가 없고 집도 재미가 없고 아무 의욕도 없고 우울하다고 합니다. 제가 살짝 추측해보기로는 결혼하고 보니 상상과는 다른 현실(?)-일테면 기름 낀 얼굴로 출근 배웅하는 마누라, 미친듯이 냄새나는 고양이똥, 어디론가 빠져나가는 월급 '텅'장, 뭐 이런것들요.
남편은 일찍 결혼했어요.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해외여행을 가거나 비싼 취미생활, 혹은 대학원을 갈 때 그런걸 누리지 못했어요. 그냥 저만 바라보고 살았죠(이 부분은 저도 비슷합니다만). 게임기를 사거나 컴퓨터 부품을 사는 정도로 만족하는거 같아요. 운동이나 악기를 배워보려고 하는거 같은데 요즘은 그것도 다 싫대요.
어떻게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무얼 해주면 힘이 날까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줄까요. 코스튬을 입고 춤을 춰줄까요. 맥주에 나쵸를 주면 좋아하나요?;;;
정말 잘 모르겠어요. 실은 저도 쉽게, 그리고 늘 우울함에 시달리는 사람이라서 기분이 좋아지는 방법을 잘 모르거든요. 으흐흑ㅜㅜ 도와주세요ㅜㅜ
그리고 혹시 이 글을 본다면. 당신은 정말 잘 해내고 있어요. 기운내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
위는 진지 덧글이었고, 이번엔 안 진지 덧글을 써본다면 게임기 산다고 하시길래... 하스스톤 베타키를 구해주면서 이게 그렇게 재밌대... 한번 해봐... 하면 다음 날부터 우울이고 뭐고 잊어버린 남편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지도. 하지만 대신 턱까지 내려온 다크서클과 점점 비어가는 통장 잔고가... 하하;
어쩌면 계절 탓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매년 계절성 우울증을 심하게 겪는 편이라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9월 중순부터 듀게에 부쩍 우울함 관련글이 많이 올라오는 걸 봐도 그렇구요.
개인적으론 운동으로 최고의 효과를 보았습니다. 꾸준히 운동하면서 입맛 돋궈서 가끔 맛있는 음식 먹어주는 것도 좋고요. 평소에 좀 비싸거나, 먹으러 가기 귀찮거나, 안 먹어봤는데 맛이 미심쩍어 보류했던 음식들도 시도해 봅니다.
그리고 다 싫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모드일 때는 '다 싫지만 그나마 아주 조금이라도 내키는 것' 이 생기는 즉시 실행합니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먹기 싫고 차라리 굶고 싶다, 그럼 살 빠지고 좋겠지. 그런데 갑자기 감자칩은 조금 당기는걸. 하지만 밖에 나가기도 귀찮고 감자칩은 몸에 안 좋잖아... 하고 생각이 흐르면 감자칩은 조금 당기는걸. 에서 생각을 커트하고 바로 뛰쳐나가서 감자칩을 사 오는 겁니다. 그렇게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정말 늪으로 서서히 빠져들어요.
옆 사람의 역할로는 일단 네가 우울하건 말건 나는 네 옆에 평소처럼 있을 거고, 나는 너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은 사람이다. 라는 태도를 보여 주면 최고일 것 같아요. 사실 우울할 때 옆에 누가 있으면 귀찮기도 하고 혼자 있고 싶은데, 막상 상대가 그래 그럼 혼자 시간 좀 보내. 하고 나를 방목하면 그건 또 그거대로 외롭고 서럽습니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옆에 있어 주면 좋겠어요. (저는 옆에 그런 노력을 해 줄 사람이 없어요. 글쓴 분 남편 분이 부럽습니다.)
주인공이 답답하고 우울한 정서를 치료해 가는 영화를 보는 것도 저는 도움이 됐어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50/50] 등.
보통 아저씨들이 마흔을 넘기면 자기 삶에 대해 돌아보는 일이 늘어납니다. 그럴 때 주로 느끼는 감정이 '나는 왜 이렇게 쳇바퀴도는 것같은 삶을 꾸역꾸역 살고 있는 걸까? 누굴 위해?'라는 겁니다. 그 무드가 연장되면 바깥분같은 증상이 나타나지요.
