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석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부쳐

우울과 환멸에 빠져 자기 복제를 거듭하던 구십년대 한국문학에서 한 명만을 구원해야 한다면 

그 사람은 백민석 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일 수는 없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백민석을 읽은 시점에 그는 이미 절필하고 자취를 감춘 뒤 였습니다. 

그가 절필한지 모르고 그의 소설에 매혹되었습니다. 더럽고 냄새나지만 끌어 안을 수밖에 없는 커다란 매혹이었습니다. 

그 매혹을 저버리자면 저 자신까지 버려야 했을 지도 모릅니다.


백민석은 저를 헌책방으로 이끌어준 사람입니다. 오래된 책 냄새를 알게 해 준 사람입니다.

누렇게 바랜 책장이 얼마나 얇아지는지 느끼도록 해준 소설가입니다.

저를 밖으로 이끌어낸 소설가는 아직까지 백민석이 유일합니다.


그가 이미 사라진 뒤에 있던 저는 그의 소설들을 읽으며 그가 자취를 감춘 이유를 찾았습니다.

그의 사라짐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고 저는 그를 이해했습니다. 그는 너무 도발적이었고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소설가가 지니고 있기에는 더 없이 좋지만 생활인이 가지고 있기에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성질이죠. 


그를 이해했음에도 그가 사라졌다는 게 저는 늘 불만스러웠습니다. 그 사건이 만들어내는 신화적인 아우라가 싫었습니다.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춘 소설가라니. 얼마나 낭만적인 이야기인지. 얼마나 부드럽게 삼킬 수 있는 신화인지.

차라리 재능을 잃고 졸작들을 연이어 내주기를 저는 바랐습니다.


이제 백민석이 돌아온다니 저는 조금 욕심을 부려 그가 좋은 작품들을 내주기를 빕니다. 전처럼 끝까지 가주기를.





시체 하나가 동네로 굴러들어왔다. 꼭지가 휑하니 뜯긴 비닐제 초립을 쓰고, 짓이겨진 장미 꽃잎 빛깔의 셔츠와 흙탕물에 담갔다 꺼낸 듯한 쥐색 양복을 입고, 어깨엔 좌우 귀퉁이가 닳아떨어진 잿빛 천가방이 매달려 있었고 시체는 그게 밥주머니라도 되는 양 시커먼 손을 연신 집어넣어 과자 부스러기를 꺼내 먹었다. 

                                                                                                                                          <구름들의 정류장> 중에서

    • 저도 오늘. 잠시 설레여서 행복했습니다.
      • 저는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났네요. 이런 적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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