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좋은 닭집이 있습니다. 다섯 평 남짓한 가게인데 그 공간을 몹시 효율적으로 쓰고 있죠. 거리에 면한 쪽에 조리실이 있습니다. 쉼없이 닭을 손질하고 튀기고 배달해가는 손님들의 손에 한 봉지의 닭이 들려집니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먹고 가는 손님들을 위한 작은 공간이 있습니다. 겨우 세 개의 테이블이 꽉찰 정도로 알뜰한 공간이지만 닭집 특유의 눅진한 기운은 없어요. 쾌적한 공기와 미끌거리지 않는 탁자 위에서 닭을 먹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닭 한마리와 맥주 두잔을 마시며 책을 읽는 게 요즘 제 소소한 낙이에요. 닭성애자인 나조차 한 마린 다 못 먹고 절반은 남겨서 집에 가져갑니다. 열시가 넘으면 야자를 마친 고등학생들이 밀려들어요. 개그콘서트를 틀어대며 시끄럽게 굴지만 그조차 흥겹죠. 가끔 계산을 해주러 왔다며 그들의 대화를 염탐하는 부모들도 만납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이성, 최근의 고민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닭값이상의 본전을 뽑고 돌아가죠.
오늘도 어김없이 좋아하는 부위인 닭가슴살만 홀랑 먹고 두 잔을 마시고 일어서려는데 고등학생 세 명이 들어섭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을 놓고 토의를 벌이는데 이건 뭐 얄타회담 저리가라에요. 그들은 처칠과 스탈린, 루즈벨트가 울고 갈 기세로 몇 마리로 할 것인가, 누가 양념을 원하는가 등을 진지하게 논의했습니다. 전 저도 모르게 먹다만 닭을 내밀었어요. 
"날개랑 다리에요. 깨끗이 먹었고..."
이때 주문을 받으러 온 삐쩍 마른 알바가 울부짖었습니다.
"포장해 드릴 수 있어요" 
그러나 전 이미 알고 있었어요. 이틀째의 닭은 렌지로도 오븐으로도 신문명 에어프라이어로도 살릴 수 없는 죽은 닭이라는 것을. 
정신없이 먹는 모습이 참으로 흐뭇했습니다. 그때 못들을 말을 듣고야 말았어요.
"이럴 줄 알았음 민규도 부를 걸"
알고 보니 민규는 돈이 모자라 참석 못한 모양이에요. 전화를 할래야 할 수 없는 요즘 시대 화석과 같은 전화기 없는 고등학생이란 이야기가 잇따랐어요.
날개와 다리가 순식간에 동이 나고 손을 빨고 있는 그들을 보며 전 충동적인 결정을 했습니다.
"저 고등학생들이 시킨 것까지 계산해 주세요" 
"쟤네 아세요?"
전혀 모르지만 닭을 필요로 한다는 건 알 수 있었어요. 의외로 많이 나와서 휘청했지만(고등학생들은 일인일닭을 표방하고 있었어요) 이내 평정을 되찾았습니다.
나중에 계산이 치러졌다는 걸 알았을 때 그들의 표정을 못본 게 아쉽지만 산타는 아침까지 뭉개지 않는 법이죠. 내일은 민규가 닭 먹을 수 있을까요. 그게 못내 신경쓰입니다.
    • 아이고 예뻐요 아이들이 소문듣고 친구들 데리고 들를지도 모르겠어요. 또 만나시면 민규있니 ~~~
    • 좋은생각에서 읽는 에세이 같아요.



      이틀째의 닭을 살리는 방법.

      살만 잘 발라내서 고추장케찹 혼합 양념에 무치거나 볶으면 좋은 밥반찬이됩니다.



      -계성화타
    • 민규 낼은 돈 생기겠죠.
    • 민규도 같이올걸 하는 학생들이 착하네요. 민규도 치킨먹었으면 좋겠네요..제가 민규한테 치킨 한 마리 보내주고픔
    • 좋군요 이런 상황 이런 글
    • 읽는 동안 자동으로 TV 동화풍의 그림이 머릿속에 지나갔어요. 저도 민규가 신경 쓰이네요. 언젠가 저 학생들도 옆 테이블의 누군가를 보며 잊고 있던 오늘 일을 떠올릴 테죠.
    • 작년에 강화도에 조개구이 먹으러 갔다가 저희 테이블에 반이상 남 은 조개 넘겨주고 떠난 젊은 부부가 생각나는 글이네요. 이 자리 빌어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ㅠㅠ 웬지 듀게 하실거 같았어요;
    • 서점에서 집어든 책에 이 글이 있었다면, 그 책을 사가지고 돌아갔을 것 같은 글이네요.
      무심하면서도 참 동글동글한 이야기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아...따뜻합니다. 고맙습니다.
    • 어디선가 위그든씨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글입니다:)
      • 이해의 선물 정말 좋아했어요 ^^
    • 좋은 글이네요. 숨죽이며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재밌고 훈훈한 글 잘 읽었습니다.
    • 아 좋아요. 좋은 이야기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음번을 위해... 프라이드라면 데우지 않은 채 살 발라내서 마요네즈랑 머스터드랑 버무려서 양상추랑 치킨 샌드위치 해서 먹어도 돼요~
    • 짧고 강한 제목과 훈훈한 댓글들 ^^ 월요일 점심이 잘 소화 될 듯한 예감이 듭니다. 마음이 따땃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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