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물 퍼볼 날이 올 줄이야.

 

 

저지대에 집이 있긴 하지만 12년을 살면서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물을 퍼 본적은 없었어요.

집 아래 도로가 물에 잠겨도 이곳만은 멀쩡하고 그랬는데, 작년에 펌프장 공사 한 이후부터 벌써 두번이나 물난리를 겪었네요.

지난번은 그래도 대문 턱까지 조금 차다가 말았는데 이번에는 아예 방에 들어와버렸........

 

TV에서만 보던 일이 내 집에서 일어나다니... 정말 뭐 아무말이 안 나오더라구요;;

4시간 동안 물을 푸는데 도저히 물이 줄지를 알고 오히려 더 차오르는거에요.

이미 내 허리와 팔은 마비상태인데 이게 물을 퍼는건지 물을 버리는건지도 모르는 그런.....

 

물이 찰랑-하면서 현관에 놓인 신발들을 덮칠때는 엄마 저 동생 모두 물퍼다 말고 망연자실.

방에 어느정도 물 찰때는 솔직히 포기상태....

다행히 이불이나 콘센트 주요기기들은 다 미리 올려놓긴 해서 피해가 덜하긴 했지만,

그래도 장농이라든가 이런건 아무래도 버려야 될것 같아요.

 

참 아이러니한건 아빠가 재난방재과 공무원이셔서 2시에 비상걸려서 서울로 가셨다는거.....

암만 해도 도저히 우리 셋 힘으로는 못할 일이라 외가댁에서 도와주러 오셨는데

그분들 모두 "집이 비상인데 어딜갔냐"고 웃지 못할 말씀들을 하셨드랬지요 ㅠ_ㅠ

뭐 물난리 날때마다 아빠는 늘 밖에 계셨기 때문에 저희 가족이야 이미 심드렁했지만.

오히려 아빠가 걱정됐어요. 아 우리 엄마가 우리동 공무원들에게 그랬듯이 아빠도 온갖 비난을 받고 계시겠구나..........;;

 

다섯시쯤 물 거진 다 퍼내고 쓰레받기로 방 물 퍼내는데 공무원들이 와서 사진찍고 가더라구요.

저는 그 와중에 아빠 생각이 나서 고생 많으시네요 드립....... 에고고;

밤에 어떻게 될지 몰라서 양수기 설치해주고 갔는데 다행히 비는 더 이상 오지 않았네요.

핸드폰은 거의 방치해두었는데 아침에 눈떠서 열어보니 니 집은 괜찮냐;; 는 문자와 전화들이 와 있네요.

안 괜찮아.........그래도 생각해주니 고맙다 흑........ㅠ_ㅠ

 

허리도 팔도 다리도 무지 아프고 피곤한데 또 잠이 쉽게 오지 않은게 서울에 내 집은 멀쩡한가.....

옥탑방이긴 한데 전에 비 또 미친듯이 왔을때 배수로에 낙엽을 안 치워서 신발장까지 잠겼었거든요.

그땐 무려 남자친구랑 다퉜을때라 발 밑에 확인도 안해보고 열받아서 발을 탁 내딛는데

순간 발목에 확 물이 차오르는 하.........아 그 야릇한 기분이란 -_-......

결과적으로 남친이 물 퍼주러 와서 극적 화해를 했으니 잠긴게 다행인것 같기도 아닌것 같기도 하고 허허......

 

눈에 보이는 물만 빼내고 나니 여섯일곱시. 1시부터 이랬다는 생각이 드니 허기가 확 밀려오더라구요.

그런데 집에서 밥할 정신도 없고 문 연 식당 간신히 찾아서 밥 먹는데

이명박 사람사는 모시기 방송한걸 뉴스로 틀어주는겁니다......아놔 이 적절한? 하여튼 그러한 타이밍.

그걸 물끄러미 보시던 엄마가 완전 진지한 목소리로 "정말 다 이명박 때문이다" 이러시는거에요.

저나 동생은 웃지 않고 고개 끄덕끄덕.......나랏님이 살림을 개판으로 해서 이런거라는둥.......

