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한테 삥뜯은 자전거.

그냥 넘기고 지나가도 될 일에 굳이 저한테 선물을 사주겠다고 해서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얼마동안 고민하다 나.. 자전거 사줘! 라고 외친게 약 한달 전.

몇 주 전부터 자전거, 자전거 노래를 불렀는데 주말마다 비가 주륵주륵 와서 미룰 수밖에 없었던 자전거를 오늘 선물받았어요.

친절한 훈남 직원이 있는 매장에 들러 이런저런 기본 사항을 체크한 후 점찍어뒀던 모델을 겟.

 

초등학교 이후 자전거다운 자전거를 타본 기억이 없어서-어쩌다 한 번 타본다고 해봤자 2인용 자전거였으니..

평균보다 살짝 모자란 듯한 균형감각으로 잘 탈 수 있을까 조금 걱정이 되는 한편으로는 설레었어요.

집으로 데리고 돌아와 차고에 얌전히 모셔둔 후  굳이 먼저 말할 필요 없는데 괜히 엄마한테

차고에 있는 흰색 자전거는 내 자전거야, 선물받았어! 이런 얘기를 나는 그냥 물 마시러 부엌에 들어온건데

엄마가 거기 있길래, 마침 차고에는 내 자전거가 있으니까 뭐 그냥 말해주는 거야~라는 표정과 말투로 나불대고 방으로 들어와서

뿌듯함과 설렘을 진정시키려 침대에 자리잡고 심슨 올나잇을 보다 얌전히 잠들 계획이었지만,

이상하리만큼 가슴이 두근두근 흥분되고 머릿속에서는  빨리 타보고 싶다, 빨리 연습하고 싶다는 생각이 풍선껌같고..

일단 자자 vs 그냥 새벽에 인적 드문 틈을 타 살짝 타보고 올까를 왔다갔다 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자전거를 타기로 결심했죠.

 

죄지은 것도 없는데 새벽 4시가 넘은 시각에 누가 들을새라 조용조용히 현관물을 열고 자전거와 함께 대문밖을 나섰어요.

10미터도 못가 보기좋게 넘어지는 것 아닐까 싶었는데 보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긴장을 덜해서 그런지 큰 무리없이 출발 성공.

이런 시각에 동네에서 사람을 마주쳐봤자 한, 두명 이거니 싶었는데 주말 새벽이어서 그런지 몇몇 남자사람들과 조우했어요.

생각보다 사람이 많은 것에, 그리고 다들 남자인 것에 좀 신경이 쓰여 집으로 돌아오다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오는 자동차를 안전하게 피하려고

브레이크를 잡고 잠시 멈춰 서있는데 그 차에 뒤이어 지나가는 다른 차 안에서 저를 흝어보는게 느껴졌어요. 

뭐라고 하는 말소리 같은 것도 들렸는데, 저는 그 때 순간적인 경계감에 쫄아서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하는 시늉을 했죠.

자전거를 잘 탔다면 그 자리를 피해 금방 쌩 달려나갔을텐데 멈춰있는 자전거 폐달에 발을 올려 앞으로 나아가는 데서 몇 초 동안 버버벅.

잠시 버벅대긴 했지만 넘어지지 않고 집근처에 도착해서 애인에게 첫번째 라이딩 소감을 신고했더니 자전거 제공자로서의 뿌듯함을 감추지 않는군요.

물론, 자전거를 구입할 때부터 강조했던 안전, 또 안전 조심 또 조심 얘기도 강조.

 

자전거를 제자리에 세워 두고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조금만 더 타고 올걸 싶었다는 아쉬움에 입맛을 쩝쩝 다시며 방황하다

잠이 쉽사리 들 것 같지 않아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싶은 이런 글을 썼네요.

아무튼 애인한테 삥뜯은 자전거가 첫날부터 맘에 불쑥 들어와버렸어요. 

 

 

 

 

 

 

 

 

 

 

    • 방금 <귀를 기울이며>를 다 본 직후라 그런지, 새벽 공기가 코로 와닿는 것 같아요. 부러워요. 짝짝짝!
    • 어..전 애인님한테 제 자전거 삥뜯겼는데, ㅎㅎ
      글이 너무..너무.. 상큼하네요.
      내게 자전거를 삥뜯어간 그사람도 꼭 이런 기분으로 타고 다녀줬으면 좋겠는걸요. 하하.
      (하지만 그는 무자비하게 단점만 조목조목 짚어대던걸요 ㅠㅠ)
      그 설레임 오래오래 간직하시길 ^^
    • 두근두근이 매우 귀여우셔요. 조만간 샌드위치 도시락을 지참하고 강바람을 만끽하는 자전거 하이킹에 성공 하시기를..
    • 아.... 애인님도 자전거도 모두 염장.
    • 아, 이뻐라. 선물받은 사람이 이렇게 행복해하면 정말 선물한 보람이 있을거 같아요.
    • 저도 자전거 타러 가고 싶어졌어요!!!!!
      자전거 정말 좋죠! 저도 애지중지 한 자전거가 있어서 비싼 자물쇠도 채우고 출퇴근길에도 타고 다녔는데 겨울에 잠시 한 눈 팔았더니 누가 집어갔어요 ㅠㅠ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9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1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3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8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2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5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2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4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9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8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4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