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수치심을 줄 수 없다





 사람은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수치심을 줄 수 없다.




 수치심을 이해하려면 이에 흔히 대조되는 개념인 죄책감과 연결시켜 이해해야 한다. 문화인류학에서는 흔히 서양과 동양(특히 일본)의 문화적 특성을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비교하려고 한다. 서양의 기독교 문화가 신 앞에서의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거라면(원죄), 일본의 문화는 남에게 실례를 범하지 않아야 하며 잘못을 범할 경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 하는 '수치심'문화가 발달했다는 식이다(민폐). 한편 정서 심리학에서 짓는 구별은 이 두 감정의 차이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두 정서는 자신이 정한 잘못 때문에 일어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죄책감은 어떤 특정한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느껴서 드는 감정이고 수치심은 자신의 존재가 잘못되었다고 느껴서 드는 감정이다. 그래서 죄책감을 느끼는 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수정하지만(독실한 행위로서 원죄를 용서받기), 수치심을 느끼는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숨겨버린다(남들에게 끼친 민폐로 수치심을 느끼고 할복).




 원래 이런 수치심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고 주변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어나갈지 알려줘야 하는 게 교육이다.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사람의 수치심을 집요하게 자극하는 게 교육이다. 훨씬 더 풍부한 감성과 생각과 가능성을 가진 학생들은 성적과 공부시간이라는 척도로 재면서 끝없이 부끄럽게 만들고, 부끄러움을 당연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드니 어떻게 해야 좋겠는가? 인터넷(듀게?)에 넘쳐나는 악플러들, 학생들에게 일단 닥치고 공부하라고 얼르는 찌질이 어른(들과 꼴깝떠는 '명문대생'들)들이 다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게 아니겠는가? 남에게 수치심을 불러 일으키려는 교육, 사회, 사람들.




 그러나 우리가 당장 교육시스템과 사회구조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니,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이라도 어떻게 할지 생각해봐야 하겠다. 원칙은 하나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부끄럽게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분명히 말하겠다,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살인범과 강간범과 많은 인간들에게 고통을 준 정치범이나 경제범조차 자신이 자신의 존재를 지킬 자격은 있다.(내가 죄책감과 수치심을 구별지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하물며 사람을 대하는 스킬이 부족해서, 상황이 안 좋아서, 타고나기를 좀 더 불안정하게 태어났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다. 누구도 내게 수치심을 줄 이유가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에게 수치심을 주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너를 생각해서", "네가 잘못했잖아", "너에게도 책임이 있지" 이 모든 말들을 웃어 넘겨라. 웃어 넘길 자신이 없다면 씹어서라도 넘겨라. 너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고 분명히 표현해라. 그리고 나서야 자신의 행동에서 적절하지 못한 부분만 찾아서 고칠 건 고치고 사과할 건 사과해라. 하지만 언제나 생각해라 네 자신의 존재가 먼저다.




 자신의 존재조차 세우지 못하고 스스로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이후의 모든 행위가 의미없다. 착함은 약함으로 받아들여지고, 순정은 찌질함으로 보이며, 배려는 소심함으로 보인다. 누군가 너의 수치심을 자극할 때 깨어나는 너의 자의식을 버려라.(너의 자아를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대신에 너의 행동을 네 의지와 주관대로 고쳐나갈 힘을 가져라. 세상이 다시 어떤 경험과 자극으로 너에게 돌아오더라도 그걸 그대로 느끼고 즐겨라. 그리고 나서야 진정한 착함과 순정과 배려가 시작되는 거다.




 눈치빠른 이는 제목부터 눈치챘을 지도 모르고, 둔한 사람은 지금 이 줄에서 내가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이글을 썼는지 알 것이다. 내가 하고 싶던 말은 다 했지만 서비스로 몇 마디만 더 하자.

 "그렇다면 아픈 마음, 위축되는 자아, 슬퍼하는 감정을 자꾸 표현해서 주변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만 말하겠다. 중요한 건 누구 하나를 불쌍한 놈으로 만들거나 불쌍한 척 민폐끼치는 인간으로 만드는 게 아니다. 그저 저 사람의 마음이 쉽게 바뀌지 않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무작정 해결만 하려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 위로를 하되 괜히 불쌍하고 조급한 마음에 상대방에게 당장 바뀌라고 하면서 닥달하거나, 아니면 상대를 모욕하고 비꼬지 않는 것이다. 상대가 너를 골아프게 하는 건 상대 잘못이지만 거기서 괜히 합리화를 하며 자기 행동에 원칙을 버리는 것은 너의 잘못이다.

 결론은, 남이 징징댄다고 징징대지 마라. 여기까지.

    •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단지 본문이 경어가 아니라 경고를 드실까 조금 걱정되는군요. 어쨌든 제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수지침은 줄 수 있다고 봅니다.
    • 감명깊은 글이군요. 인생에 경험이 풍부하신 분만이 이런 글을 쓸 수 있지요.
      앞으로도 듀게인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전수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 수지침 뭔가욬ㅋㅋㅋㅋㅋ

      김전일님 부를 기세
    • 부끄러움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까요.. 듣고 싶어요.
    • 누구나 사는건 소경이 지팡이를 어루만지며 혼자의 길을 더듬어 가듯 그렇죠.
      안보여 알지는 못해도 계속 가면 거의 끝이라 짐작하는데 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럼 거의 다 간거죠 끝이란건 없는거니까,각자의 길이라 그 지점은 다 다르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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