이명박 사랑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죄송합니다... 그만큼 정신이 없었다는거지요.

누굴 원망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뭐 사실 누굴 원망해봤자;;

 

엎친데 덮친격으로 저희가 큰집이라 차례를 지내야 했어요.  그런데 아빠는 새벽에야 들어오시고. 

컵라면 하나 드시고 주무셨어요. 밥 얼른 하겠다고 했는데 됐다고 오히려 못 와서 미안하다고 하시고.

2010년 들어 정말 최악의 기분으로 잠에 들고 잠에서 깨보니 아빠가 송편 찌고 계시더라구요.

집도 뭐 엉망징찬이고 간신히 방 하나 제일 깨끗한데 치워내고 정말 간단히 차례를 지냈습니다.

술 올리는거 의의를 두자고 하시는데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끄덕....

 

한바탕 뭔가를 치뤄내긴 했는데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정말 우리집이... 잠겼다는것인가.......

보상이고 구호물자고 이래저래 말이 많지만 그런것보다도 그냥 정말 황당한 기분이에요.

명절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내일은 또 일을 나가야 하는데. 오늘 하루 쉬네요. 사실 오늘도 쉰다기보단 집청소해야겠지만......

남들은 9일 휴가라는데 나는... 나는..... 그렇다고 그다지 억울하진 않은건... 이미 정신이 나가서....그런건가....

 

비구름이 남쪽으로 내려갔다는게 그쪽은 괜찮은것 같더라구요. 정말 진심으로, 다행입니다. 이런 물난리는 지역 몇개로 족하지요.

제가 사는 인천쪽은 서해 만조시간대랑 겹쳐서 피해가 더 심해졌다 하더라구요. 그 얘기를 들으니 하늘도 야속하다, 그 생각이 딱.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맨홀구멍을 찾으러 바닥을 기어다니시던 수해복구팀들의 모습이... -_-;; 정말 엉망징찬 아이고........

 

에고........ 아무튼......

전국의 물난리 겪으신 분들......모두 힘냅시다........ㅠ_ㅠ...............

아침에 나가보니 바람이 꽤 쌀쌀해졌더라구요. 혹시 외출하게 되시면 옷깃 단단히 여미시길.

 

 

    • 고생 많이하셨습니다... 정말 어제 같이 비 많이 온 날은 처음이에요.
    • 어이구 고생이 많으셨어요.
    • 진짜 난감한 일이군요. 버려야 할 물건도 무지 아까운 일이고.
    • 저희는 늘 지대 높은 곳을 선호했어요. 그래서 물퍼내는건 한번도 안해보고 살았는데 전에 지대 낮은 동네 살때 이야기 어른들이 해주시는거 들으면 남의 나라 이야기 였죠. 만약 제 집이 그랬다면 저는 눈물 날꺼 같아요.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팔 다리저리고 죽어나고.. 그나저나 공원묘지에 안장한 분들 별일 없으시려는지
    • 아이쿠.
      저도 98년 서울 대홍수에 난리를 겪었어요. 그때 경험한 공포와 무력감이라니.
      뒷설거지가 허리가 휠 정도로 많던데 어찌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네요. 위로를 전합니다.
    • 그런 적이 있어 남일 같지 않아요....지금 타국에 있는데 저번 태풍, 이번 폭우도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안타까울따름입니다. 올해 추석은 물가폭등에다 가뜩이나 힘겨우신 분들이 많은데, 기운내세요.
    • 저도 그런 적 있어서 남일 같지 않아요. 무려 4층인데 발목까지 물이 찼더라능;; 딴거보다 전기 제품 때문에 겁에 질렸던 기억이 있네요. 집에 비는 안샜는데 뉴스 보면서 한숨 쉬는 사람들 보면서 맘이 아팠어요. 다시금 자연재해의 공포를 깨닫고..(아 천둥소리 하늘이 빠개질 것 같더군요) 고생 많으셨어요 정말.
    • 뒤늦게야 이 고마운 댓글들을 보았네요. 고마와요 따뜻한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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