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수능날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없고 굉장히 담담했던 것 같네요.
자식 많은 집이라 그런가 아침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혼자 갔다가 시험 치르고 혼자 오면서 교문 앞에서 정답지를 팔거나 나누어 주었던 것 같은데 그걸 하나 얻어서 집으로 걸어오는 동안 답안지를 들고 답을 맞추어 가면서 왔어요. 집에 거의 다 왔는데 아직 답을 다 못 맞춰서 길가에 커다란 파란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길래 그 차 범퍼 위에 책상인양 답안지를 넓게 펼쳐놓고 공부하듯이 답을 맞췄던 것만 선명하게 생각나네요. 평소 안 하는 짓인데 답이 무척 궁금했거든요. 그리고 집에 들어와서 엄마에게 잘 본 것 같다고 얘기하고 그냥 일찍 초저녁잠을 잤어요.
홀가분하다기보다는 정말 이게 이 공부의 최종목적지라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던 그것이었나! 그런 묘한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 이야기는 아니고 옆에서 들은 이야기1: 마지막교시에 졸릴 것 같아서 가지고 간 귤을 까서 책상위에 놓고 먹으면서 문제를 풀고 있는데 감독관이 무의식중에 하나 집어 먹곤 민망해서 귤껍질을 버려줬다는 에피소드 ㅎㅎ 제 이야기는 아니고 옆에서 들은 이야기2: 연필을 돌리면서 문제를 풀고 있는데 계속 돌리고 있으니 감독관이 옆에와서 서서 보는데 가슴팍에 '조 용'이라고 달린 표찰이 있어서 돌리는걸 멈추고 '아 시험장안이라 조용히 하라는걸 이렇게 알리는구나'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감독관 이름이 '조용' 이었다는 에피소드. 오늘 회사에서 들은 실화들이네요 ㅎㅎ
티는 안 내셨지만 저보다 더 긴장하시는 게 역력했던 엄마가 떠오르네요. 선생님께서 미역국 먹으면 떨어진다는 거 다 미신이고 아침에 미역국 먹으면 혈액순환 잘 되고 좋으니까 먹으라고 하셨던 것도.. 외국어 영역 시작하기 전엔 초콜렛 먹으라고 하신 것도.. 점심 먹고 나면 배 같은 걸로 수분 섭취 해 주라고 하신 것도. ㅎㅎ 끝나고는 집에 바로 와서 EBS 정답 맞춰보고 잤어요.
어려웠던 수능을 마치고 저와 친구들은 낙담하여 고사장에서 한 시간 여를 걸어서 재학 중인 학교 근처 버스 정류장까지 가서, 아직 개업 전인 친구네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며 놀았습니다.ㅋㅋㅋㅋ tv에서는 수능이 어려웠다고 막 떠들고 당시 핸드폰이 없던 저한테 연락이 안 돼서 엄마 아빠가 몹시 걱정하고 계셨지요;;; 다음 날 바로 아빠가 핸드폰을 사오셨고 수능 너만 어려웠던 거 아니라고 위로해주셨어요. ㅠㅠ
2시간 반 전에 시험장으로 출발했는데, 가는 길에 고등학교만 다섯개가 있어서 길이 어마어마하게 막혔었죠. 경찰차나 오토바이에는 이미 다른 학생들이 다 타고 있어서 못탔었죠 이러다 시험을 못칠것 같아서 차에서 내려서 시험장으로 뛰어가는데 하필 오르막.. 겨우겨우 교문을 통과했더니 제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어요. 교실에 들어갔더니 제가 제일 마지막 입장. 부산스럽게 짐을 풀고 진정시키려고 하는데 막 째려보는 시선이 느껴졌던게 기억나네요
전 수능전날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그당시 좋아하던 선배오빠의 응원 전화를 받고 완전 편하게 잠들었던것. 수능날 아침에 잠올까봐 홍차를 진하게 우려서 보온병에 담아 갔던것. 수능치고 집에 와서 답맞춰보고 그동안 쌓아놓았던 문제집 다 버렸던거. 그리고 다음날 미용실에 가서 롤스트레이트를 하고 콤팩트를 사서 발랐던게 기억나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