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연필깎이, 커피...

연필깎이, 샤파, 연필깎는 칼

 

저희 양친도 선생님이셨는데요. 저희 부모님도 샤프는 못 쓰게 하셨어요. (01410님과 ) 같은 이유였죠.  그런데 연필깎이는 사주지 않으셨죠. 이유는, 자신이 쓸 연필은 자신이 매일저녁 책가방을 준비하면서 직접 깎아 써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1학년 때에는 어머니가 손수 매일 저녁 신문지를 깔고 연필을 가지런히 깎아 주셨지만 그 후부터는 제가 직접 깎아 써야 했습니다.  물론 깎지 않고 써서 뭉툭해진 연필을 들고 숙제를 할라 치면 혼이 나곤 했지요. 그래도 깎아 주시거나 연필깎이를 사 주지 않으셨어요. 많이 졸랐지만 소용없었죠.

그 시절 제 필통 속에는 늘씬하게 깎여진 연필들 대신 울퉁불퉁 못난이 삼형제처럼 상처투성이 연필들과 까만 손잡이가 달린 칼이 들어있었죠.

 

"너네 집엔 연필깎이 없니?  부모님이 안 사주셔?"


그래선지 전 그 샤파에 로망이 있어요.

친구들 집에 가서 숙제를 하며  친구의 연필깎이를 보면 다른 것보다도 샤파가 제일 멋졌고 가장 성능도 좋아보였습니다.  그래서 친구 집에 가면 연필깎이로 연필을 다듬는게 일이었죠.  전동연필깎이도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전 그게 조절하기 어려워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사무실에 샤파는 비록 아니지만(?) 오천원이면 살 수 있는(!) 연필깎이가 두 대 있습니다. 누군가가 집에서 가져온 거래요.
성능도 꽤 괜찮아서 깔끔하고 날렵하게 깎입니다. 전 지금도 메모할 때 연필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연필깎이를 손으로 돌려보고 싶어서예요. 하루는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죠.

 " 나 아무래도  이거(연필깎이) 돌리는 거에 희열을 느끼나봐~"

 

01410님과 비슷하면서 다른 기억이라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고 그래선지 글이 길어졌네요~

 

 

*  *  *

 

 

일요일 밤에 커피가 똑 떨어진 걸 알았죠. 사실 며칠 전부터 (퍼먹던) 커피가 다 떨어져서 찬장 구석에 박혀 있던 초이스1회용커피로 연명하는 중이었는데 말이죠.

집에서 먹는 커피는 몇 년 전 미국에서 친척어르신이 들고 오신 금빛 포장의 헤이즐넛향 인스턴트 커피입니다.(이름을 외우지 못하는데 봉지 들여다보기 귀찮군요)

처음 먹었을 때 너무너무 맛있어서 아버지를 졸랐고, 아버지는 딸래미가 커피에 열광하는 걸 아시는지라 남대문수입상가에서 그 커피를 사다 나르기 시작하셨죠.

 

집에서 남대문 가는 것이 동네슈퍼 가는 것처럼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닌 지라 지금 같은 경우엔 걍...집에 숨어 있는 커피를 발굴해서(?) 먹습니다.

그러다가  일요일에 발견한, 플라스틱 젓갈통에 들어 있는 정체불명의 원두커피가루!

 

신난다. 음 향도 나쁘지 않은데?

 

밥숟가락으로 두 숫가락을 듬뿍 덜어서 드립퍼로 내려 먹어봤습니다.

 

뭔가....이상하다.

 

그건 몇 년 전 옥*을 통해 구매했던 이과수 커피였습니다.  개봉해서 먹어봤는데 영 맛이 없어서 못 먹겠고 그렇다고 새 커피를 버리기는 아까우니 마침 비어있던 젓갈통에 부어놓고 찬장 깊숙~히 찔러 넣었던 거였어요.

 

더 기막힌 건 이 커피를 전에도 똑같이 드립해서 (역시 원두커피인 줄 알고)  먹었었단 사실이죠.

 

    • 원두가루를 처음 접했을 때, 당당하게 물에 타고 안녹아서 당황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_=
      그 때까지만 해도 커휘가 이렇게 내 인생에 한 자리를 차지하리라고는... ㅎㅎ
    • 저도 형제들이 보물처럼 여기며 함께 십년 동안 쓴 하이샤파 기차 연필깎이가 있었는데 다들 크고 나니 어머니가 버리셨어요. 지금도 재질은 조금 다르지만 같은 디자인의 연필깎이가 나오는데 그걸 살까 전동 연필깎이를 살까 고민 중입니다. 칼을 좀 싫어하는 편이고 칼로 깎으려니 지저분하기도 하고 나무결이 좋지 않으면 잘 부러지기도 해서요. 하지만 연필로 길고 결이 고르게 잘 깎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사람이 좋아보이기도 하더군요.
    • 연필깎이 글을 쓰긴 했지만, 이제는 고향집에나 있을까... 칼로 깎아 씁니다.
    • 금색헤이즐넛향 인스턴트커피 이름이 도대체 뭐죠? 매우매우 궁금합니다! 알려주세요!!!(제가 리플 확인을 못할수도 있으니 쪽지로 보내주시면 엄청엄청 감사할게요...^^)
      얼마전에 토익시험때문에 서현 교보문고에 가서 연필을 샀는데 한쪽에 연필깍이(이것도 파는거였죠)가 있어서 정말 백만년만에 연필을 깍아봤는데 느낌이 정말 좋았어요./^^
    • 저도 손으로 연필 깎는 거 좋아해요. 이젠 연필 깎을 일이 없지만 가끔 눈썹 연필을 깎을 일은 있네요. 깎아야 하는 모양은 연필과 사뭇 다르지만. ^^
    • 사람/ 커피봉지 들고 와서 쪽지보냈습니다 ^^;
      참고로 저는 고전적인 원두커피체인점에서 팔았던 헤이즐넛향 원두커피하고 자판기용 합성헤이즐넛향 커피를 맛이 느끼해서 싫어하는데 이 커피는 전혀 그것들과는 차원이 달라요.
    • 저희집 사는 아이가 깎아놓은 연필들입니다. 이 어린이도 연필깎이에 로망을 품은 어른이 되겠구나.. 싶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하이샤파의 기차모양 스텐레스 연필깎이를 죽 써왔고 제도샤프를 비롯해 각종 샤프와 볼펜을 달고 살다가
      서른이 넘은 어느날 문득 연필로 깎아놓은 질 좋은 연필에 마음을 빼앗겨.. 집안 곳곳에 놓고 씁니다.

    • 제가 저 연필보다 조금 더 못깎았어요. 제일 가슴아팠던 건 무딘 손으로 칼을 잡고(절대 칼이 무딘게 아님) 깎다 보면 연필심까지 나무와 함꼐 썩둑썩둑...그 날렵하게 갈아진 연필심같은 건 만들어내지 못했죠.
      사실 연필이 주는 은근한 감칠맛도 쓰는 데 한 몫하는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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