그럼 진단은 그렇다치고, 해결책은 무어냐고 묻고 싶으실텐데 본인이 '삶은 삶이지' 내지 '가족을 위해...'라는 등 스스로 수긍할 수 있는 답을 찾는 것 외에는 딱히 처방이랄 것이 없어요. 다만 아래의 조언이 조금은 도움이 될 겁니다.
1. 약간 떨어져서 적당한 관심을 보여줍니다. 미묘하긴 한데, 계속 바짝 달라붙어서 '뭐 해줄까? 뭐 해줄까?'하고 묻는 것보다는 '나는 당신의 행복에 매우 관심이 있다. 다만 당신이 부담스럽지 않게 표현하고 싶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시면 됩니다.
2. '가정을 지키기 위한 당신의 노력에 감사하고 있다'라는 신호를 줍니다. 더불어 '당신은 ATM이 아니다'라는 신호도 같이 줍니다.
3. '당신이 없어도 남은 가족은 잘 살아갈 수 있다'라는 신호를 줍니다. 이건 또 무슨 참신한 X소리냐 싶으시겠지만, 실제 제 경우에는 퍽 도움이 되었던 신호입니다. 2번과도 연관된 이야기인데 한국 아저씨들에게는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의외로 큰 것 같습니다(물론 딱히 남자가 아니라도 breadwinner 역할을 맡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겠지만요). 제 경우에는 '내가 없어도 우리 가족이 어찌어찌 유지되겠구나'라는 견적이 서는 순간 큰 해방감을 경험하고 기분이 좋아졌답니다.
4. 맛있는 것을 해먹인 후 낮시간에 가볍게 산책/마실/드라이브를 하게 유도한 뒤 방치합니다. 1주일 정도 등따습고 배부르게 만든 다음, 감정의 바닥을 들입다 팔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주는 것도 감정정리에 도움이 됩니다.
빠삐용/ 요사이 둘이서 배드민턴을 쳤는데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지는 바람에 좌절됐어요. 얼른 검도를 등록시켜줘야겠군요. 이인/ 그러게요. 사실은 제가 늘 우울해해서......많이 반성하고 있어요. 남편을 위한다면 더 활기차고 좋은 아내가 되었어야 했는데! 흑흑. 九蓮寶燈/ 남편은 이십대 후반이고 아이는 없습니다. 그런데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생활고(!), 고부 사이에서 샌드위치 되기 등등 젊은 나이에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많아서 부쩍 슬픈얼굴의 남편이 보여요. 제가 옆에서 봐도 어깨가 무거워보이거든요. 2,3이 어려우면서 가장 와닿네요. 어제 퇴직신청을 하고 왔는데 다시 직장을 찾아봐야겠습니다ㅋㅋㅠㅠ 모든 유부남들과 유부녀들이 힘내기를-0-;; 생율/ 대청소 완료! 고양이 화장실 갈아주기 완료! 씻고 꽃단장하고 남편 마중하러 갑니다:-)
저였다면 자신을 사랑해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 행복하겠지만... 그냥 부담은 주지 마시고 그냥 어느 날 살짝 도시락이라도 싸주시면서 어떤 고민이 있어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지지한다고 쪽지를 곁들여주면 좋을 것 같다...는 건 너무 제 생각이 무른 걸지도. 아무튼 좋은 결과를 기대합니다. 힘내시길..
꺄... 마지막 줄에서 눈물이... ㅠㅠ 바라보시는것도 힘드시겠네요. 사실 우울은 옆에서 뭘해준다고 괜찮아 지는건 아닌거 같아요. 아마도 그냥 잠깐 상념에 빠지신게 아닐까 생각드네요. 잠깐 내버려두고 그분옆에 진정 사랑으로 지켜보고 있는 아내가 있다는사실만 느껴지는 제스쳐만 취햐보면 어떨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